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시선을 한 몸에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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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6, 2019

글 고성연

19 Art Basel in Hong Kong_Preview

해마다 3월이면 홍콩의 봄은 ‘현대미술’로 물든다. 올해로 7회를 맞이하는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아트 주간’에 도시 전체에 크고 작은 행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 홍콩은 이 브랜드 가치 뛰어난 미술 축제를 동력 삼아 현대미술의 거점이자 문화 예술의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블루칩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접하게 되는 아트 바젤 행사장이나 고층 건물 속에 들어선 갤러리 공간, ‘기록’을 생산해내는 소더비, 크리스티, 서울옥션 같은 경매장 등에서 볼 수 있는 도도한 모습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끊임없이 생겨나는 대중적 문화 예술 공간, 세계 전역에서 모인 유력 인사들이 도시 재생 같은 이슈를 놓고 벌이는 진지한 ‘토크’ 프로그램 등 복잡다단하고 종종 모순적인 미술 생태계의 다양한 행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아마도 춘삼월이 가까워지면 많은 이들의 시선이 홍콩에 쏠리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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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을 둘러보면 하나의 도시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예는 많지만, 홍콩은 그저 ‘다면적’이라는 단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기묘한 복잡성을 지니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무려 1백55년이나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1997년 반환됐지만, 그 세월을 거치는 동안 보잘것없는 어촌에서 ‘아시아의 맨해튼’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글로벌 메트로폴리스로 발돋움한 파란만장한 역사의 도시가 홍콩이다. 경제적 풍요는 굴곡진 운명 속에서도 ‘홍콩인’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줬지만,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혼혈아로서 중국에도 영국에도 속하지 않은 ‘제3의 공간’이라는 특수한 정체성을 띠게 됐다. 아니, 주권 반환 이후에는 외려 ‘정체성 찾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더 일리 있게 들린다. <홍콩 산책>이라는 책에서 류영하 교수는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 허브 도시가 마치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 같다는 맥락에서 ‘소년 홍콩’이라는 말이 학계에서 유행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에서는 ‘국가’를 강조하면서 상하이, 베이징 같은 다른 대도시들과의 경쟁을 독려하고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상당수 홍콩인들은 ‘중국화’보다는 그들만의 도시 스토리를 계속 만들어나가고 싶어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적인 허브 도시라는 ‘브랜드’를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문화 예술이라는 콘텐츠는 흥미롭게 지켜볼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문화의 세기’로 일컬어지는 21세기에 ‘크리에이티브 허브’ 주도권을 둘러싼 아시아 주요 도시들의 치열한 경쟁에서 홍콩이 열외일 수는 없다.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일류’로 채우고자 하는 정부 주도의 문화 예술 정책은 ‘다 비슷한 개발 논리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홍콩인들의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미술품 수집 같은 일은 ‘소수만의 사치’라는 시각이 팽배하지만, 주말이면 대중적 문화 예술 공간이 사람들로 넘쳐나는 모습을 보면 순기능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매년 3월 열리는 글로벌 현대미술 장터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in Hong Kong)도 홍콩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주는 효자 콘텐츠다. 주 전시장만 놓고 보면 ‘럭셔리 끝판왕’으로 통하는 영역인 만큼 ‘눈요기’만 즐길 수도 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이 기간에는 하버 프런트의 천막을 무대로 전개되는 위성 아트 페어 아트 센트럴(Art Central), 야외의 녹음을 ‘아트’로 수놓은 조각 공원, 다국적 인력과 자본의 조합으로 남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새로운 아트 센터의 실속 있는 프로그램, 아트 마케팅에 공들이는 명품 브랜드들의 화려한 부대 행사, 몸값 높은 홍콩 센트럴을 피해 도시 구석구석까지 생겨난 대안 공간이나 중소 갤러리 등 그야말로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 축제의 현장을 미리 소개한다.
현대미술 장터에서 세계에 소개되는 한국 작가들
8만 명 가까운 다국적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아트 바젤 홍콩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트 페어. 올해도 3월 말 사흘간의 장정(29~31일)에 36개국 2백42개 갤러리가 참가해 20세기 초 모던 아트부터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까지 아우르는 큰 장터가 홍콩 컨벤션 센터(HKCEC)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일단 메인 행사장인 ‘갤러리즈(Galleries)’ 섹션을 보면 갤러리 선정에 까다롭다는 아트 바젤의 관문을 통과한 ‘뉴페이스’들이 눈에 띈다. 미국과 유럽의 갤러리들인 리처드 나기 Ltd, 폴라 쿠퍼 갤러리, 레건 프로젝트, 앤드루 크렙스 갤러리 등 새롭게 참가한 21개 갤러리가 있다. 또 자카르타의 ROH 프로젝트, 베이징, 홍콩, 방콕에 전시장이 있는 탕 컨템퍼러리 아트 등은 다른 섹션에서 갤러리즈 섹션으로 옮겼다. 대형 설치 작품으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인카운터스(Encounters)’ 섹션에는 ‘Still We Rise’라는 주제로 12점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중 세계적인 작가들을 내세운 여러 갤러리의 협업 작품이 흥미를 끈다. 디스토피아적 내러티브를 담은 이불(Lee Bul) 작가의 ‘Willing to Be Vulnerable?Metalized Balloon’은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 리만 머핀, 그리고 한국의 PKM 갤러리가 함께 선보이고, 도시의 건축물을 거꾸로 뒤집어 설치한 엘름그린 & 드라그세트(Elmgreen & Dragset)의 신작 ‘City in the Sky’는 마시모 드 카를로, 갤러리 페로탱, 그리고 한국의 국제 갤러리가 손잡고 내놓는다. 또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작용을 하면서 색을 굴절시키는 호세 다빌라(Jose Da´vila)의 작품 ‘Homage to the Square’, 색채와 질감의 향연이 오감을 사로잡을 듯한 태국 작가 미트 자이 인(Mit Jai Inn)의 ‘Planes Electric’ 등의 작품들도 기다리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의 개인전이나 2인전을 선보이는 ‘인사이트(Insights)’ 섹션에 참가하는 한국 갤러리들도 주목된다. 설악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는 김종학 작가의 개인전(조현갤러리), 단색화 작가로 잘 알려진 최병소 작가의 개인전(우손갤러리), 설치미술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작가 지니 서의 개인전(갤러리 바톤) 등이 싱가포르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청 수 피엥(Cheong Soo Pieng) 등과 나란히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우손갤러리 이은미 큐레이터는 “한번도 공개된 적 없는 1970년대 작품 등도 전시될 예정”이라며 “최병소의 작품이 어떤 점에서 기존 단색화 세대와 구분되는지 진지하게 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신진 작가의 개인전에 집중하는 ‘디스커버리즈(Discoveries)’ 섹션에 참가하는 한국 작가로는 30대  작가 오종이 있다.
‘여풍당당’, 유난히 돋보이는 여성 작가들의 위용
전 세계 문화 예술계를 휩쓸고 있는 흐름을 의식한 것일까? 올해 아트 바젤 홍콩 기간을 수놓을 대표작을 훑어보면 제법 ‘여풍(女風)’이 느껴진다. 특히 아트 바젤 전시장을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끽할 수 있는 도시 곳곳의 ‘장외’ 전시에서 눈에 띈다. 설령 그것이 트렌드를 의식한 행보라 해도 역량을 인정받고도 큰 주목은 받지 못해온 여성 작가를 만나는 건 반갑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하우저 앤드 워스 갤러리와 미국의 페이스 갤러리는 지난해 문을 연 홍콩 최초의 아트 특화 빌딩 H 퀸스(H Queen’s)에 각각 여성 거장의 개인전을 연다. 하우저 앤드 워스는 ‘거미 작가’로 유명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1911~2010) 개인전(3월 26일~5월 11일)을 준비했는데, 아트 바젤 부스에서도 루이즈 부르주아를 비롯해 제니 홀저, 필리다 바로 등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들을 내세운 그룹전을 별도로 개최한다. 페이스 갤러리는 70대 미국 작가 메리 코스(Mary Corse)를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대대적으로 조명하는 개인전(3월 26일~5월 11일)을 선보인다. ‘빛과 인식’이라는 주제를 반 세기에 걸쳐 회화로 탐구해온 메리 코스는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지난해 <A Survey in Light>이라는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H 퀸스의 하트 홀(Hart Hall)에서는 독일 갤러리 스프루스 마저스(Spru··th Magers)의 또 다른 여성 작가 그룹전 <Eau de Cologne>이 진행될 예정이다(3월 26일~4월 12일). 바바라 크루거, 로즈마리 트로켈, 카라 워커 등의 쟁쟁한 여성 작가들을 아우르는 그룹전으로 1980년대부터 갤러리 설립자인 모니카 스프루스(Monika Spru··th)의 주도로 새로운 담론을 위해 이어졌던 시리즈 형식의 프로젝트. 지난해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VR(가상현실) 작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글로벌 IT 기업 HTC의 전시 부스(아트 바젤 메인 행사장인 홍콩 컨벤션 센터에 있다)는 올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최초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친 아티스트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을 초청했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뮤지션, 영화감독 등 다방면으로 활약해온 그녀는 1980년대 초 발표한 ‘오 슈퍼맨(O Superman)’이라는 전위적인 일렉트로닉 장르의 음악으로 영국 팝 차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자신만의 다채로운 아티스트 여정을 걸어오다가 크로노스 콰르텟과 협업한 ‘Landfall’이라는 앨범으로 지난달 열린 2019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상을 받았다(‘베스트 챔버 뮤직/스몰 앙상블 퍼포먼스’ 부문). 이제 70대 노장이 된 로리 앤더슨(지금은 고인이 된 전설적인 뮤지션 루 리드의 아내이기도 하다)은 이번에 대만의 뉴 미디어 아티스트 신치엔 후앙(Hsin-Chien Huang)과 함께 ‘To the Moon’이라는 VR 작품을 내놓는다.
참신한 활기를 불어넣을 ‘뉴 스페이스’의 등장
지난해 3월의 ‘아트 주간’에는 내로라하는 갤러리들과 국내 경매업체인 서울옥션의 전시 공간인 SA+ 등이 들어선 H 퀸스가 화제의 중심이었는데, 올해도 발품을 팔아볼 만한 새 공간들이 등장했다. 센트럴 지구의 신흥 명소 타이퀀 센터 포 헤리티지 앤드 아트(Tai Kwon Center for Heritage & Art)는 단연 눈길을 끈다. 지난해 초여름 문을 연 다목적 문화 공간으로 중앙경찰서, 빅토리아 감옥 등 영국 식민지시대의 역사적인 정부 건물들을 살려 마천루 숲속의 오아시스로 탈바꿈시켰다. 우리나라의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설계를 맡은 세계적인 건축가 듀오가 이끄는 헤어초크 앤드 드 뫼론(HdM) 건축 설계 사무소가 지휘한 프로젝트로 무려 10년간 리모델링을 거쳤다고. 타이퀀 센터의 현대미술 전시관인 JC 컨템퍼러리에서는 <Performing Society: The Violence of Gender>와 <Contagious Cities> 전시가 무료로 진행 중이다(오는 4월 21일까지). 또 다른 재생 프로젝트로 방직 공장에서 텍스타일, 디자인, 컨템퍼러리 아트 등을 아우르는 문화 예술 공간으로 거듭난 CHAT(Centre for Heritage Arts and Textile)가 3월 16일 공식 개관을 앞두고 있다. 추엔완(Tsuen Wan) 지역에 자리한 CHAT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해 텍스타일을 모티브로 한 작품과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기획전 <Unfolding: Fabric of Our Life>를 개최한다. 홍콩 행정부 차원에서 야심 차게 추진해온 시주룽 문화 지구(西九文化區, WKCD)의 경우 당초 많은 기대를 받았던 현대미술관 M+가 아직도 베일을 벗지 못하는 점은 아쉽지만 공연예술을 위한 극장인 시큐 센터(Xiqu Centre)는 모습을 드러낸다(임시로 운영 중인 M+ 파빌리온에서는 베트남계 덴마크 작가 자인 보(Danh Vo-)와 20세기의 저명한 일본계 미국 작가 노구치 이사무(Isamu Noguchi)의 2인전이 4월 22일까지 열린다). 이 밖에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아트 딜러이자 컬렉터 보리스 베르보르트(Boris Vervoordt)가 새로운 갤러리 타운으로 뜨고 있는 홍콩섬 남쪽의 웡척항에 만든 갤러리 공간도 기대된다. 원래 센트럴 지구에 있던 그의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는 새 둥지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데, ‘보따리 작가’ 김수자를 비롯해 피터 부게누(Peter Buggenhout), 보스코 소디(Bosco Sodi)의 그룹전 <Infinite Mutability>를 펼친다(3월 25일부터 6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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