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예술가들이 가난 속에서 오직 창작에 대한 혼과 열정으로 작품을 만들어 최고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3대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1세대가 돈을 많이 벌어 2세대가 돈 걱정 없이 예술을 공부해야 하고, 3세대는 예술적인 소양이 깊은 부모님의 교육과 후원으로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공부와 창작을 동시에 해내야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IT 업계도 비록 3대까지는 아니어도 부모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적인 IT 갑부들의 성공 뒤엔헌신적인 사랑과 교육열로 자식을 키운 훌륭한 부모님들이 있다.
IT 업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의 경우는 그의 모든 것이 부모님이 만든 하나의 작품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치밀한 부모의 관심과 교육 속에서 자랐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시애틀에서 성공한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교직에 종사하며 각종 봉사 활동을 했다. 이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빌 게이츠의 삶 곳곳에는 부모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어린 빌 게이츠에게 물려주고 싶은 습관은 독서였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일부러 도서관에 아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책을 읽었고, 빌 게이츠가 읽고 싶다는 책은 모두 다 사준 것으로 유명하다. 빌 게이츠는 부모와 함께 독서 토론을 하며 자연스럽게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울 수 있었다.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빌 게이츠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겠다는 각오로 많은 책을 읽었다. 후에 빌 게이츠는 자신의 성공이 어린 시절의 독서 덕분이라고 밝힐 정도로 책은 빌 게이츠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빌 게이츠의 부모가 특히 신경 쓴 것 중 하나는 도전 정신과 승부욕을 키워주는 것이었다. 빌 게이츠 아버지는 밖에 나가서 수영이나 축구, 풋볼 같은 스포츠를 시켰다. 처음에 빌게이츠는 이를 귀찮게 여겼지만 곧 새로운 분야에 뛰어듦으로써 도전 정신을 배우게 되었다. 빌 게이츠의 부모는 매해 여름이 되면 별장이 있는 후드 커널에서 다른 여러 가족과 함께 치리오 올림픽이라고 이름 붙은 가족 대항전을 펼쳤다. 치리오 올림픽은 2인3각 경기나 깃발 뺏기 같은 간단한 게임부터 테니스와 수상스키 같은 격렬한 움직임이 필요한 스포츠로써 가족별로 경쟁해 순위에 따라 메달을 수여하는 대회였다. 물론 이 행사는 친목과 가족 간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한 친선전이었지만 빌 게이츠는 치리오 올림픽을 통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길렀기에 무엇보다도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고 한다. 빌 게이츠 집안 내에서도 경쟁은 일상화되었다. 그의 가족은 카드 게임을 자주 즐겼다. ‘트레이’라는 그의 애칭도 카드 게임에서 3점을 뜻하는 용어에서 시작되었다. 카드 게임은 승부에 대한 집착과 승리를 거두기 위해 사고하는 방식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그의 집안에서 적극 권장된 놀이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도전 정신과 경쟁심을 가지도록 교육받은 빌 게이츠는 패배를 싫어하는 승부욕의 화신이 되었다. 그는 간단한 퍼즐 게임을 하거나 썰매를 탈 때도 절대로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교회 목사님이 성경의 산상수훈을 다 외우는 사람에게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주겠다고 약속하자 빌 게이츠는 2시간 만에 약속된 분량을 모두 외웠다. 그가 단번에 성경책을 외울 수 있었던 것은 깊은 믿음보다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승리를 얻으려는 승부욕 덕분이었다. 빌 게이츠는 보통 학생들이라면 싫어하기 마련인 시험마저도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아했다고 말한다.빌 게이츠의 독서력도 사실은 승부욕 덕분이었다. 그가 다닌 학교에서는 여름방학 동안 누가 책을 많이 읽는지 읽기 시험을 붙였다고 한다. 빌 게이츠 아버지 말에 의하면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빌 게이츠는 항상 일등을 하고 싶어 했고실제로도 일등을 자주 했다고 증언했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것도 바로 그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빌 게이츠는 개인용 컴퓨터가 일반 가정에도 보급되면 분명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그 기회를 남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승부욕 덕분에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게 된다. 그렇지만 빌 게이츠 부모님이 그에게 물려준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마음이었다. 그의 아버지 빌 게이츠 시니어는 공립학교의 예산 확충 캠페인을 주도했고,그의 어머니 메리 게이츠는 모금 단체인 유나이티드 웨이의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빌 게이츠는 이런 부모님의 영향을받아 어린 시절부터 어린이 병원 설립 모금 활동에 참여했다. 부모에게 기부의 기쁨을 배웠다는 그는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기로 결정했으며 현재는 그가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 기부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빌 게이츠가기부왕이 되어서 제2의 인생을 사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교육 방식이 자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새삼절감하게 된다.
재일교포로 우리에게 친숙한 손정의 역시 부모의 애정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손정의는 재일교포 3세로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탄광 노동자로 일했다. 손정의의 가족은 80가구 정도가 무리 지어 사는 무허가 판자촌에서 어렵게 생활했다. 손정의가 태어났을 때도 돼지를 길러 생계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궁핍했다. 재일교포 3세로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손정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 손삼헌의 독특한 교육법 덕분에 매사에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른바 ‘천재 교육법’인데 아버지는 손정의에게 “너는 타고난 천재니까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다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또 손정의가 조금만 잘하면 바로 “너는 천재”라고 칭찬했다. 어른이 되면 일본에서 제일가는 남자가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은 그는 어느덧 아버지의 말에 최면이 걸려 매사에 무슨 일이든지 자신감에 넘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학교 선생님이 노트에 어느 과목이라도 1장 이상 공부한 것을 적어 오면 스탬프를 찍어준다고 했다. 평소 노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손정의는 일본에서 일인자가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 덕분에 선생님이 내준 과제에서도 일등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밖에 나가지도 않고 공부에 매진해서 선생님에게 스탬프를 받기 시작했고, 반에서 가장 많은 스탬프를 받은 학생이 된다. 이렇게 자신이 노력한 만큼 칭찬을 받는 것을 즐겼던 손정의는 아버지가 걱정할 정도로 공부 중독에 빠진다. 손정의 아버지의 칭찬 교육법은 손정의 스스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했고, 어려운 사업에 대범하게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는 불굴의 사나이로 성장하게 만들어주었다.
부모님의 교육열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앤디 그로브를 빼놓을 수 없다. 인텔 전 CEO인 앤디 그로브는 인텔 성공의 일등 공신으로 손꼽히는데, 앤디 그로브가 이렇게 훌륭한 인물로 성장한 데는 부모님의 애정과 식견이 역시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앤디 그로브(본명은 안드라스 그로프)의 아버지 조지 그로프는 치즈나 요구르트 그리고 버터 같은 우유 가공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직접 제품을 상점에 배달했는데, 그곳에서 거래처 사장 딸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로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대학의 예비학교 격인 김나지움을 나온 피아니스트였다. 둘은 결혼을 하게 되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자녀가 바로 앤디 그로브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그의 아버지가 의용군으로 전쟁터로 나간 후 행방불명되면서 집안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행히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앤디 그로브의 아버지는 3년 만에 돌아왔다. 사업적 감각이 뛰어났던 앤디 그로브의 아버지는 다시 사업을 일으켰고 그의 집안은 곧 경제적으로 회복한다. 유대인 집안답게 앤디 그로브의 학교생활은 부모님에게 최고의 관심사였다. 부모님이 교육에 깊은 관심이 많았던 만큼 앤디 그로브가 부모님에게 선사해준 최고의 선물은 부다 페스트대학교 합격소식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경제적 감각만큼이나 시사와 정치 등에 박학다식했던 그의 아버지 조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국이 앞으로 국제적인 영향력을 키울 것임을 예감하고 앤디 그로브에게 영어 과외를 시키기로 결정한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가정교사를 구하기 위해서 금 목걸이를 팔아야만 했다. 앤디 그로브는 영어 공부를 싫어했지만 아버지의 이런 선택은 나중에 그가 미국으로 망명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공부한 덕분에 앤디 그로브는 미국에 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 빠르게 적응해 인텔에 합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교육열이 결국 앤디 그로브의 오늘을 만들어낸 것이다.
구글의 창업자들 역시 부모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래리 페이지는 1973년 미시건 주의 이스트 랜싱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시건 주립대학교에서 최초로 컴퓨터 공학과 박사 학위를 받은 지식인이었다. 특히 인공지능과관련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의 아버지는 미시건 주립 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어머니 역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과 석사를 받은 후 같은 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부모님의 영향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래리 페이지가 자신처럼 컴퓨터 공학을 공부해서 교수가 되기를 바랐다. 래리 페이지는 아버지의 뜻대로 미시건대학교의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한다.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도 사실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학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구글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1973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세르게이 브린의 부모님도 래리 페이지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학자이자 연구원이었는데 구소련에서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자 자녀의 미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 후 세르게이 브린의 아버지는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세르게이 브린의 어머니는 나사(NASA)에서 우주의 기후 환경을 시뮬레이션하는 뛰어난 전문가로 일하게 된다. 세르게이 브린 역시 부모님처럼 교수가 되기 위해서 스탠퍼드대학교에 입학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부모님은 모두 박사출신으로 뛰어난 학자적 자질이 있었고, 자녀들을 엄격하게 가르쳤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관심이 많았고 부모님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부모님에게 배운 것이 더 많다고 할 정도이다. 그들은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에 얻은 재능을 꽃피우면서 한 단계씩 도약해갔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혼모인 조앤 캐롤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조앤 캐롤은 혼자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 입양을 결심한다. 유대인답게 그녀는 아이를 대학교까지 책임져줘야 한다는 조건으로 잡스 부부에게 보낸다. 남편 폴과 부인클라라 부부는 정이 깊었고 친자녀 이상으로 스티브 잡스에게 애정을 쏟았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성인이 된 지금도 주변 사람 누군가가 실수로라도 폴과 클라라를 지칭할 때 양부모라고 말하면 화를 내면서 친부모라고 고쳐 부르라고 말할 정도이다. 실제로 그는 유년 시절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부를 만큼 행복하게 보냈다. 그의 양아버지 폴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용사였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기계를 만들거나 고치는 일을 했다. 전기의 원리처럼 기계에 관련된 깊은 지식은 없었지만 손재주 하나는 무척 좋아서 각종 전자 제품이나 자동차를 쉽게 고쳐냈다. 그래서 폴은 일이 없을 때면 자신의 차고에서 무엇인가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폴은 일이 취미였고 취미가 곧 일이었는데, 이런 모습이 스티브 잡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의 영향 덕분에 무엇인가를 직접 조립하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행동을 눈여겨본 아버지는 차고에 스티브 잡스를 위한 작업대를 만들어주며 취미 생활을 공유했고, 그 순간이 잡스에게는 최고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되었다. 비록 노동자 계층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지만 스티브 잡스의 양부모는 스티브 잡스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게 해주려 노력했다. 스티브 잡스의 부모님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이사를 가기도 했으며 스티브 잡스가 원하는 대학에 보내기 위해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등록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창업했을 때는 차고와 부엌을 작업 공간으로 내주었다. 스티브 잡스의 양어머니 클라라는 회사에 걸려오는 전화를 대신 받아주었고 손님이 찾아오면 커피를 대접했을 뿐만 아니라 청소까지 해주었다. 이렇게 스티브 잡스의 성공 속에는 양부모님의 교육열과 함께 놀라운 헌신과 희생이 숨겨져 있다.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부모의 애정과 관심이 그대로 결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IT 갑부들을 보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부모님과 그렇지 않은 부모님 사이에는 묘한 차이가 있다. 빌 게이츠, 구글 창업자들처럼 부모가 성공해서 훌륭한 역할 모델이 되면 자녀도 어느덧 부모님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성향을 가진다. 빌 게이츠와 구글 창업자들이 각각 변호사와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듯이 말이다. 그들의 이런 성향은 사업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성공한 부모님을 롤모델로 삼았듯이 그들은 사업에서도 성공한 기업을 모델로 했다. 이에 비해서 스티브 잡스는 노동자 계층 집안에서 자라나서 비록 경제적으로 생활이 여유롭지 않았고 학비 문제로 대학마저도 중퇴해야 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스티브 잡스의 창의력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기존의 성공 방식을 따라가는 회사에 머무는 동안 애플은 혁신을 뛰어넘는혁명적인 제품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