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幻), 실재와 허상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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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 2021

에디터 이주이 | 포토그래퍼 최민영(인물)

숲과 나무’를 주제로 한 이태원 구찌 가옥(GAOK, 家屋)의 황홀한 외관이 공개되었다. 서울의 중심,이태원에 작은 숲을 탄생시킨 박승모 작가에게 협업을 하면서 느낀 소감과 진행 과정, 예술 철학에 대해 물었다.



탐색이, 우연한 발견이 모든 것이 멈춘다. 박승모 작가의 작품을 품은 구찌 가옥을 보며, 숲을 상상해본다. 할 말을 잃는다. 문명화된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다는(이미 알고 있지만 잠시 잊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위대한 도시처럼 위대한 작품은 오직 각자가 품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우리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투영되는 그 무엇인가를 찾게끔 도와준다.
Q 작가의 작품을 품은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라…. 소감이 어떤가?
감격스럽다. 창업 100주년을 맞은 이탈리아 브랜드가 이태원이라는 특별한 공간에 한국적 요소를 녹여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내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Q 이번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
환(幻)이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작품은 허상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본떠 만들었지만, 이 작품이 과연 실재라고 할 수 있을까? 실재와 허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찰나를 표현했다. 무엇보다 상상의 숲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번 작업을 구상하면서 예기치 못한 팬데믹으로 환경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왔다. 숲과 나무를 모티브로 환경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인간의 의지가 없으면 사라져버릴 수 있는 환경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Q 구찌 가옥(GAOK, 家屋), 파사드 작업은 어떻게 진행했는가?
이 작품은 수많은 스테인리스 스틸 와이어의 중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패널은 13개의 레이어로 이루어진다. 연필로 데생을 할 때처럼 철망이 겹치는 정도를 통해 명암의 대비와 농도를 조절하며 이미지를 표현했다. 레이어 두께로 밝고 어두운 정도를 조절했다. 이렇게 만든 패널 100여 개가 모여 구찌 가옥 파사드를 완성했다.


Q 감상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듯하다. 감상 기준은?
맞다. 작품을 잘 감상하는 기준은 사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미지가 사라지니까. 그때 보이는 것이 실재인지 허상인지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


Q 그렇다면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 바라는 시선이 있는가?
무위 상태에서 지켜보기만 한다는 뜻을 지닌 ‘관(觀)’의 시선을 바란다. 이는 수행법 중 하나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고, 마음을 한곳에 집중해 산란을 멈추고 평온한 상태에서 대상을 응시하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의 상호작용으로 이미지를 드러내는 이 작품은 조명이나 기후, 계절적 변수 같은 외부 요인에 따라 이미지의 디테일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작품 자체가 자연과 상호작용해 유기적으로 변화를 자아내는 개방된 구조물인 셈이기에 빛이 있으면 빛이 있는 대로, 작품이 일부분만 보여도 있는 그대로 ‘환(幻)’ 자체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Q 건물 4층 높이의 이 거대한 파사드에 작품을 구현하기란 쉽지만은 않았을 터다. 작업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나?
내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는 빛이다. 그림자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가장 잘 드러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뒤에서 비추는 빛이 철사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이미지를 강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파사드는 사실 해가 진 뒤 빛을 발한다. 해가 뜨기 전까지 조명을 통해 온전하게 볼 수 있다. 이번 작업은 외부 건물에 입히는 것이기에 조명이나 건물 방향까지,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았다. 설렘만큼 걱정도 많았던 작품이지만 이러한 변수가 오히려 이번 작품의 콘셉트와 더 적절하게 어우러졌다고 믿기에 기쁜 마음으로 구찌 가옥의 파사드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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