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지상(紙上) 전시_Mindscape in our Landscape_서문(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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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6, 2022

Exhibition Concept 고성연 글·기획 김연우(독립 큐레이터)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마스크 없이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는 소소한 일상을 되찾은 요즘이다.
주변을 정처 없이 거닐다 보면 익숙했던 풍경이 달라 보이기도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표현을 빌려 거리를 배회하며 관찰과 사유를 통해 도시를 경험하는 ‘산책자(fla^neur)’의 개념을 정립했다. 산업혁명 이후 급변한 사회에 새로이 등장한 산책자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근대적 삶에서 느린 속도와 여유를 가지고 삶의 풍경 속에 감춰진 것을 발견하고자 했다. 자신을 주체적인 관찰자로 설정한 이들은 산책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텍스트를 읽어내고 고찰한 학자이자 예술가였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며 감각했던 산책자처럼, <스타일 조선일보>의 ‘지상(紙上)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다음 4명의 아티스트는 각자의 방식으로 관찰한 동시대 일상 풍경의 단면을 펼쳐 보인다.




김 세 진 Sejin Kim

익명으로서의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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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면서도 무료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갑작스레 찾아오는 쓸쓸함과 불안함.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느껴본 적 있는 감정일 것이다. 애초에 자본과 권력, 규율과 통제를 바탕으로 인공적으로 형성된 ‘도시’라는 장소는 자연스레 그 안의 개인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띤다. 학교나 회사 형태로 생성되는 공동체에서, 또는 익명의 수많은 사람들과 매일 마주하게 되는 거리에서, 군중이라는 이름 아래 묻혀가는 ‘나’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이 고립되기 마련. 이러한 사회의 고독한 단면은 일상의 거리에서, 혹은 여행을 떠난 곳에서 우연히 드러나곤 한다. ‘나잇 와치’에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도시의 밤 풍경이 펼쳐진다. 영상의 중앙부에는 지하도를 분주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왼쪽에는 식당에서 혼자 식사 중인 사람들의 모습이, 오른쪽에는 밤거리를 밝혀주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뿌옇게 화면을 채운다. 일상적인 도시의 풍경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걸인 연주자의 구슬픈 하모니카 음색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독을 섬세하게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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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작동하는 도시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노동의 면모는 누군가의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수단인 동시에 이들을 도시의 이방인으로 만들곤 한다. ‘야간 근로자’에서는 24시간 끊임없이 기능하는 도시의 시스템이 낳은 주변인의 일상에 주목한다.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남자와 톨게이트 요금 징수원으로 일하는 여자의 밤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노동으로 채워지고, 퇴근하는 길에 마주하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쏟아지는 햇살은 그들에게 하루의 끝을 알린다. 그들의 시간을 차지한 어둠과 대조되는 환한 빛으로 가득 찬 도시의 하루에서 두 사람은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도시의 어둠 속에 존재하는 이들의 일상은 쏟아지는 햇살만큼이나 날카롭게, 그럼에도 담담하게 현대사회의 이면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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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북쪽’은 작가가 라플란드 지역을 여행하며 우연히 만난 사미족 여인 아니타 김발의 사연을 통해 현재에도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외 현상을 좀 더 거시적으로 다룬다.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변화되어가는 사회에 수용되지 못하는 토착 원주민의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흔히 도시에서 관찰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외로운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듯하다.




이 희 준 Heejoon Lee

도시의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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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은 주변의 환경이나 여행지에서 수집한 도시 풍경의 이미지를 기호화해 자신만의 다채로운 화면을 조성한다. 균일한 듯 제각각인 도시 속 건축물은 서로 다른 수직, 수평의 비례와 같은 조형적 요소로 단순화되어, 넓은 색면이나 도형의 형태로 캔버스 위에 층층이 쌓아 올려진다. 빈 캔버스를 채우거나 사진 이미지 위에 겹쳐진 두꺼운 마티에르는 아크릴 겔과 물감을 섞어 보다 진한 점성을 띠게 만든 재료다. 직접 제작한 스퀴지(squeegee)를 사용해 캔버스에 물감을 입히는 작가의 회화적 개입은 회벽에 시멘트를 바르는 건축물의 시공 과정을 연상시킨다. 화면에 더해지는 점, 선과 같은 조형적 요소는 먹선, 무게 추, 평행선과 같이 실제로 건축 도면이나 공사 현장에서 사용되는 도구를 상상하며 남긴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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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건축물은 작가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소재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공간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다시 꺼내보며 경험과 기억에 기반한 재미있는 요소를 발견한다. ‘The Temperature of Barcelona’는 유럽 여행 중에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보고 1백여 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한 현대성을 느낀 경험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이후 이러한 역사적인 건축물에 사용된 소재가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최신 유행 카페에서 사용되는 걸 보며, 오늘날 생활에서도 여전히 찾을 수 있는 모더니즘의 흔적을 통해 과거와 현대의 흥미로운 연결 지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2018년부터 시작한 ‘A Shape of Taste’ 연작을 통해서는 변화하는 건축물의 모습에서 시대의 취향과 감각을 읽어내고자 했다. 서울 시내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지역의 리모델링 건축을 소재로, 오래된 건물의 표피에 새로이 쌓이는 패널이나 페인트층을 관찰해 작업에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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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된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 캔버스를 보고 있자니 문득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경구가 머릿속을 스친다. ‘Less is More.’ 간결하고 ‘시적인(poetic)’ 작업으로 대표되는 그의 건축 철학을 더없이 잘 설명하는 말로, 단순성의 미학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연, 구체적인 원형과 세부적인 요소가 지워진 모습으로 재구성된 화면 속 도시의 건축물에서 오히려 공간을 가득 채운 리듬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듯하다.




권 아 람 Ahram Kwon

미디어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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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떠 가장 먼저 밤사이 와 있는 메시지를 확인한다.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SNS의 시시콜콜한 소식을 살펴보며 잠시 나른한 시간을 보내다가, TV와 인터넷의 각종 뉴스를 접하며 회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회사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우리가 디지털 미디어로 둘러싸인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인류를 가상현실로 이끈 4차 산업혁명,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또 다른 나 자신인 ‘부캐’가 살아가는 삶을 선사했고, 팬데믹을 거치며 달라진 삶의 풍경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가속시켰다. 우리가 스크린이라는 매체를 통하지 않은 채 세상에 접속해 있는 시간은 하루에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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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미디어를 ‘세상을 비추는 창’이라 부른다. 백과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미디어란 ‘매개’를 뜻하는 어원에서 유래된 단어로 어떠한 작용이나 정보를 주고받는 수단을 의미하는데, 그런 면에서 미술사의 시작을 장식하는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를 최초의 미디어로 들기도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인쇄물 중심의 미디어에서 점차 스크린 중심으로 변화해온 것뿐, 미디어는 인류의 등장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왔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캐나다의 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 – 인간의 확장>에서 모든 미디어가 인간의 감각을 확장시킨다고 했다. 미디어를 통해 개인에게 전달되는 정보나 이미지는 수용자에게 인식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심리적 감정을 일으키거나, 나아가 행동으로 이어질 만한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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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되는 거울의 표면에 비친 관람자의 모습 위로 깜박이며 변화하는 색면 스크린 파편을 거니는 경험을 선사하는 ‘월스’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러한 방식을 은유적으로 반영한다. 그러나 컴퓨터의 오류 화면을 상징하는 ‘죽음의 블루 스크린’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화면은 과연 현세대의 미디어가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본래 기능에 충실하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오작동으로 멈춘 스크린이 ‘전달’이라는 고유한 능력을 잃고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순간,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미디어 속 세상이 과연 우리의 현실이 맞는지 질문하게 된다.




김 정 아 Jung ah Kim

감정이 발화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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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여러 명의 여인이 바쁘게 어디론가 향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알몸에 검정 장갑과 부츠만 착용한 채 힘을 합쳐 커다란 꽃 더미를 운반하고 있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꽃을 따서 훔치는 이들의 정체는 작가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꽃도둑’들이다. 수십 점의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꽃도둑’ 연작은 공방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 종이에 그때그때 사용 가능한 재료로 작업한 흑백 그림이다. 작가는 먹을 담은 병과 펜, 종이를 들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주어진 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종이의 사이즈가 모두 제각각인데, 오히려 다양한 화면 크기에 맞춰 장면을 구성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됐다. 물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데는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이나 개연성이 반드시 동반되지는 않는다. 삶이 그러하듯, 각 컷이 품고 있는 그 순간의 감상에 충실하면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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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의 작업은 작가가 경험하고 감각하는 내면의 여러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겉모습과 사용하는 언어가 비슷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 작가는 우연한 계기로 그동안 막연히 갈구해온 ‘유대감’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처음 느껴본 따뜻하고 원초적인 평등함은 이후 서로 연대하며 ‘용기’를 얻고 미지의 상황으로 나아가는 꽃도둑들의 모습으로 발현되었다. 두려움, 희망, 좌절, 용기 등, 삶을 살아가며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감정은 작가가 일상에서 익숙한 풍경을 조우하는 특정한 순간에 발화되어 그림으로 옮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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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는 산책 중 관찰하게 된 작업실 근처의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한 추상화 연작이다. 중앙부에 언뜻 보이는 눈동자 형상은 관람객을 응시하듯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는데, 마치 작가의 습지 속에서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작가는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실제 풍경 그대로의 사실적인 재현을 지양한다. 대신 매일 같은 장소를 방문하며 매번 경험하는 감각과 인상을 그날그날 기억할 수 있는 만큼만 그린다. 흙, 물과 함께 뒤엉킨 각종 자생식물이 번식하고, 시들고, 다시 자라나는 과정에서 축적되고 순환되는 습지와 같이, 작가의 내면이 투영된 캔버스 위의 습지도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겹으로 층층이 쌓여가며 천천히 완성된다.







[ART + CULTURE ’22 Summer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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