지평선, 태양, 바람, 그리고 빛. 공간과 색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장소에서 모델들이 걸어 나오는 런웨이가 시작되었다. 패션쇼 이상의 특별함을 보여준 예술적인 경험. 에르메스의 2022 S/S 컬렉션이다.
에르메스 여성복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나데주 바니-시뷸스키(Nade`ge Vanhe´e-Cybulski)는 이번 시즌 컬렉션을 아티스트 플로라 모스코비치(Flora Moscovici)와 함께했다. 파리의 공공장소를 특유의 컬러감으로 재탄생시키는 그녀의 작업을 에르메스와 연결한 나데주의 선택은 너무도 탁월했다. 새로운 방식과 경험의 패션쇼를 원했던 에르메스와 나데주의 의도가 그녀의 작품을 접한 순간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고 할까. “나는 빛이 가득 찬, 태양 같은, 페인팅을 통한 강력한 접근을 원했다.” 나데주는 플로라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밝혔다. 패션쇼는 파리 근교에 있는 르 부르제 공항에서 열렸는데 기념비적이면서도 개방된 공간감을 원했던 나데주가 늘 꿈꿔오던 공간이었다. 플로라는 이 공간을 활용해 20개 가까운 파노라마 대형 페인팅(높이 6m, 너비 9m 혹은 7m)을 제작했으며, 이 작품들은 미끄러지고 때론 겹쳐지고 앞으로 움직이면서 생명감과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패브릭 위에 회화적으로 재현한 컬러 페인팅은 햇살처럼, 혹은 땅의 기운처럼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해냈다. 자연과 건축, 회화와 설치 작품, 그리고 패션과 공간이 플로라의 작품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플로라는 본능적으로 에르메스의 방식과 수작업, 공예의 중요성을 이해했다”는 나데주의 말처럼 플로라가 르 부르제 공항을 바람과 빛을 연상시키는 작업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에서 에르메스의 뉴 컬렉션은 더없이 완벽하고 감동적이었다.팀이 원한 컬렉션의 느낌은 그녀들의 표현에 따르면 ‘태양의 키스를 받은 여성이 세상에 나아가는 것’. 태닝한 피붓빛 같은 내추럴 브라운, 맑은 공기와 바람을 떠올리게 하는 화이트, 땅과 흙의 컬러인 블랙과 카키 그레이 등 에르메스가 사랑하는 컬러들이 파노라마 페인팅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또 한 번 레전드 컬렉션을 완성했다. 패브릭보다 더 부드럽게 물결치는 가죽과 이국적인 매력의 아플리케 디테일, 크리스피한 소재와 가죽의 영리한 믹스 매치 등은 내년 시즌에 선보일 에르메스 컬렉션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이게 했다. 이번 쇼는 팬데믹 시대를 고려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으며, 지평선과 해안이 있는, 탁 트인 공간을 갖춘 도시(부산, 일본 가나가와, 뉴욕, 런던, 아부다비)에서는 각기 다른 시노그래피와 함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되어 쇼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파리의 런웨이를 실시간으로 재현한 듯한 세트와 공간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바로 만날 수 있었던 쇼의 현장감은 해운대 밤바다의 청량한 기운과 어울려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