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러브콜을 받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듀오가 있다. 10여 년에 걸친 파트너십을 다져온 파트리크 기(Patrick Gilles)와 도로시 부아지에(Dorothee Boissier)다. ‘기 & 부아지에’ 스튜디오라는 간판을 내걸고 활동하는 이 파리지앵 크리에이터 듀오는 이국적인 색채와 자신들의 디자인 감각이 어우러진 레스토랑부터,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부티크 호텔과 럭셔리 브랜드 매장,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홈 인테리어와 초특급 프리미엄 호텔의 인테리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파리지앵다운 도도한 세련미가 뚝뚝 떨어지지만 지나치게 장식적이지 않고 따스한 자연스러움이 공존하는 디자인 세계가 꽤나 매혹적이다.
2~3 50개의 객실을 갖춘 체스 호텔은 세련된 가구와 나무 바닥, 단아하면서도 앙증맞은 소품이 전반적으로 시크하고 모던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사진 제공: 체스 호텔
“우리는 가장 북적거리는 파리 중심가에 고요함을 불어넣고 싶었어요.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한 공간을 창출하려고 애썼죠.” 이들의 설명처럼 몹시도 복잡한 도심에 위치한 체스 호텔은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풍경이 확 바뀌는 느낌이 들 정도로 꽤나 ‘사적인 적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체스(Chess)’라는 이름은 로비 플로어의 블랙 & 화이트 무늬에서 영감을 받아 붙인 것이다(다이닝 공간이기도 한 로비에서는 실제로 체스를 둘 수 있다). 객실은 고급스러운 진갈색 우든 플로어와 세련된 가구, 단아하면서도 앙증맞은 소품이 전반적으로는 시크하고 모던한 느낌을 창출하면서도 살짝 자연미도 풍긴다. 모든 객실에는 깔끔한 호텔 로고가 들어간 하얀색 몰스킨 노트가 놓여 있다. 목재와 대리석의 조화가 돋보이는 최신식 욕실 역시 이 호텔의 장점이다. 럭셔리한 분위기가 풍부하면서도 부담스럽지는 않은 절제미와 실용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균형의 미학. 이것이 바로 기 & 부아지에 듀오의 ‘언어’다.
사실 이들은 세계를 무대로 호화로운 호텔이나 ‘핫한’ 고급 레스토랑, 부호들의 저택을 주로 담당하는 ‘럭셔리 프로젝트’에 익숙한 크리에이터들이다. 그런 배경에서 볼 때, 50개 방을 갖춘 아담한 4성급 호텔인 체스 호텔 프로젝트에는 제약이 꽤 많이 따른 편이었다. 이 자리(6 rue du Helder 75009)에 원래 버티고 있던 낡은 호텔을 재건하는 프로젝트였던지라, 파리의 까다로운 건축 규제 때문에 큰 골격을 뜯어고치지 못한 데다 재료나 요소에서도 ‘넘치지 않는’ 수준에서 잘 추슬러야 했다. “파리에서 진행한 첫 번째 호텔 프로젝트가 체스였는데, ‘백지 위임장’ 같은 창작적 자유를 부여받았어요. 우리는 이 공간에 특별한 콘셉트나 주제를 불어넣고 싶지는 않았고, 그저 고요하고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되 우리 특유의 창조적 욕구에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죠. 그래서 예산의 큰 부분은 맞춤형 가구와 아티스트 작품 등 다분히 예술적인 요소에 할애했어요. 순수하게 우리가 선호하는 프렌치 스타일을 구현하고 싶었거든요.”
7 파리에 있는 일식당 키누가와(Kinugawa) 프로젝트. ⓒMatthieu Salvaing.
그들이 사랑하는 프렌치 스타일이란 무엇일까? 이들은 “프랑스 문화는 다양한 영향이 병치된 편인데, 18세기 파리에서는 베르사유의 영향이 굉장히 크게 확산됐지요. 응용미술이 문학, 철학, 회화, 음악 등 모든 영역에 반영됐고, 그런 전통이 파리 스타일에 강하게 배어 있어요. 저희에게는 이러한 파리지앵 스타일이 프랑스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기 & 부아지에는 프랑스식 바로크와 르네상스 스타일을 21세기에 맞게 새롭게 풀어내고, 비잔틴과 오리엔탈 스타일을 현대식 미니멀리즘에 접목하는 식으로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한다. 하지만 그들만의 스타일로 과하지 않게, 그러나 대담하게 녹여낸다. ‘건축적(archietectural), 관능적(sensual), 진정성 있는(authentic)’이라는 형용사가 이 듀오가 직접 고른 단어들이다. 이 커플은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긴 세월에 걸친 파트너십을 자랑한다. 둘 다 20대 초반이던 1995년 프랑스의 저명한 가구·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리에주르 스튜디오(Christian Liaigre Studio)에서 일하게 되면서 처음 만났다. 프랑스 인테리어업계 최고의 장인으로 평가받는 리에주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파트리크는 2002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리면서 독립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도로시는 크리스티앙 리에주르를 떠나 프랑스가 자랑하는 디자인 거장 필립 스탁 스튜디오로 옮겨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고 있었는데, 결국 2004년 둘이 힘을 합쳐 기 & 부아지에 스튜디오(www.gillesetboissier.com)를 설립했다. “파트리크는 원래부터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을 했고, 저는 원래 정치학을 전공했다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게 됐어요. 파트리크는 처음부터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방식이 독특했는데, 매우 예술적이었어요. 함께 일하면서 우리 둘이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많은 전문가들은 기 & 부아지에의 공동 작업에는 ‘스승’인 크리스티앙 리에주르의 품격 있으면서도 단아한 감각, 섬세한 디테일과 완성도, 그리고 필립 스탁의 감성 지능까지 반영돼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만의 우아한 감각이 두드러지기에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아무리 ‘커플’이라지만 상당히 주관이 강한 아티스트 2인의 가치관과 스타일을 어떤 식으로 조화시켜나갈까? “저희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성향이 강한 편이에요. 그리고 안주하게 만들 수도 있는 ‘안전지대’에서 빠져나오라고 서로를 격려하고 채찍질하죠. 저는 아이디어를 말로 풀어내는 걸 좋아하고 파트리크는 그걸 그림으로 옮기는 걸 좋아하고요.” 도로시의 말이다.
9 ‘모던 아시안’ 스타일을 지향하는 뉴욕 레스토랑 부다칸(Buddakan).
10 기 & 부아지에의 아파트 스타일 파리 쇼룸 ‘L’autre Appartement’. ⓒMatthieu Salvaing
11 몽클레어의 레모 루피니 CEO의 의뢰로 작업한 스위스 생모리츠의 스키 리조트 별장. ⓒSisters Ag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