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으로 돌아온 Damien Hirst
Blossoming Again
항상 섬뜩하고 다소 기괴한 작품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해온 현대미술계의 슈퍼스타이자 ‘악동 예술가’라는 수식어가 곧잘 따라붙는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가 오랜만에 회화 작품을 들고 나왔다. 그것도 찬란하게 만개한 벚꽃 그림 시리즈를!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막을 올린 그의 전시 소식을 전한다. 외외로 프랑스의 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으로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첫 번째 나들이라고.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tst)라는 이름을 들으면 각자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상징적인 작품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해골에 촘촘하게 박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라든지, 포름알데히드가 담긴 수족관에 토막 낸 상어를 담은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같은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그러한 대상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섬뜩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이지” 하는 원론적 질문을 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비주얼로 이슈를 몰고 다닌 이러한 작품들 때문에 대중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사실 데이미언 허스트는 평면 회화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여왔다. 1986년에는 다양한 색상의 도트(dot)를 규칙적인 간격과 크기로 기계처럼 찍어낸 듯한 ‘스폿 페인팅(Spot Painting)’ 시리즈를 처음 내놓았고, 이후 1993년부터 2년여 동안은 전보다 좀 더 자유분방한 터치에 물감을 두껍게 겹쳐 바른 ‘비주얼 캔디(Visual Candy)’ 시리즈를 선보였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다양한 색채, 명도와 채도 등 질서 안의 무질서는 그가 꾸준히 다루고 있는 삶과 죽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색을 통한 그의 회화 작업은 캔버스를 도트로 가득 채운 ‘컬러 스페이스(Colour Space)’와 ‘베일 페인팅(Veil Painting)’ 등으로 이어졌다.
젊은 시절부터 ‘기린아’, ‘악동’ 같은 이미지를 지녔던 데이미언 허스트의 회화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항상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몰고 다녔다. “애써 피하려 해도 평생 회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 그에게 회화는 언제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그의 새로운 회화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프랑스에서 개막했다. 7월 6일부터 2022년 1월 2일까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열리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체리 블러섬(Cherry Blossoms)>전. 꼬박 3년을 쏟아 지난해 11월에 완성했다는 이번 ‘체리 블러섬’ 연작은 ‘스폿 페인팅’에서 ‘베일 페인팅’에 이르는 회화에 대한 그의 오랜 탐구를 완성한 작품 같다. ‘스폿 페인팅’과 ‘컬러 스페이스’에서 연구한 무궁무진한 색감, ‘비주얼 캔디’와 ‘베일 페인팅’에서 보여준 풍성한 입체감과 질감이 한데 더해졌다.벚꽃나무는 붉은빛이 감도는 점들을 불규칙하게 흩날리며 추상과 구상 사이 오묘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쓰는 동안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기에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났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작업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19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에르베 샹데스(Herve´ Chande`s) 관장과의 첫 만남에서 성사됐다. 샹데스 관장은 런던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에서 ‘체리 블러섬’을 처음 봤는데, 곧바로 장 누벨이 설계한 파리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건물이 이 아름다운 연작을 공개하기에 완벽한 장소라 생각했다고 한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실물, 삶, 살아 있는 것의 연약함, 민감한 것의 변형을 추구하는 예술가입니다. ‘체리 블러섬’ 시리즈는 이것을 열린 형태로 능숙하게 표현한 작품이지요.” 샹데스 관장은 또 이 시리즈는 (작가) ‘내면의 여정’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체리 블러섬’은 총 1백7점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데이미언 허스트가 샹데스 관장과 함께 선정한 30점을 선보인다. 생동감 있고 찬란하지만 그래서 어쩐지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 벚꽃 연작 역시 그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삶과 죽음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팬데믹의 여파로 전시가 예정보다 뒤늦게 열리게 되었지만, 마치 긴 겨울 끝에 봄이 오는 것처럼 맑은 하늘을 덮은 허스트의 벚꽃들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잠시나마 치유해줄 것만 같다.
2 데이미언 허스트, ‘Precious Moments Blossom’(2018).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1
3 자신의 런던 작업실에 있는 ‘체리 블러섬’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데이미언 허스트, 2019. 1965년생인 작가는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자랐고, 1984년부터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Prudence Cuming Associates 촬영.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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