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지상(紙上) 전시_Mindscape in our Landscape_02_이희준(Heejoon Lee)_도시의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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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6, 2022

Exhibition Concept 고성연 글·기획 김연우(독립 큐레이터)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마스크 없이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는 소소한 일상을 되찾은 요즘이다.
주변을 정처 없이 거닐다 보면 익숙했던 풍경이 달라 보이기도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19세기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표현을 빌려 거리를 배회하며 관찰과 사유를 통해 도시를 경험하는 ‘산책자(fla^neur)’의 개념을 정립했다. 산업혁명 이후 급변한 사회에 새로이 등장한 산책자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근대적 삶에서 느린 속도와 여유를 가지고 삶의 풍경 속에 감춰진 것을 발견하고자 했다. 자신을 주체적인 관찰자로 설정한 이들은 산책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텍스트를 읽어내고 고찰한 학자이자 예술가였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며 감각했던 산책자처럼, <스타일 조선일보>의 ‘지상(紙上)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다음 4명의 아티스트는 각자의 방식으로 관찰한 동시대 일상 풍경의 단면을 펼쳐 보인다.




이 희 준 Heejoon Lee

도시의 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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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은 주변의 환경이나 여행지에서 수집한 도시 풍경의 이미지를 기호화해 자신만의 다채로운 화면을 조성한다. 균일한 듯 제각각인 도시 속 건축물은 서로 다른 수직, 수평의 비례와 같은 조형적 요소로 단순화되어, 넓은 색면이나 도형의 형태로 캔버스 위에 층층이 쌓아 올려진다. 빈 캔버스를 채우거나 사진 이미지 위에 겹쳐진 두꺼운 마티에르는 아크릴 겔과 물감을 섞어 보다 진한 점성을 띠게 만든 재료다. 직접 제작한 스퀴지(squeegee)를 사용해 캔버스에 물감을 입히는 작가의 회화적 개입은 회벽에 시멘트를 바르는 건축물의 시공 과정을 연상시킨다. 화면에 더해지는 점, 선과 같은 조형적 요소는 먹선, 무게 추, 평행선과 같이 실제로 건축 도면이나 공사 현장에서 사용되는 도구를 상상하며 남긴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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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건축물은 작가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소재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공간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다시 꺼내보며 경험과 기억에 기반한 재미있는 요소를 발견한다. ‘The Temperature of Barcelona’는 유럽 여행 중에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보고 1백여 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한 현대성을 느낀 경험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이후 이러한 역사적인 건축물에 사용된 소재가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최신 유행 카페에서 사용되는 걸 보며, 오늘날 생활에서도 여전히 찾을 수 있는 모더니즘의 흔적을 통해 과거와 현대의 흥미로운 연결 지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2018년부터 시작한 ‘A Shape of Taste’ 연작을 통해서는 변화하는 건축물의 모습에서 시대의 취향과 감각을 읽어내고자 했다. 서울 시내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지역의 리모델링 건축을 소재로, 오래된 건물의 표피에 새로이 쌓이는 패널이나 페인트층을 관찰해 작업에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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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된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 캔버스를 보고 있자니 문득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경구가 머릿속을 스친다. ‘Less is More.’ 간결하고 ‘시적인(poetic)’ 작업으로 대표되는 그의 건축 철학을 더없이 잘 설명하는 말로, 단순성의 미학을 강조하는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연, 구체적인 원형과 세부적인 요소가 지워진 모습으로 재구성된 화면 속 도시의 건축물에서 오히려 공간을 가득 채운 리듬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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