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ological Arts

조회수: 2452
3월 05, 2014

에디터 배미진

정밀함의 극치를 담아낸 시계가 예술로 추앙받는 요즘이지만, 처음부터 시계 자체를 ‘시계 예술(horological arts)’로 접근한 워치메이커가 있다. 바로 19세기 초 첫 번째 포켓 워치를 만든 에두아르 보베다.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시계를 만드는 스위스 보베 캐슬 매뉴팩처에 다녀왔다.


1
2
3
4
청나라를 사로잡은 진귀한 회중시계, 보베
보베(Bovet)라는 시계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표현은 ‘진귀하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세계적인 하이엔드 워치 박람회인 SIHH가 열린 제네바에서 신제품을 선보인 보베의 프레젠테이션은 ‘과연 이것이 21세기에 만든 시계가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놀라운 ‘작품’이 많았다. 물론 보베의 과거를 찬찬히 살펴보면 지금 눈앞에 놓인 ‘작품’의 완성도가 단시간에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위스 워치메이킹 산업에서 시계 예술의 선구자 중 하나였던 에두아르 보베는 핸드 인그레이빙, 에나멜과 미니어처 페인팅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인정받았다. 무브먼트 개발과 데커레이션의 모든 분야에서 선구자로 추앙받았고, 기술적 경지와 예술적 감각은 상업적으로도 뛰어난 결과를 낳았다. 보베 시계가 중국 황실에 전해지며 유럽에서 유래된 예술적 감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교두보 역할을 한 것이다. 1818년 중국 광저우에서 4개의 회중시계를 판매한 에두아르 보베 하우스의 고객 리스트에는 중국 황제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19세기 후반 판매된 타임피스 중 하나는 오늘날까지 전시되어 있다. 섬세하게 묘사한 백조 두 마리가 그려진 이 시계는 에두아르 보베의 성공을 상징하는 증표와도 같다. 청나라 황실의 시계 제조사로 발탁된 이후에는 중국에서는 시계라는 단어를 ‘보베’라는 브랜드명으로 칭했을 정도로 그 역사가 길고, 깊다. 1백9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닌 보베는 쿼츠 파동과 스위스 시계 산업의 쇠락에 따라 그 발자취가 흐려진 적도 있었지만, 이 브랜드의 가치를 알아본 파스칼 라피(Pascal Raffy)가 보베의 신화를 다시 이어가고 있다. 그는 2001년 보베를 인수한 후 2006년에는 투르비용과 각종 컴플리케이션을 만들어내는 무브먼트 제작사인 디미에 1738(DIMIR 1738) 공방을 인수, 이후 보베 전 제품의 무브먼트를 디미에에서 생산하고, 공방의 이름을 딴 디미에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뇌샤텔에 위치한 모티에르 성을 매입해, 보베의 유통과 제조를 책임지는 본사를 세우는 독특한 행보를 보였다. 실제로 보베 캐슬에서 시계 제작 공정의 일부분을 진행하는데, 성안의 공방에서 직접 만난 시계 장인들은 모두 보베의 전통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5
6
7
1백90년의 역사, 시계 예술을 지키는 보베의 워치메이커
1822년 이래 긴 역사를 이어온 보베는 무브먼트에서 케이스 장식까지 100% 장인들이 수공으로 제작하는 것을 고집한다. 이 때문에 1년에 생산하는 시계는 3천 개 내외로 보베 타임피스의 기술력과 장인 정신에 희소가치라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더해진다. 보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에나멜 페인팅과 인그레이빙이다. 작은 다이얼에 에나멜 아티스트가 직접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 작업은 전 세계에서 오직 4명만이 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기술이다. 이에 걸맞게 보베는 시계에 스위스 메이드가 아닌 작은 부품부터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로 ‘스위스 핸드크래프트(Swiss handcrafted)’라 표기할 정도로 그 열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보베는 컨버터블 시계로도 유명한데, 19세기 초 에두아르 보베가 만든 첫 번째 포켓 워치는 그 시대에 볼 수 없는 장식미로 가득 차 있었다. 포켓 워치에 최초로 투명 케이스 백을 적용해 아름다운 무브먼트 데커레이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것도 보베였으며, 이러한 장식미에 대한 철학은 컨버터블 시계를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 손목시계에서 가죽 스트랩을 빼고 백 케이스를 열면 탁상시계가 되고, 여기에 다시 백 케이스를 닫고 회중시계 줄을 달면 그대로 포켓 워치가 되는데, 이 기능을 ‘아마데오 시스템’이라 칭한다. 이 아마데오 컬렉션 워치의 경우 앞뒷면이 다르게 구성되어 가죽 스트랩 방향만 달리하면 시계를 양면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보베만의 독특한 표현 양식이다. 보베의 CEO 파스칼 라피는 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에 과거를 기리며 이러한 고전 양식을 계승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오늘날 시간은 모든 곳에 놓여 있습니다. 거리, 컴퓨터나 휴대폰에도. 하지만 보베는 보베 타임피스 안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시계 기술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워치메이킹의 정신을요.” 데커레이션 아트의 미래를 보전하고, 워치메이킹의 정신을 기리는 전통과 조화를 이루는 혁신적인 행보, 멋지지 않은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