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아트 위크를 풍성하게 만든 세 가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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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 2026

글 양혜연(객원 에디터)

키아프 서울(Kiaf SEOUL) ×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2026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이 동행한 지도 올해로 5년째. 첫해의 뜨거웠던 관심과 비교하면 행사 자체에 대한 열기는 다소 잦아든 듯하다. 그러나 5년이라는 시간이 쌓인 만큼, 두 아트 페어가 국내외 미술계에 남긴 변화는 오히려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작품 거래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확인된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유영국의 작품이 22억~25억 원에 판매되며(국제갤러리) 한국 작가 작품 가운데 최고 판매가를 기록했고, 작품 구매자가 북미 지역 미술관 이사회 멤버였다는 사실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향한 관심이 개인 컬렉터를 넘어 미술관과 기관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올해 아트 위크에서 눈에 띈 변화는 거래에만 머물지 않았다. 페어장을 벗어나 브랜드 공간과 한옥, 건물 외벽은 물론 거리까지 전시의 무대로 활용되며 서울 곳곳에서 미술을 만나는 장면 역시 한층 풍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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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전시
이번 아트 위크에서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작품은 전시장에 걸어놓는 것’이라는 기존 문법에서 벗어나 작품을 만나는 방식 자체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것은 프리즈 라이브의 일환으로 선보인 영국 작가 라이언 갠더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 ‘더 파인드 서울’(8. 31~9. 10)이다. 을지로, 한남, 청담, 삼청과 코엑스 등 서울 곳곳에 1만6천 개의 특별 제작 동전을 숨겨두고, 누구나 길을 걷다 우연히 동전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관람 주도권을 도시와 관객에게 넘김으로써, 작품을 찾아 도시를 걷는 행위 자체를 미술 경험으로 만들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첫날부터 SNS에는 동전을 발견한 사람들이 해시태그 ‘#TheFindSeoul’과 함께 인증 사진을 올리며 이른바 ‘코인 헌터’들의 의욕을 북돋기도 했다.

갠더가 관람객을 전시장 밖으로 끌어냈다면, 오민은 한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감각을 겹쳐놓는 방식으로 관람 경험의 지평을 넓혔다. 포럼앤스페이스에서 개최한 시간 기반 설치 작가 오민의 전시 〈동시, 콘퍼런스〉(8. 29~9. 6)는 영상 감상과 청음을 한 공간에 배치해 작가의 작업 세계를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글과 말, 표정, 제스처, 액션에서 비롯된 ‘소리’로 구성된 동명의 LP 발매를 기념해 마련됐다. 메인 전시 공간에서는 2채널 영상 작품을 상영하고, 별도로 마련된 청음실에서는 작가의 LP를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흥미롭게도 청음실은 완벽하게 방음된 공간이 아니었다. LP를 듣는 동안 메인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영상 작업 소리가 자연스럽게 겹쳤다. 서로 다른 두 소리가 하나의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을 통해, 작가가 말하는 ‘동시성’을 관람객이 직접 감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기존 전시의 규칙을 비트는 방식은 송은에서도 이어졌다. 송은미술대상 제정 25주년 기념 전시 <송은×언박싱 프로젝트: 생성적 형상들>(8. 19~10. 10)은 거대한 스펙터클을 선보이는 대신, 역대 참여 작가 1백79명(팀)에게 동일한 크기(25×25cm)의 합판 4장이 담긴 박스를 보내며 이를 활용한 커미션 작품을 의뢰했다.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한 1백79명(팀)의 서로 다른 조형 언어는 오히려 제약이 개별 작가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같은 시기 송은 지하 벙커룸에서 열리는 오종 개인전 <가라앉음, 앉음>(8. 19~10. 10)은 작품과 공간의 관계를 더욱 밀도 있게 탐구한 사례다. 수장고이던 공간에 최소한의 선과 면을 더해, 공간 자체를 예술적 경험으로 바꿔놓았다.

DDP의 222m 외벽을 거대한 화면으로 활용한 ‘서울라이트 DDP 2026 가을’(9. 3~13) 역시 전시장의 경계를 도시로 확장한 사례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 유영국의 회화, 시조집 <청구영언>에 수록된 노랫말 등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가 준비됐는데, 일부는 아티스트의 라이브 연주에 영상이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덕분에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도 자연스럽게 작품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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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과 작품의 공명
한옥이라는 한국적 공간이 글로벌 관람객을 맞이하는 전시장으로 변신한 점도 이번 아트 위크에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특히 선혜원 아트 프로젝트 2.0 <흔들리는 것들의 안부>(9. 2~10. 31)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간과 선명한 주제 의식, 이에 어울리는 작품 큐레이션을 앞세워 존재감을 드러냈다. 경흥각 서까래 아래를 가득 채운 모나 하툼의 ‘Web’은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선과 유리 구로 집과 보호막, 생존의 구조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고, 로비에 자리한 최성임의 ‘황금이불’은 금색 빵 끈을 엮어 6.2×4.8m의 거대한 이불로 만들어 일상적인 사물을 작품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김윤수는 유모차 방풍막으로 쓰는 PVC 비닐과 골판지를 겹치고 말아 신체와 움직임의 흔적을 풍경처럼 구현했다. 작품들은 넉넉한 여백을 두고 배치돼 한옥의 구조와 아름다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열린 포르쉐코리아 후원의 <K-헤리티지 아트展, 이음의 선(線)>(9. 1~6)은 전통과 현대를 ‘선’이라는 개념으로 연결하며 또 다른 조화를 보여주었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전통·현대 작가 48명이 참여해 1백60여 점을 선보였으며, 낙선재와 석복헌 사이에서는 옻칠, 자개와 포르쉐 크레스트를 결합한 협업 작품도 공개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즈넉한 궁궐 풍경에 놓인 현대 회화였다. 인정전 커튼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는 최지원의 ‘황금커튼’을 비롯해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몇몇 회화 작품은 전통과 현재가 이질감 없이 공존하는 장면을 선보였다.

이 밖에도 조선 14대 왕 선조의 후손이자 제12대 국회의장 운경 이재형 선생이 1992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하던 운경고택은 2년 만에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며 빗장을 열었다. 현재 진행 중인 김동희 개인전 <다시 도착한 집>(9. 2~10. 31)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계단과 다락, 지면의 높낮이를 뒤집고 재배치해 관람객이 고택의 구조를 몸으로 경험하도록 한다. 서촌의 더일마 서울 플래그십에서는 배헤윰의 개인전 〈Awakened〉 (8. 29~9. 5)가 진행되었다. 더일마 서울 플래그십의 건물 ‘막집’은 건축가 조병수가 1백10년 된 한옥과 60년 된 조적조 양옥을 엮어 조성한 공간이다. 한옥의 투박한 목구조와 낡은 벽돌, 현대적인 추상회화가 어우러지며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처럼 올해 아트 위크에서 한옥은 더 이상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한국적 배경’에 머물지 않았다. 작품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는 동시에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전시의 중요한 일부로 기능했다. 글로벌 관람객에게는 이처럼 작품과 전통 공간이 만나는 장면 자체가 서울에서만 가능한 또 하나의 미술 풍경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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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어장 안팎으로 돋보인 브랜드의 행보
매년 아트 위크 기간이면 다양한 브랜드가 페어장 안팎에서 예술과 접점을 넓혀간다. 올해는 특히 페어장에 새롭게 합류한 브랜드들의 부스가 눈에 띄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럭셔리 호스피탤리티 브랜드 아만(Aman)의 VIP 라운지다. 서울 진출을 공식화한 아만은 한옥 마당에서 영감받은 VIP 라운지에 피에르 잔느레의 가구와 페르난도 라포세의 조명, 박석원·나점수·이우환·허달재·최명영의 작품을 한데 배치했다. 여기에 한식 파인다이닝 아토믹스의 카나페와 스몰 바이츠, 바 제스트의 시그너처 칵테일, 프라이빗 티하우스 로해의 티 큐레이션, 아만 에센셜 컬렉션과 아만 스파를 경험할 수 있는 핸드 마사지 체험까지 더했다. 예술과 미식, 웰니스를 하나의 공간 경험으로 엮어내며 브랜드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방문객에게 선명하게 각인시킨 것이다.

마찬가지로 올해 처음 프리즈 서울에 참가한 휠라는 전시 〈Fila Colore〉를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예술 언어로 새롭게 풀어냈다. 휠라의 컬러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매년 하나의 색상을 선정해 전개하는 ‘Fila Colore’ 프로젝트의 첫 번째 컬러는 스니커즈 ‘에샤페 실버문’을 상징하는 ‘실버’였다. 지근욱, 김기웅, 사샤 노드마이어 작가가 저마다의 시선으로 ‘실버’를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고, 부스 곳곳에 ‘실버문’을 모티브로 한 오브제를 배치해 작품과 공간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이 밖에도 매년 프리즈 서울의 오아시스 역할을 해온 샴페인 브랜드 루이나는 글로벌 아트 프로젝트 ‘Conversations with Nature’에서 올해 협업 작가로 선정된 가와마타 다다시의 작품과 스케치, 모형, 미니어처 조각 등을 아트 라운지에 선보이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페어장 밖에서도 브랜드와 예술의 만남은 이어졌다. 까사 로에베 서울에서는 올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자인 박종진의 수상작을 비롯해 작가가 직접 큐레이션한 작품 20여 점을 소개하는 특별 전시 〈Strata of Time: 시간의 층위〉(9. 3~20)가, 생 로랑 서울 플래그십에서는 안토니 바카렐로가 큐레이션한 앤디 워홀 사진전 〈일상의 사물들(Banal Objects)〉(8. 31~9. 6)이 열렸다. 럭셔리부터 캐주얼까지, 그리고 패션과 식음, 호스피탤리티에 이르기까지 예술과 만나는 브랜드의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이들은 미술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공간과 역사, 감각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 브랜드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하게 한다.

올가을 서울의 아트 위크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페어장을 벗어난 곳에서도 예술이 존재하고 기능할 수 있음을 저마다의 다채로운 방식으로 드러냈다. 때로는 의외의 공간에서 작품과 장소가 만날 때 예상하지 못했던 의미와 아름다움이 생겨나고, 그 만남이 새로운 시너지를 낳는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작품을 발견하고, 오래된 한옥에서 작품과 장소의 시간을 함께 마주하고, 브랜드의 공간에서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순간들. 그렇게 미술은 페어장을 넘어 도시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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