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페어와 축제, 그리고 브랜딩의 명암(明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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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 2022

글 고성연

Kiaf·Frieze Seoul 2022


말도 많고, 기대도 많고, 인기는 더욱 많았던 역대급 미술계 잔치가 막을 내렸다. 마치 늦여름의 한바탕 소동이 한가위의 도착과 함께 급작스럽게 끝나버린 듯하다. 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서울에는 그야말로 ‘뜨거운’ 아트 주간이 펼쳐졌다. 가을이면 미술계를 들썩이게 하는 키아프(Kiaf Seoul)와의 공동 개최로 세계적인 아트 페어 브랜드 프리즈(Frieze)의 아시아 시장 첫 진출지가 된 서울에서는 갤러리와 미술관은 두말할 것 없고, 패션, 자동차, 라이프스타일 등의 영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브랜드들이 자존심을 건 전시 콘텐츠와 행사를 앞다퉈 선보였다. 또 밤마다 ‘아트 피플’을 환영하는 ‘파티’가 곳곳에서 열렸으며, 미디어의 취재 경쟁도 불꽃 튀게 타올랐다. 떠들썩했던 ‘키아프 X 프리즈’ 동행의 첫걸음, 그저 ‘대박 흥행’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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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 그리고 아쉬움이 교차한 역대급 아트 페어 주간
프리즈(Frieze)의 기세는 역시 위력적이었다. 서울을 대표하는 아트 페어 키아프(Kiaf)는 이미 최근 몇 년 새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지닌 프리즈의 입성, 그것도 ‘아시아 최초 진출’이라는 수식어를 날개처럼 달고 오니 그 효과는 어마어마했고, 첫 비행부터 훨훨 날아올랐다. 지난 9월 2일 오후 2시, 코엑스(COEX) 3층 전시장 앞에 똬리를 틀 정도로 길게 줄 서 있던 방문객들은 프리즈 VIP 프리뷰 데이의 시작을 알리기가 무섭게 안으로 뛰어드는 ‘오픈런’을 연출했고, 마지막 날까지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운 관람 풍경이 유지됐다. 공식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나흘간의 판매고는 그러한 열기를 뒷받침할 만큼 흐뭇한 성적으로 갈무리된 것으로 추정된다(일각에서는 프리즈 서울이 2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프리즈가 진출한 4개 도시 중 단번에 2위 자리를 꿰찬 판매 성과를 냈다고 보고 있다). 물론 ‘개장 효과’와 더불어 아직까지 해외여행을 위한 ‘하늘길’이 예전 수준으로 열리지 않은 탓에 여전히 유효한 ‘복수 소비’라든지, 미술 자산 선호에 따른 ‘투자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고무적인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역대급’ 매출액(6백50억원 규모)을 발표했던 것과 달리 키아프는 올해 판매 수치는 공개하지 않고 관람객 규모(7만 여 명)만 밝혔다. 키아프와 프리즈는 2022년을 시작으로 5년에 걸친 파트너십을 결의하면서 입장도 ‘통합 티켓’ 시스템을 도입했다. 양 페어를 모두 관람할 수 있는 1일권 정가가 7만원, 다일권은 20만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7만’이라는 숫자는 꽤 준수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프리즈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물론 코엑스 1층에 보다 넓게 자리했던 키아프 전시장에도 인파가 몰려들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훨씬 덜 붐볐다. 참가 갤러리 1백10여 개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흔히 메가 갤러리라 불리는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 즈워너 같은 강자들이 총출동한 데다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프리즈 마스터스’ 섹션까지 보탠 프리즈이기에 ‘체급’ 차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가성비’보다는 비싸도 브랜드 파워에 기우는 ‘가심비’가 작동했고, 작품 구매가 목적이 아닌 관람객 입장에서도 콘텐츠 격차가 난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일류 갤러리의 유명 작가라 해서 1급 작품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이름값에 달려드는 ‘묻지마 구매’ 같은 경우도 더러 눈에 띄었다. 재주는 키아프가 부리고, 실속은 프리즈가 챙긴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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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술에 배불렀다?’, ‘천만의 말씀!’
그렇다고 해서 프리즈 서울이 그저 ‘첫술에도 배불렀다’고 자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단 ‘관람 환경’은 상당한 원성을 자아냈다. 2003년 런던의 공원에서 ‘텐트’를 무대 삼아 시작한 프리즈의 본색을 살려 유유자적 ‘미술 산책’하는 동선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전시 공간이 전반적으로 협소하고 갤러리 부스 간 간격도 좁은데 관람객 밀도는 극도로 높았으니 당연한 푸념이다. 아트 페어의 특성상 ‘근거리 감상’은 좋지만 바삐 돌아다니는 와중에 자칫 작품을 망가뜨릴까 하는 우려를 이렇게까지 해본 적은 필자의 경우에도 처음이지 않나 싶다. 미술계 거장의 대작을 ‘각’도 제대로 안 나오는 거리에서 바라봐야 하는 점도 아쉬웠다. 외려 키아프의 부스 배치는 한결 쾌적하고 편했다. 서울시에서 내년에는 송현동 공원 부지를 내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고는 하지만, 코엑스와의 계약상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일 것이다. 아티스트 토크, 포럼 등의 프로그램과 대형 설치 섹션 같은 일류 아트 페어의 단골 메뉴가 부재했던 점도 지적해야 할 부분이다(공간 제약을 감안하면 키아프와의 창조적 협업이 필요한 지점일 수도 있겠다). 처음이다 보니 갤러리들로서는 ‘스타’ 작가나 기성 작가 위주의 안전한 전략을 꾀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동시대 흐름을 보여주는 참신한 기획을 섞는 균형미도 부족했다. 해외 유수 아트 페어를 다닌 이들이라면 신선하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프리즈 자체의 ‘통 큰’ 투자는 부재했다. 물론 아트 페어라는 존재가 엄연히 ‘현대미술 장터’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듯 ‘아트 주간’이니 ‘도시 축제’니 하는 확장적인 수식어를 덧붙이려면 그에 걸맞은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달리 보면, 프리즈 서울 2022 행사는 브랜드 파워를 활용한 영리한 마케팅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첫 회인 만큼 아무래도 신중하고 보수적인 행보를 펼쳤을 프리즈는 미술 생태계의 각종 기관, 그리고 내로라하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 심지어 아트 후원 역사도 깊지 않은 브랜드조차 앞다퉈 1회 페어부터 어느 정도 축제 분위기를 불어넣는 데 크게 기여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손을 별로 안 대고도 코를 풀 수 있는’ 마케팅이 가능하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프리즈는 유럽의 문화 예술 허브 중 하나인 런던이라는 상징적, 물리적 배경을 등에 업고 있기는 하지만 페어의 역사나 전통 면에서 50년 넘은 아트 바젤에 미치지는 못한다(사실 지난해 20돌을 축하했던 키아프보다 ‘젊은’ 페어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구성은 벤치마킹하면서도 ‘품격’을 내세우는 아트 바젤의 이미지와는 차별된 대중성을 부각시킨 브랜딩, VIP 프리뷰 기간을 짧게 잡고 전시 기간 자체도 줄이며 다채로운 브랜드들과의 협업 체계로 수익성을 올리는 전략, 글로벌화 흐름을 꿰뚫은 시장 확장 등 프리즈의 그간 행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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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달라진 판도, 정체성 다지기와 리브랜딩이 키아프의 지상 과제
어쨌거나 세계적인 아트 페어의 등장은 우리에게도 여러모로 순기능을 자아낼 수 있다. 관람객들은 수준 높은 콘텐츠를 반겼고, 눈높이를 높였으며, 기꺼이 지갑을 꺼내 들며 ‘화답’했다. 이번에 프리즈에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현대미술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개인전, 키아프에는 ‘멀티 진영’으로 양쪽 페어에 참가했던 갈레리아 콘티누아 관계자는 “VIP 프리뷰 때 온 한 관람객의 경우, 피스톨레토를 잘 몰랐지만 한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 나흘 내내 방문하는 열정을 보였다”며 그 작품이 ‘비(非)판매’용이었는데도 진정성 어린 관심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국내 작가들의 해외 진출이나 재발견이 기대되기도 하고, 과거, 특히 팬데믹 이전에는 홍콩, 싱가포르 등의 도시들과의 ‘문화 예술 허브’ 경쟁에서 뒤졌던 서울이 ‘아시아의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여행이 자유롭게 재개되면 해외 큰손들의 발걸음도 기대할 수 있다). 21세기는 ‘소프트 파워’가 국가·도시 경쟁력의 관건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아닌가. 그렇지만 동시에 손님에게 ‘안방’을 내준 채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경각심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애초에 키아프와 프리즈가 ‘서울 제휴’를 발표했을 때부터 인기와 실적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어느 정도 예측된 바다(그런데 예상보다 기울기가 더 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성장세를 타면서 나름 잘해온 키아프가 굳이 지금에 와서 위성 페어를 자처한다면 모르겠지만 ‘한국국제아트페어’라는 명칭에 담겨 있듯 ‘international’ 페어를 여전히 지향한다면 궁극적으로는 프리즈가 경쟁자인데 어째서 ‘적과의 동침’을 택했는지 묻는 이들도 많다(프리즈와 키아프의 개최 시기가 같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키아프는 아트 바젤과 함께 글로벌 아트 페어 시장의 양대 산맥인 프리즈와의 동행으로 브랜드 파워와 덩치를 불려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기대했겠지만 ‘체급 키우기’는 단시일에 가능한 게 아니다. 하지만 이미 판이 바뀌었고, 게임은 시작됐다. 키아프는 정체성을 다잡은 뒤 진중하고 재빠르게 ‘리브랜딩’에 나서야 한다. 또 ‘티켓’만 공동 판매할 게 아니라, ‘동행’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내고 프리즈와 ‘따로 또 같이’ 마케팅을 하는 창조적 전략을 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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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f·Frieze Seoul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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