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대변하는 ‘웃음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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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4, 2023

글 천수림(미술 저널리스트)

Kiaf·Frieze Seoul 2023
Interview with _웨민쥔(Yue Minjun)


눈을 꼭 감은 채 윗니가 훤히 보이도록 입을 활짝 벌리면서 웃어젖히는데,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중년의 남성. 중국 현대미술을 잘 모르더라도 불그스름하거나 노르스름한, 혹은 푸르스름한 색채를 띤 반(半)나신으로 ‘웃는 남자’의 강렬한 이미지를 어딘가에서 접해본 이들이 꽤 있을 듯하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차이나 아방가르드’ 세대의 한 축을 이끈 현대미술가 웨민쥔(Yue Minjun, 1962~)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전시 기획자 윤재갑 디렉터가 설파하듯 ‘차이나 아방가르드’는 비서구 미술이 미술 시장과 비엔날레 모두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첫 사례였다. 2007년 가을 작품 ‘처형’(1995)으로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5백90만 달러의 판매가를 기록하며 세계 무대에 두각을 나타낸 웨민쥔은 그해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커버 스토리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의 ‘웃음’ 시리즈는 처음에는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담아낸 자화상으로 출발했는데, 언뜻 ‘포복절도’로 치닫는 수준으로 보이지만, 여기엔 우리 인간 사회의 애달프고 공허한 현실을 풍자적, 냉소적으로 버무려낸 ‘웃음의 역설’이 투영되어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선보인 ‘꽃’ 시리즈에서 얼굴을 ‘서늘하게’ 가린 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되곤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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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탕 컨템포러리 아트 서울에서 ‘냉소적 사실주의’로 유명한 웨민쥔(岳敏君, Yue Minjun)의 개인전 <Yue Minjun>이 진행 중이다(2023. 9. 5~10. 14). 전시의 부제는 ‘냉소적 사실주의(cynical realism)에서 환상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으로’.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진짜도, 가짜도 아닌 현실을 뒤집어 표현한다는 맥락에서(‘anti’가 아니라) ‘반(反)리얼리즘’을 뜻한다고 한다. 이는 은유일까? 일종의 도피일까? 이번 전시는 웨민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웃음’ 시리즈를 비롯해 불안한 낙관주의와 기만적인 속성을 강조한 ‘꽃’ 시리즈 신작, ‘미궁’ 등 그의 30년 넘는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작품(20여 점)을 두루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작가의 30년 지기이자 중국 현대미술계를 잘 아는 큐레이터로 이 전시를 기획한 윤재갑 관장(하우아트뮤지엄 디렉터)과 함께 웨민쥔 작가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간추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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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웃음’ 연작을 보면 조롱, 관조, 우울 등 다양한 의미로 읽힙니다. 우리 시대에 이 웃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 걸까, 자문하게 됩니다. ‘웃는 남자’의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Yue Minjun(이하 YM) ‘웃으면 복이 온다’는 그 웃음에서 비롯됐어요. 보통 중국의 절 앞에 가면 항상 웃음 짓는 부처가 있어요. 보통 미래에 올 부처라고 일컬어지는 미래불인데, 중국인들에게는 익숙한 부처예요(포대화상(布袋和尙), 소면화상(笑面和尙), 그리고 미륵불이라고도 부른다). 이 부처의 웃음에서 따온 방식입니다. 이 웃음에는 생로병사가 다 담겨 있죠. 단지 이중성이 아닌 다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요. 비판일 수도, 조롱일 수도, 기쁨일 수도 있습니다.


Q2 중국 시인 어우양장허는 2016년 상하이에서 열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기획전의 도록에 ‘모든 영원한 슬픔은 이 웃음 속에 있다’라는 시구를 썼습니다. 작가님이 설명해주신 웃음은 이 말과도 상통하는 것 같아요.

YM 맞아요. 그래서 이 웃음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웃는 남자는 제 작품의 주제가 됐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요. 아마도 세계 미술사에서 ‘웃음’을 가지고 이처럼 오랫동안 작업한 일은 드물 거예요.


Q3 1990년 원명원 예술가촌에서 활동하면서 회화, 조각, 판화 등으로 작업 영역을 넓혀갔어요. 이 시기를 거치면서 중국 현대미술을 이끈 1세대 작가(팡리쥔, 웨민쥔, 장샤오강, 왕광)가 탄생했고요. 작가님도 그중 하나죠. 이 시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YM 1990년 원명원(圆明园) 예술가촌으로 이주한 후 웃는 자화상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1990년대 초기, 베이징은 중국의 경제 개혁과 더불어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였죠. 이때 원명원과 동촌에 아트 빌리지가 생겼어요. 저는 원명원예술가마을로 이주했죠. 예술가촌은 1995년 철거당했고 그 뒤 작가들은 베이징의 쑹좡(宋庄) 지구로 작업실을 옮깁니다. 그때만 해도 베이징에는 현대미술 전시를 열 공간이 거의 없었어요. 1994~1995년 정도 되어서야 안정적인 작업실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게 되죠. 그 후 해외에서 중국 현대 작가의 전시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동안 냉전이 풀리고 탈냉전의 시기였다가 이제는 신냉전 기조로 돌아섰네요. 전 세계가 완전히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번 키아프와 프리즈 기간에 와보니 한국의 문화적인 분위기는 훨씬 포용력이 크고, 개방적인 것 같습니다.

Q4 ‘웃음’ 시리즈의 초기 작업에는 누가 봐도 작가님을 닮았다고 느낄 만한 자화상이 많았잖아요. 그러다가 군중과 군집으로 확장됩니다. 최근 코로나를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얼굴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요. 이 회화적 변화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반영되어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특별한 계기나 배경이 있었나요?

YM 우리가 2010년, 2012년에 사스와 메르스를 먼저 겪었다는 시대적 배경도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완전히 바뀝니다. 얼굴에 꽃이 활짝 피기도 하고, 얼굴을 꽃으로 덮기도 하죠. 누군가는 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 ‘꽃이 웃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전 베이징에서 생활하다가 겨울이 오면 중국 남서부 지방인 윈난 작업실로 옮깁니다. 2020년 중국 남서부 윈난성의 춘청에서 몇 달간 거주했어요. 팬데믹의 암울함을 꽃으로 견뎠죠. 윈난은 사시사철 꽃이 피는 곳이에요.

Q5 ‘꽃’ 시리즈를 보면 서양 미술사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인물을 패러디하기도 합니다. 미술사에서 인정받고 권위 있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이유가 있나요?

YM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웃음 시리즈의 인물들을 제가 다양한 포즈를 사진으로 찍은 후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처럼요. 꽃의 사물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신유물론 같은 경우 사물과 인간이 동등한 관계성을 맺고 있죠. 그런 면에서 꽃의 웃음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웃음의 맥락에는 모든 것이 있으니까요.

Q6 ‘미궁’ 작업은 중국 전통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특히 ‘이상향’인 무릉도원이 생각납니다. 혹시 이를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표현 면에서는 전통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서양화적인 요소도 담겨 있고요.

YM 이상적인 모습을 담은 무릉도원의 느낌도 있네요. 그렇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미로, 미궁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테크닉 면에서는 중국화와 서양화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중국화는 주로 모필로 해요. 동물 털로 만든 것이죠. 상당히 유연하고 탄력이 있어요. 수성 잉크를 쓰고요. 반면 유화는 딱딱하고 넓적한 붓으로 면을 메우는 식입니다. 그 두 가지 느낌이 섞여 있는 거죠.

Q7 아직 밝혀진 바는 없지만, 코로나 시기에 중국은 그 진원지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 사회적인 분위기도 달라졌죠.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아티스트로서 어떻게 지내고 바라봤는지요.

YM 작가로서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를 거치면서 우리 모두에게 트라우마가 생겼죠. 중국에는 봉쇄 시기도 있었고, 단절과 고립을 겪었잖아요. 충격이 컸죠. 자신감, 오만함까지 있었는데, 그런 걸 상당히 내려놓게 되었다고 할까요. 전 세계가 문화적으로 연결된 문명권으로 변화되어가는 시점에서 (코로나를) 만난 거잖아요. 그렇게 단절되고 고립되니까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뭐라 정의 내리기 힘드네요.



[Kiaf X Frieze Seoul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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