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과 과학기술의 환상적 동맹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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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5, 2018

글 고성연

현재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는 로봇 아트, 알고리즘 아트 등을 아우르는 전시 <아티스트와 로봇(Artistes et Robots)>,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융·복합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성찰하는 전시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이 진행 중이다.
지난봄 열린 아트 바젤 홍콩에서도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이 주목받았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에 있어 과학기술은 좋은 도구이자 소재이며, 보다 관객 참여적이고 쌍방향 소통이 더 활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본디 상이점 만큼이나 공통점도 많았다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21세기 동맹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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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예술’과 ‘과학기술’이라는 키워드의 조합 자체는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거창하고 심오한 기술적 토대를 바탕으로 삼지는 않더라도 오늘날 창작의 어떤 단계에서든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작업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때론 그것이 지나쳐 내용보다 형식에 과하게 치중하는 바람에 기술적 양식만 두드러질 뿐 정작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든, 다시 말해 ‘본말이 전도되는’ 사례가 꽤 흔하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서 무딘 일상과 사물을 참신하고 충격적으로 느끼게 하는 전율을 일으키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역할로 꼽힌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갖가지 기술적 시도와 활용은 자연스러운 행보일 터다. 형식을 바꾸면 내용도 달라지게 마련이고, 이렇듯 바뀐 내용은 또 형식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지리라는 법은 없겠지만, 분명 기술이 예술에 날개를 달아주는 경우도 있을 테고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시인 프리드리히 니체가 당대의 발명품인 타자기를 사용하면서 보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를 구사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일화도 전해지지 않는가. 어쨌거나 기술의 진보가 예술적 표현에 있어 운신의 폭을 넓혀주거나 효율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지난 3월 말 홍콩에서 열린 글로벌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in Hong Kong) 무대에서 만난 세계적인 조각가 앤터니 곰리(Antony Gormley)의 경우만 봐도 오래전에는 자신의 발가벗은 몸을 직접 석고로 떠서 주물을 만드는, 물리적으로 고통스럽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는 인체 작업으로 유명했는데, 이제는 조각 작업에서는 주로 컴퓨터를 활용한다고 했다. 첨단 보디 스캐너로 각종 포즈를 담아낸 다음 컴퓨터에 옮겨 작업에 임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문가를 동원한 팀 단위의 섬세한 작업이다. 아트 바젤 홍콩 개최 기간 동안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에서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새로운 작품 라인도 선보였다. 인간의 몸과 하늘을 배경으로 뻗어나가는 나무의 유사성을 포착한 대문호 괴테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루터(Rooter)’ 시리즈다(괴테는 식물변형론, 광학론 등에 대한 책을 쓸 정도로 내공 있는 자연과학자이기도 했다).

뉴미디어 아트가 빛을 발한 2018 아트 바젤 홍콩
아시아를 대표하는 간판 아트 페어로서의 자리를 공고히 한 아트 바젤 홍콩. 아트 페어에서는 아무래도 평면 회화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만, 올봄 행사에서는 상대적으로 기술의 활용이 돋보이는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그중 단연 화제작은 유명 작가인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작품이었다. 두 작가는 글로벌 IT 기업 HTC의 VR 브랜드 HTC VIVE와 어큐트 아트(Acute Art)의 지원을 받아 저마다 VR 작품을 내놓았는데, 각각 15분 정도 소요되는 부스에서의 감상을 예약하기가 힘들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행위 예술가로 명성 높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 ‘Rising’은 관람객이 VR 헤드셋을 착용하면 수조 안에 있는 작가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모습과 맞닥뜨리는데, 손으로 수조를 두드리면 이 수조가 깨지면서 그녀의 자취는 사라지고 대신 무너져내리는 빙산을 마주하게 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 현상 등 환경 파괴에 대한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다. 애니시 커푸어의 작품은 ‘Into Yourself, Fall’이라는 제목처럼 인체 내부를 바라보면서 심연의 세계로 끝없이 추락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데, 다소 난해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그 시작과 끝은 어디인지, 과연 겉으로 드러난 게 전부인지’ 등을 묻는 작가 본연의 철학적 질문을 VR 형태로도 나름 효과적으로 담아낸 듯 보였다. VR을 활용한 아트 작업에 특화된 벤처기업인 어큐트 아트의 제이콥 드 기어(Jacob De Geer)는 “관객의 체험 몰입도가 훨씬 향상된 최신 VR 기술을 활용해 빼어난 아티스트들과 협업한다는 건 아주 흥미로운 도전”이라면서 “(기술 자체는 다소 생소할지 몰라도)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그것이 제대로 구현되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구현한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증강현실까지
데이터를 전송해 로봇이 조각 작업을 하도록 하고, 이를 퍼포먼스, 모션 그래픽 등에 응용하는 독특한 디지털 제작 방식으로 예술성과 혁신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30대 아티스트 다비데 콰욜라(Davide Quayola)의 작품도 눈여겨볼 만했다. 2018 아트 바젤 홍콩 전시장의 VIP 라운지에 들어선 명품 시계 브랜드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 부스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은 비디오나 디지털 조각이 아니라 ‘디지털 풍경(landscape)’. 브랜드의 고향인 발레 드 주를 연상시키는 풍경을 고도의 디지털 작업을 거친 흑백으로 표현해낸 ‘리메인: 발레 드 주(Remains: Valle´e de Joux)’라는 작품이다. ‘하이테크의 미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됐는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각적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 묘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일단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매력이다. 기술이 불러일으키는 부담스러운 이질감은 없다. “스캐너로 자연 구성 요소의 형태를 파악하고 그 기하학적 구도만 참고해 철저히 디지털 작업으로 풍경을 구현하는 방식이에요. 3년 전쯤부터 이 기술을 접목했죠. 디지털을 여러모로 활용하는 방식은 어릴 때부터 제게 익숙했던 환경 덕분이에요.” 전시장에서 만난 콰욜라의 설명이다. ‘그래, 어차피 예술은 자연의 모방(미메시스)일진대, 그 도구가 무엇이든 정체성과 가치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뉴미디어로 주목받은 올해 아트 바젤 홍콩의 또 다른 스타는 중국의 젊은 미디어 아티스트 차오페이(Cao Fei)였다. BMW와 협업해 완성한 아트 카(#18 BMW Art Car)를 지난해 스위스 바젤에서 처음 공개한 데 이어 이번에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선보였는데, 아직 아트 세계에서 흔치 않은 AR(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한 터라 이목이 집중됐다. 그녀의 아트 카는 육안으로 바라보면 그저 무광의 검은색 차일 뿐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별도로 제작한 AR 앱을 설치한 다음 자동차를 촬영하면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자동차 위에 다양한 패턴과 색상의 시각적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AR 작품은 BMW에도 그렇지만 차오페이로서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산고’가 만만치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우선 AR 환경 없이는 그저 보통의 ‘블랙 카’로 보이는 콘셉트에 대해 브랜드와 합의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어요. 아트 카라고 하면 차체를 장식하는 화려한 시각적 효과부터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또 제 생각을 구현해줄 엔지니어 팀을 직접 찾아야 했고(결국 스위스에 위치한 스튜디오와 협업했다), 앱도 개발해야 했는데, 이 모든 게 처음이어서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했어요.” 생각의 속도는 측정할 수 없기에 인간 정신의 경계선을 탐험해보고 싶다고 거듭 밝혀온 그녀는 “이번 작품으로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솔직히 힘들기도 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AR 작업을 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디자인 세계에서 ‘디지털 융합’의 관건은 ‘편안한 어우러짐’
지난 4월 중순 열린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Salone Internazionale del Mobile 2018)에서는 첨단 기술이 디자인 영역에 잘 녹아든 좋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글로벌 인지도를 자랑하는 디자인 그룹 넨도(Nendo)의 전시장을 되돌아보자. 넨도는 여러 브랜드와 협업했지만, 주 박람회장이 아닌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장외 전시를 뜻하는 ‘푸오리 살로네’에 <Nendo: Forms of Movement>라는 단독전으로도 참가했는데,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이 전시에서는 첨단 재료와 기술을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인 작품을 선보였다. 일례로 센서를 활용해 공간에 침투하는 빛의 강도에 따라 꽃잎이 피어나거나 지는 듯이, 혹은 나뭇잎이 무성해지거나 수그러드는 식으로 창문을 덮고 가리면서 밝기를 조절하는 ‘블루밍 셰이드(Blooming Shades)’는 미학적 요소와 기술적 면모가 편안하게 어우러지는 본보기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롤라모 소극장을 빌려 1백 대가 넘는 TV와 1백8개의 샹들리에로 구성된 설치물을 세운 뒤 2시간마다 해학적인 카바레 쇼를 선보인 조명 브랜드 라스빗(Lasvit)의 전시는 창의력은 물론 소통 면에서도 최상의 이벤트라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글로벌 기업 소니의 <Hidden Senses>라는 장외 전시도 많은 관람객들이 호평을 쏟아낸 화제작이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본사에서 개최된 이 행사는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창문, 액자, 컵, 음악 시스템 같은 것들에 디지털 영혼을 불어넣은 듯 인터랙티브 요소를 가미해 가볍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주거 공간을 연출했다. 예컨대 사람이 다가가면 이미지가 확대되는 사진 액자라든가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빛이 이동하는 복도 등의 인터페이스 환경이다. ‘인터랙티브 미학’을 편안한 감성으로 녹여내 센서 기술의 지평을 넓히고 미래의 디지털 환경이 차가운 인공미보다는 따스하고 친밀한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줬다. 디자인 영역에서는 특히 미적인 면모가 중요하지만, 실험적인 독창성보다는 편안한 감성의 어우러짐이 핵심 덕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충분히 수긍되는 호응이었다.

예술과 과학은 본디 통한다?
예술 영역에서도 실용적인 편안함까지는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형식에 과하게 치중하는 것은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듯하다. 첨단 기술을 활용해 멋진 비주얼, 훌륭한 사운드를 구현해낸 작품에 반드시 좋은 평가가 내려지지는 않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더 그렇다). 예술에서 감각적 체험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래도 결국 관건은 ‘본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본질은 뭘까? 유수 학자들은 보편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통합적 경험에 이르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이쯤에서 흔히 예술과 과학은 주관성과 객관성, 이성과 감성 등 이분법적으로 나뉘기도 하지만, 사실 이 둘은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혹자는 “예술과 과학은 동일한 도구와 재료를 사용한다. 그들을 이어주는 주요 연결점은 기술(technique)”이라고 말하면서 특히 오늘날의 신기술은 예술가와 창조, 관객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을 특히 주목하라고 당부했다. 게다가 과학이든 예술이든 한 분야에 몰입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경지는 합치할 수 있다는 설명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첨단 과학기술과 예술이,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연에서 끌어올린 통합적 에너지로 ‘환상적 동맹’을 이뤄내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마침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그러한 동맹을 꿈꾸고 시도했던 1960년대의 문화 운동을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예술과 기술이 만나 더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던 장 팅겔리, 로버트 라우션버그, 백남준 같은 아티스트와 공학자의 비영리 실험적 협업체인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의 활동을 다룬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이라는 전시다.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을 중시하면서 기존의 틀을 깬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되는 실험이었던 만큼, 예술과 과학기술의 환상적인 동거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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