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02, 2014
에디터 고성연 | photographed by kim do hyun
아트 컬래버레이션의 미학은 ‘상생’에 있다. 아티스트 고유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스타일에 맞추는 컬래버레이션의 황금률을 지키는 것도 나름의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새로움을 모색하는 데 지나치게 경도되면 브랜드의 정체성이 바래고, 그렇다고 브랜드의 이미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아티스트의 창의적인 시도는 날개조차 펴지 못하고 파묻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포드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링컨(Lincoln)은 ‘컬래보노믹스’의 미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글로벌 차원에서 예술계의 혁신적인 인물들과 협업으로 진행하는 ‘링컨 리이매진 프로젝트(Lincoln Reimagine Project, LRP)’의 면면을 보노라면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시너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링컨은 전통을 거부할 수도 없고, 뿌리쳐서도 안 되는 유서 깊은 브랜드이다. 20세기 초반 자동차 업계의 선구자였던 헨리 마틴 릴런드가 그의 영웅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을 따 설립한 브랜드라면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그래서 이 브랜드가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전통에서 창조하는 새로움(Creating New out of Old)’이라는 문구가 퍽이나 잘 어울린다. 게다가 말미에 있는 ‘old’에서 ‘new’로 무게중심이 빠르게 옮겨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링컨의 신차 디자인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위풍당당한 전통의 오라가 배어 있으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분위기가 과도하지 않게 스며들어 있다. ‘혁신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다’라는 명언이 피부로 와 닿는다. 사실 이처럼 전통의 자산을 토대로 한 혁신은 많은 예술가들이 평생에 걸쳐 안고 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를 지양하고 창조적 변화를 추구하되, 본연의 정체성은 지켜나가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지난해 서울 신사 전시장에서 12월 16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됐던 링컨의 아트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리이매진’이 선택한 3명의 국내 아티스트는 발군의 조합이었다. 이미지를 적용하는 방식이나 시각에서 혁신을 일삼아온 포토그래퍼 한성필, 사진 조각이라는 분야를 개척해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권오상, 그리고 기술과 예술의 조합을 앞세워 재기발랄한 미디어 아트로 주목받고 있는 에브리웨어. 일단 이들의 컬래버레이션 결과물이 반갑고 고무적인 것은 차체에 물방울이나 줄무늬를 입히는 식 등 이쪽 분야에서 다소 식상해진 ‘아트 카’ 방식을 차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한계를 거부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사고를 작품 세계에 반영해온 아티스트답다고나 할까. 그래서 브랜드와의 ‘궁합’이 더욱 돋보였다. 링컨의 야심작 MKZ를 2주간 몸소 주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떠오른 영감을 발산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커다란 자유를 느꼈다”며 덕분에 스스로의 창조 여정에서도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자동차’를 잊지는 않았다. 세 그룹 모두 차체에 손길이 닿지 않았을 뿐이지 자동차이기에 의미를 품을 수 있는 재치 어린 요소를 창의적으로, 그리고 상당히 자연스럽게 저마다의 작품에 반영했다. 이 글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순서는, 굳이 전시장을 찾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건물 바깥부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한성필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작품인 건물 외벽을 감싸는 커다란 가림막은 전시장 내부로 들어가 ‘공간과의 대화’를 접하게 만드는 유도체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지난해 서울 신사 전시장에서 12월 16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됐던 링컨의 아트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리이매진’이 선택한 3명의 국내 아티스트는 발군의 조합이었다. 이미지를 적용하는 방식이나 시각에서 혁신을 일삼아온 포토그래퍼 한성필, 사진 조각이라는 분야를 개척해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 권오상, 그리고 기술과 예술의 조합을 앞세워 재기발랄한 미디어 아트로 주목받고 있는 에브리웨어. 일단 이들의 컬래버레이션 결과물이 반갑고 고무적인 것은 차체에 물방울이나 줄무늬를 입히는 식 등 이쪽 분야에서 다소 식상해진 ‘아트 카’ 방식을 차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한계를 거부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사고를 작품 세계에 반영해온 아티스트답다고나 할까. 그래서 브랜드와의 ‘궁합’이 더욱 돋보였다. 링컨의 야심작 MKZ를 2주간 몸소 주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떠오른 영감을 발산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커다란 자유를 느꼈다”며 덕분에 스스로의 창조 여정에서도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자동차’를 잊지는 않았다. 세 그룹 모두 차체에 손길이 닿지 않았을 뿐이지 자동차이기에 의미를 품을 수 있는 재치 어린 요소를 창의적으로, 그리고 상당히 자연스럽게 저마다의 작품에 반영했다. 이 글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순서는, 굳이 전시장을 찾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건물 바깥부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한성필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작품인 건물 외벽을 감싸는 커다란 가림막은 전시장 내부로 들어가 ‘공간과의 대화’를 접하게 만드는 유도체이니까 말이다.
LRP 1_ by Han SungPil 행인은 물론 운전자들의 시선까지 사로잡는 환상적인 가림막, 도심에 중세풍 시장을 들여놓다
흔히들 선호하듯 자동차의 ‘래핑(wrapping)’을 시도하는 대신 건물 전체를 감싸버리는 대형 파사드(facade)를 설치한 건 아무래도 ‘신의 한 수’였다. 거리를 걷는 행인은 물론이고 자동차를 타고 바삐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까지 절로 사로잡기 때문이다. 아무리 괜찮은 전시회라도 ‘모객’이 안 되면 무슨 소용이랴. 링컨 전시장 건물은 번잡한 도심의 풍경이 짙게 드리운 서울 강남의 도산 사거리 모서리에 자리 잡은 터라 중세 유럽의 시장을 재현했다는 한성필 작가의 고풍스러운 사진은 더욱 시선을 잡아끈다. 동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이지만 콜라주 형식의 사진이란다. 이 건물이 위치한 사거리에는 온갖 종류의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터라, 환하게 켜진 링컨 MKZ의 헤드라이트가 시장을 비추는 사진 속 광경은 한결 이색적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논밭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이제는 첨단 문명의 상징이 된 강남의 역사적 맥락이 스며든 도산 사거리에 전통과 현대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공간을 창출하고 싶었다고 한 작가는 설명한다. 상상과 물리적인 공간의 경계를 가림막 하나로 허무는 것이다. 실재와 가상의 간극을 허무는 ‘비주얼 일루셔니스트’라는 별칭을 가진 아티스트다운 의도다. 사실 건물에 마치 그림 같은 느낌의 사진을 활용한 파사드를 창조하는 건 한 작가의 주특기이다.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그를 새로운 난관에 부딪히게 만들기도 했다. “지지할 곳이 마땅치 않은 통유리로 된 건물에 천 가림막을 설치하는 작업 자체가 도전이었어요. 게다가 ㄴ 자로 된 구조 때문에 ‘골바람’이 들어와 천의 일부가 부풀어버리기도 했죠(웃음).” 아무리 세심한 실측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 작업을 해도 결국 예기치 못한 장애물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그는 전시회 개막일 전날, MKZ 프로젝트를 위한 가림막 설치 작업을 하다 밤을 새우다시피 했지만 이러한 난관도 극복하는 ‘노하우’가 생겨 보람이 크다며 흐뭇해했다.
LRP 2_ by Gwon OSang 전통의 자산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창조해낸 부조의 미학,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는다
한성필 작가의 몽환적인 ‘일루전’은 전시장 내부로도 이어진다. 공간을 덮고 있는 한쪽 벽면을 그의 중세풍 사진이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강렬하지만 세련된 빨간색 링컨 MKZ와 조각이 멋진 앙상블을 이루는 권오상 작가의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MKZ 로고가 박힌 부조 작품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데, 척 보기에도 공들인 수공예 작품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링컨이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1930년대부터 2013년까지 브랜드의 역사를 상징하는 각종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찾아낸 뒤 콜라주 타입의 부조로 창출해낸 것이다. 튀지 않게 살짝 빛나는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금박은 ‘진짜’라고 한다. 모빌처럼 움직이지는 않기에 권 작가 스스로는 ‘매단 작품’이라고 불렀다. 영국의 인기 록 그룹 킨(Keane)의 3집 앨범 슬리브 디자인을 맡아 지구촌 차원의 화제를 이끌어내기도 했던 권 작가는 평면인 사진을 이어 붙여 입체적인 조각으로 빚어내는 ‘사진 조각’이란 장르를 개척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좋아하는 영국 아티스트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자 20대에서 70대의 이미지를 조합해 젊은이와 노인의 모습이 공존하는 ‘권오상표 호크니 사진 조각’을 만들기도 했다.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긴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조각가’다. 사진 조각을 ‘가벼운 조각’이라고도 표현하는 그에게는 잡지 안에 있는 이미지들을 오려서 평면으로 세워놓는 ‘플랫’ 시리즈도 ‘간단하고 평평한 조각’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좌대나 바닥에 놓는, 중력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는 ‘전통 조각’을 주로 해왔다면 이번에는 참신한 시도를 꾀해봤다. “보통 사진을 3D로 만드는 작업에서는 완전한 곡면이 나옵니다. 이번 작품은 판을 여러 장 붙여 천장에 매달았는데, 앞뒤로 감상할 수 있는 부조 형식이지요. 어찌 보면 제 ‘플랫’ 작업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고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 같습니다.” 기업의 자본을 바탕으로 평소 원하던 실험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 권 작가의 ‘솔직한 의도’ 속에 담긴 ‘도전 정신’이야말로 링컨이 원하는 ‘전통을 토대로 한 창조’와 맥이 닿아 있는 듯하다.
LRP 3_ by Everyware 자동차 천장으로 내다보는 동심의 세계, 진정한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보여주다
마지막은 가장 역동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에브리웨어의 마술 같은 미디어 아트. 공학도와 디자인을 전공한 커플이 만나 팀을 꾸린 이들의 작품 세계는 상큼 발랄하다. 어려운 용어나 개념을 강요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늘을 건드리면 구름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동심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시킨 ‘클라우드 핑크(Cloud Pink)’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위로 손을 대면 구름이 ‘인터랙티브’한 조합을 창출해내며 움직인다. 원리는 쉬워 보이지만 그 밑단에는 정교한 계산이 깔려 있다. 마치 복잡다단한 내부 시스템을 근사하고 정제된 디자인으로 승화하는 자동차의 미학처럼 이들의 미디어 아트에도 탄탄한 내공이 뒷받침돼 있기에 단순한 즐거움을 듬뿍 선사할 수 있다. 이들은 링컨 프로젝트에서 핑크 클라우드를 활용했지만 진부하지 않게 참신한 요소를 재기 있게 덧댔다. 그것도 ‘자동차’라는 소재에서 출발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역동적인 경험의 특성을 투영했다. MKZ가 세계에서 가장 큰 선루프를 장착했다는 점에 착안해 승객이 차량에 탑승하면 천장 유리를 통해 ‘핑크빛 구름’의 움직임을 만끽할 수 있는 스크린을 설치한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방식처럼 ‘터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좌석에 앉아 발로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밟으면 머리 위에서 임의의 ‘구름 춤’이 펼쳐지는 걸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나다. 자동차만이 전해줄 수 있는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또 하늘에 날리는 연이 연상되는 스크린을 설치할 때도 천을 지탱하는 틀(frame)로 투명한 튜브를 선택해 겉으로 보이지 않게 안에 박아 넣음으로써 전혀 ‘무거움’이 느껴지지 않고 자동차에 어울리는 유선형의 느낌을 살리는, 섬세한 손길도 곁들었다. 바로 이렇게 살아 숨 쉬는 자잘한 ‘디테일’과 체험의 미학이야말로 이들이 빚어내는 ‘귀여운 혁신’의 요체일 것이다. 에브리웨어의 방현우, 허윤실 작가는 링컨 리이매진 프로젝트의 가치를 강조할 수 있는 꽤 의미 있는 화두를 던졌다. “링컨처럼 연륜 있는 브랜드에서 나오는 자유로움과 여유는 다른 것 같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죠. 자기 고집이 강한 애매한 연배에서 벗어나 70~80세가 되면 오히려 더 개방적인 자세로 참신한 시도를 하는 걸 볼 수 있거든요. 젊은이들이 경험의 내공이 없이 추구하는 자유와는 또 다른 일종의 ‘여유로움‘이지요. 사실 ‘참신해야 한다’는 틀 자체도 압박이 될 수 있거든요.” 요즘 많은 이들이 갈망하는 ‘경계 너머’를 내다보는 창조적 혁신은 전통과의 단절이 아니라 연륜을 바탕으로 한 ‘비움의 미학’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