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디자인을 묻다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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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1, 2011

글 임진영(건축 전문 기자)

건축가 승효상과 중국의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가 총감독을 맡아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지난 9월 2일 시작해 10월 23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름 있는 디자이너의 작업에서 이름 없는 디자인 작업까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디자인 이슈를 다루는 이번 전시는 디자인의 경계를 확장하고 전시에 관한 통념을 깨뜨리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디자인, 공적이 되다

세련된 외관과 명쾌한 구조, 아이디어가 넘치는 디자인 제품을 볼 때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그럴 때마다 브랜드에 경외를 보내고 디자이너가 펼치는 끝없는 창의력의 향연에 감탄하게 된다. 디자인의 막강한 힘은 언제부턴가 기업의 성장 한계를 넘어설 돌파구로 여겨졌다. 양적인 성장에 몰두해온 도시에도 디자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도시의 브랜드, 상징과 함께 수많은 디자인 정책과 전략이 생겨났다. 유명 건축가의 랜드마크를 세우고 벽화를 그리며 가로등과 휴지통에 장식을 더했다. 마치 이 한 병이면 모든 질병이 말끔하게 사라진다는 만병통치약의 환상처럼, 디자인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디자인 정책이 남발되면서 비판도 함께 쏟아졌다. 수많은 예산을 들인 정책은 시민들의 냉정한 비판과 마주했고 예산 낭비라는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했다. 도시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예술품, 화려한 겉포장, 과도한 디자인으로 뒤덮인 도시를 보며 ‘과연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지금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디자인 정책과 정의에 의구심을 보내며 출발한다. 주제는 노자의 도덕경 첫 구절인 ‘도가도비상도(길이라 부르는 길이 다 길이 아니다)’를 ‘그림 도(圖)’로 바꾼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이다.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이 선문답 같은 주제는 결국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그 많은 전략을 생산해내는 것일까. 가시적인 정책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반(反)디자인 정서도 생겼다. 또 디지털 환경의 변화도 디자인의 새로운 정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도가도비상도’는 이 디자인 과잉의 시대에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우리 삶의 모습을 사유하기 위해 제안한 주제다. 21세기 디자인은 단지 보기 좋은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고, 오브제가 아닌 장소와 사람의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다.” 총감독을 맡은 건축가 승효상 씨는 이제 디자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할 때라고 말한다.
디자인의 정의를 되묻기 위해, 승효상 씨와 아이 웨이웨이가 던진 키워드는 바로 ‘이름’과 ‘장소’다. “이름을 통해 디자인이 특정 전문인의 전유물이 아님과 더불어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 장소에 기반한 디자인의 등장에 주목하고자 했다.” (승효상) 브랜드 파워를 갖는 이름 있는 디자인 작업(유명, Named Design)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이름 없는 디자인(무명, Unnamed Design), 여기에 인간 사회의 복잡 미묘한 관계에 주목하며 특정 단위의 정체성과 디자인의 관계를 고찰하는 커뮤니티, ‘도가도비상도’에 대해 적극적인 해석을 이끌어내는 주제전, 그리고 실제 광주 도심에 설치된 공공시설물을 통해 장소성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광주 폴리까지 모두 6개의 전시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전시는 카테고리별로 전시장을 나누는 대신 모든 섹션을 섞어 ‘비엔날레 시티’라는 하나의 도시를 만들어냈다. 비엔날레 시티를 디자인한 건축가 프란시스코 산인은 “디자인의 물질성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영향과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질문하고자 했다”라는 말로 그 배경을 설명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중성적인 전시 공간 대신 ‘다양한 입장과 생각이 교차하는 장소, 복잡하고 무질서하지만 소통과 교환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전시장은 일련의 군집을 이루는 클러스터 시티, 중앙의 열린 공간에서 주변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시티, 광주의 한 지역을 재현한 랜드스크립트 시티, 능률적으로 계획된 그리드 시티 등 4개의 도시 유형으로 구성했는데, 바로 우리 삶의 총체적 환경을 보여주는 도시 그대로의 공간이다.

디자인을 탐험하는 1백1가지 방법, 비엔날레 시티

광주디자인비엔날레관 앞마당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맞는 것은 아이 웨이웨이의 ‘필드’다. 명나라 초기 청화백자 양식의 자기를 구워 전통적인 방식으로 산업 부품인 파이프를 만들고 이를 기계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전통의 세심한 실험과 현대 기술의 규칙성, 효율성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환경을 암시한다. 그 옆으로 가와쿠보 레이의 ‘꼼데 가르송의 여정’은 지금껏 꼼데 가르송이 추구해온 새로움이라는 가치를 실험적인 이미지의 거대한 벽으로 구축했다. 여기에 뉴욕의 젊은 건축가 안지용, 이상화가 제안한 ‘바이크행어’가 전시장 외부에 설치되어 도시 틈새를 활용한 무동력 자전거 거치대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관람객은 각기 다른 도시를 여행하듯 5개의 전시장을 방문하게 된다. 우리 앞에 놓인 낯선 도시의 지도처럼 전시장은 유명, 무명의 작품과 커뮤니티, 광주 폴리,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펼쳐낸다. 관람객들은 종합 일간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면과 같은 유형으로 느슨하게 엮인 전시장을 돌며 각각의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집하고 탐색할 수 있다. 먼저 강렬한 사운드와 영상을 통해 지구 환경 문제를 다루는 디제이 스푸키의 ‘테라노바; 남극교향곡’과 ‘나우루 비가, 소리와 지형의 초상’, 3천 년 이상 전승된 중국의 고금을 통해 미묘한 소리와 울림을 유지하며 동시에 어떻게 새로움을 추구할 것인가를 묻는 ‘중국 고금 예술’, 숲을 나무의 크기와 성장 속도에 따라 시침, 분침, 초침으로 구성해 시각적인 이미지와 소리로 치환해 경험하게 한 김아연, 박승진의 ‘숲, 귀 기울이다’ 등이 각 전시장에 전시되어 ‘도가도비상도’라는 주제를 환기시킨다.

유명 vs 무명

브랜드의 유명세와 부침, 영향력을 통해 디자인에서 이름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제안하는 ‘유명’과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디자인을 소개하는 ‘무명’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심적인 이슈다. 유명한 것과 유명하지 않은 이름이 한데 모이면서 관람객들은 익히 알고 있는 디자인과 브랜드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도시의 할렘 지역을 수준 높은 건축물을 통해 활력 넘치는 도시로 개조한 콜롬비아 메데인 시의 사례와, 효율성을 극한대로 추구해 수익성은 좋으나 완벽하게 비인간적인 가상 도시 ‘슬레이브 시티’를 통해 도시의 가치를 되묻기도 하고, 최근 대지진이 일어난 동일본 지역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를 이끌어내고 있는 ‘와와 프로젝트’처럼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기도 한다. 통계 자료를 증강현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 세계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줌으로써 세계관에 만연한 신화와 싸우는 ‘갭마인더 월드’ 역시 흥미로운 작업이다.
‘무명’ 섹션의 작품은 디자인의 경계를 과감하게 확장하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다. 디자인을 개인적인 창작물로 보고 시장성과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가치를 매기고 평가하는 디자인의 신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다. 이집트 시위대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평화 시위 지침서인 ‘비폭력 혁명 디자인’이나 1백달러짜리 지폐의 위조 방지 조치와 위조에 필요한 재료를 함께 보여주면서 화폐 디자인뿐만 아니라 위조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방식을 동시에 고민하게 하는 작품도 있다. 세계적인 금융 기업 UBS가 자사 직원들에게 배포한 드레스 코드를 바탕으로 스위스 은행에서 허용되는 좋은 예와 나쁜 예를 실제 옷으로 재현한 ‘스위스 은행 드레스 코드’는 패션의 사회적 의미를 들춰낸다. 세계의 도시 로고를 지도에 한데 모아 도시가 자신의 시각적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고심한 흔적과 한국의 도시 기념품이 보여주는 불완전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작업, 알프스 마을이 관광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떻게 신화를 만들고 개조되고 있는가를 소개하는 ‘알프스 마을 이미지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과 관광 사이에 놓인 불편한 관계를 주목하기도 한다. 어기에 온라인 정보 공유를 통해 자력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한 ‘위키하우스’와 전형적인 한국 아파트 구조를 재현하고 그 안에 공동체라는 이름 너머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훔쳐보기’ 등 흥미로운 커뮤니티 작업이 유명과 무명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묻는 것

4개의 비엔날레 시티, 1백40여 개의 작품은 세련된 디자인 제품의 열악한 제조 환경 혹은 자원을 둘러싼 분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디자인 프로세스나 정보를 주는 방식, 자체적인 상품 개발과 유통·배급에 대한 문제, 디자인이 포장하고 있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 등을 제시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 안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 형식이나 기능이 아닌 아이디어임을 강조한다. 시각과 사용의 문제로 여겨졌던 디자인 통념에서 벗어나 소리와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한 것, 패션·건축·산업디자인 등 전통적인 디자인 장르의 구분을 해체하고, 분류 체계에 따라 일방적인 감상을 유도하는 전시 체계를 탈피하는 등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는 방식도 올해 디자인비엔날레의 특징이다. 다소 불친절하지만 우리가 여행하면서 만나는 낯선 도시의 화려한 겉모습과 어둡지만 생동감 있는 골목길을 발견하듯, 총체적인 삶에 깊숙이 들어온 디자인 이면의 의미를 탐색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답다는 것과 예쁘다는 것은 다르다. 예쁜 것은 달콤할(sweet) 수 있지만, 아름답다(beautiful)는 것은 감동을 받는 것이다.” 디자인의 본질은 가시적인 것이 아님을 말하는 승효상 씨는 이 전시를 통해 디자인의 배후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다소 부족한 설명과 자료, 약한 시각적 효과가 아쉬움이라면, 생각의 경계를 확장하고 우리가 미처 도달하지 못한 디자인에 대한 질문으로 우리를 이끌어낸다는 점에 이번 디자인비엔날레의 흥미로움이 있다. 승효상 씨의 말대로 “그 시대 상황에 따른 주제를 통해 담론을 형성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비엔날레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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