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바이트’를 설립한 인터랙션 디자이너 듀오 durrell bishop & tom hulbert

조회수: 3899
9월 15, 2010

글 고성연기자 (영국 런던)

애플의 아이폰 열풍에 힘입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인터랙션 디자인. 기술과 사람 사이의 유기적인 대화 창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지닌 강렬한 매력은 스승과 제자로 첫 인연을 맺은 두 명의 디자이너가 세대 차이를 넘어 손을 잡게 만들었다. 그 주인공은 인터랙션 디자인 업계의 실력자 듀렐 비숍(47)과 톰 헐버트(33)다. 예술가들의 동네로 통하는 런던 이스트엔드의 한 귀퉁이에서 작지만 흥미로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제 디자이너 듀오는 아기자기한 ‘인터랙션 디자인 협주곡’을 연주하며 멋진 상호작용의 진수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요즘 빈번히 등장하는 ‘인터랙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은 컴퓨터와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쌍방향적 상호작용을 뜻한다. ‘인터랙션’이라는 단어에는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대화, 접촉이라는 사전적 의미도 담겨 있다. 단어 자체에 역동적이면서도 친밀한 움직임이 내포된 것이다. 인터랙션 디자인의 대부로 통하는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빌 모그리지는 이러한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빗대 “명사(noun)가 아니라 동사(verb)를 디자인하는 것”이라고도 표현했다. 애플의 아이폰 때문에 최근 관심도가 급격히 높아진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인터랙션 디자인이다. ‘손안의 PC’로 불리면서 각광을 받는 아이폰의 인기는 앱스토어를 통해 사용자의 개성에 맞춰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수많은 응용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크게 힘입었다. 인터랙션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적, 다시 말해 혁신적인 기술을 자랑하기 위한 과시가 아니라 사용자와 대화하듯 기술과 사람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편의성을 끌어 올리고 감성적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터랙션 디자인의 매력에 흠뻑 빠져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디자이너 듀오’가 있다. 왕립예술대학(RCA)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인연을 바탕으로 5년여 전 럭키바이트(www.luckybite.com)라는 인터랙션 디자인 회사를 설립한 듀렐 비숍(Durrell Bishop)과 톰 헐버트(Tom Hulbert). 이들 ‘사제 듀오’를 디자인, 미술, 음악가 등 예술인들이 몰려드는 곳으로 유명한 런던 동쪽 혹스턴(Hoxton) 근처의 아담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인터랙션 디자인을 사랑하는 사제의 만남

“인터랙션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행동이 제품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용어는 보다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디자인을 바라보는 걸 저해하는 요소로도 작용해온 것 같아요. 인터랙션 디자이너로서 저희의 주된 관심은 사회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행동을 제대로 담아내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그걸 통해 사람들이 무형의 시스템을 잘 파악하고 즐겁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스승인 듀렐 비숍은 10년 이상 RCA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을 반영하듯 인터랙션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과 철학이 풍부하고 선명했다. 고객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함과 동시에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시도를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서 회사를 차렸다는 그는 원래는 제품 디자인을 전공(RCA 1987년 졸업)하고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 기업인 IDEO 등 현장에서 경력을 쌓다가 인터랙션 디자인에 매료돼 ‘늦깎이 학생’으로 RCA로 돌아가 이 분야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톰을 처음 만난 건 1990년대 말, RCA에서 강의를 할 때다. “당시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행위들을 어떻게 하면 적합한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로 표현할지를 연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인터랙션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많이 나왔죠.” 톰은 2001년 IDEO에서 일을 하게 됐고, 자신이 공동 디렉터로 일하던 ITCH라는 회사가 IDEO에 매각된 것을 계기로 듀렐도 합류했다. 사제에서 동료가 된 것이다. 그리고 3년 뒤인 2004년, 이 둘은 IDEO를 떠나 럭키바이트를 설립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넘다

럭키바이트의 최근 작품인 ‘버드박스(BirdBox)’를 보면 이들이 추구한다는 인터랙션 디자인을 둘러싼 ‘재미의 미학’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새소리를 활용한 알람 시계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로, 얼마든지 공짜로 내려 받을 수 있는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일반 애플리케이션과의 차이점은 마분지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종이 새장’을 별도로 구입해 휴대폰(아이폰)이나 MP3 플레이어(아이팟 터치)를 그 안에 쏙 넣으면 앙증맞은 새장 모양의 시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작품인 셈이죠. 단순한 아이디어지만 사용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장의 가격(7~8파운드)도 부담스럽지 않고요. 저희가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도 담겨 있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터랙션 디자인 등 디자인의 경계를 나누는 걸 지양하라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기업이나 학교에서조차 이런 식으로 구분을 짓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의미 없는 얘기니까요.” 이 작품이 더욱 의미를 가지는 건 톰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프로그래밍 방식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자바(Java) 기반의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아이폰 앱을 보다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을 창안해낸 것이다. “아이폰의 응용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면 ‘오브젝티브-C’라는 컴퓨터 언어에 통달해야 하는데,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상당히 어려운 편이죠.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굳이 이 언어를 배우지 않고도 아이폰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머리를 써본 거죠.” 톰의 설명이다.

난독증을 겪던 소년, 프로그래밍을 하는 첨단 디자이너가 되다

사실 인터랙션 디자인의 세계는 럭셔리 인테리어 가구 디자인과 같은 화려함을 구가하지 못하지만 ‘고수’가 되는 데 품이 꽤 많이 든다고 볼 수 있다. 이들 2인조도 두 가지 기본 관문은 통과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프로그래밍 언어와 전자공학에 대한 지식이다. 듀렐 비숍의 경우에도 거의 30대에 접어들어 다시 교정으로 돌아가 2년을 투자해가면서 두 가지를 습득했다. 그는 “실제로 두 가지를 다 잘 다룰 줄 아는 디자이너가 흔하지는 않다”고 지적하며 “하지만 사실 굉장히 높은 수준이 요구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란 고정관념은 버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단 문을 열면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활짝 열려 있거든요.” 사실 듀렐에겐 컴퓨터 언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 때문에 괴로워했던 씁쓸한 경험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난독증으로 글을 쓰는 데까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맞춤법을 판별하지 못하는 것과 글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사실 형태와, 문맥, 행동 등에서 잠재적인 의도를 읽어내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건 저의 난독증도 한몫을 했죠.” 듀렐이 글이 아닌 시각적인 디자인 언어에 남다른 재주를 가진 건 가족을 보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10대 시절부터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던 그의 아버지는 뒤늦게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해 프로 디자이너가 됐을 만큼 재능이 있었고, 어머니는 사진가였다. “어린 시절에 두 분이 항상 같이 작업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 아버지는 그림도 굉장히 잘 그렸어요. 지금도 아버지의 스케치북을 가지고 있지요.”

흥미진진한 프로젝트로 가득한 IDEO 시절

톰 헐버트는 RCA 제품 디자인 과정을 밟으면서 유달리 인터랙션 분야에도 관심을 쏟게 된 경우다. 미국의 카시오 연구센터(Casio Research Center)를 발판으로 커리어 여정을 시작한 그는 인터랙션 디자인 업계의 여장부로 유명한 길리언 크램프턴 스미스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연구소에서 1년을 보내면서 더욱더 이 분야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IDEO로 옮긴 2001년부터 스승인 듀렐 비숍과 함께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관련된 각종 프로젝트에 신나게 임했다. “그 당시 IDEO는 창업자의 한 명인 빌 모그리지의 영향으로 상당히 실험적인 요소가 짙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많이 했죠. 인터랙션 디자인을 주로 다루는 프로젝트에 포함되면서 저희 둘이 한 팀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초기 프로젝트 중 하나는 2001년 이동통신업체 오렌지(Orange)가 후원하는 런던의 한 클럽을 위해 ‘인터랙티브 테이블’을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테이블에는 예쁘게 인쇄된 일반적인 형태의 메뉴가 있고 회사 브랜드를 상징하는 환한 오렌지색을 내는 인터랙티브 글라스(interactive glass)가 놓여 있죠. 잔의 밑부분을 보면 글씨가 떠다녀요. 그걸 보고 원하는 품목의 번호를 고른 다음에 ‘구매(buy)’ 단추를 누르면 무선 인터넷의 도움으로 주문이 바에 전달되는 겁니다. 당시로선 첨단 기술을 이용한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일상생활에 접목한 흔치 않은 행사라 꽤 호응을 얻었죠.”

작지만 의미 있는 2인조의 창조적 작업

그렇게 일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던 IDEO, 그것도 세계 최대의 명성과 규모를 자랑하는 IDEO를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글쎄요. 아무래도 회사가 성장해가면 신명 나는 재미를 주던 소규모 프로젝트는 자꾸 없어지기 마련이잖아요.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직접 시도해보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무형의 시스템을 가장 편리하고 즐겁게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같은 목소리를 냈다. 다행히 이들은 BBH, 노키아, 파나소닉, BBC 등 다양한 고객을 섭렵하면서 자신들이 지향하는 삶을 차분하게 꾸려나가고 있다. 일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이들의 초점은 ‘인간의 행동을 관찰,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 언어를 엮어내는 것’이다. 때로는 게임과 생명과학, 남성의 임신과 같은 무게 있는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예컨대 2008년엔 ‘나의 식생활이 글로벌 수급에 비춰볼 때 타인에겐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10대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디너 테이블(Dinner Table)’이란 프로젝트를 맡아 ‘올해의 디자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만약 첨단 인터랙션 디자인을 다루는 굴지의 미국 기업이나 연구소 같은 데에서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이들은 영국, 특히 자신들의 스튜디오가 자리한 ‘이스트 런던’의 끼가 넘치는 분위기를 사랑한단다. 잔심부름을 하는 직원 하나 두지 않은 소박한 사무실 환경을 뒤로한 채 교감 충만한 ‘인터랙티브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스승과 제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 두 명으로 충당할 수 있으므로 비용 구조의 경쟁력이 있지 않느냐”며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