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02, 2022
글 고성연
모두가 들떠 있거나 여전히 혼란에 휩싸여 있어도 시간은 차분히 흐르고, 봄이라는 계절도 기지개를 켠다. 이른 봄이면 막을 내릴 거장의 전시를 소개한다. 팝아트의 구루로 그동안 국내에서 ‘단독전’으로 접할 기회가 흔치 않았던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 그리고 자신만의 사진 미학으로 탁월한 명성을 자랑하는 네덜란드 작가 어윈 올라프의 대규모 회고전이다. 매체도 스타일도 다르지만 절로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작가들이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굳건히 작업을 이어나간 것으로 알려진 어윈 올라프의 경우에는 여전히 ‘현존하는’ 작가로 소개되면서 최신작까지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반갑다.
1 전시 섹션 3부 ‘고전: 현대적 초월’의 모습. 고전 회화와 시가 지닌 운율과 심상이 빚어내는 순간을 이미지로 담았다고. 2 ‘베를린_초상화 1’(2012), 크로모제닉 프린트, 120 x 90cm. Ⓒ Erwin Olaf 3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팬데믹의 상황을 빗댄 제목이 인상적인 ‘만우절_오전 9시 45분’(2020), 크로모제닉 프린트, 60 x 90cm. Ⓒ Erwin Olaf 4 전시 1부 ‘순간: 서사적 연출’에 선보인 ‘키홀’(2012). 열쇠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면 영상 작품이 나온다. 아른헴 미술관 소장(Collection Arnhem Museum)
이미지 제공 수원시립미술관
이미지 제공 수원시립미술관
#<어윈 올라프: 완전한 순간-불완전한 세계>_수원시립미술관 “나는 작품의 심미적 측면에서 관람객을 매혹하는 걸 좋아한다.” 독특한 사진 미학을 선사하는 네덜란드 작가 어윈 올라프(Erwin Olaf)는 이런 얘기를 할 자격이 분명히 있다. 특히 대개 무표정하게 등장하는 그의 초상 작품은 우연히 눈길을 주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계속 고정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사진에 관해 많은 글을 남긴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배치의 예술’인 회화와 달리, 형태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구도’는 사진의 영역에 ‘깊이’ 들어오기 힘들다고 했는데, 어윈 올라프의 사진은 꽤 회화적인 면모가 있다. 촬영의 피사체인 인물부터 스튜디오 배경에 이르기까지 ‘판’을 짜고 세세하게 연출하는 ‘감독’ 같은 그의 방식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언뜻 그림 같지만 그저 정적인 회화의 느낌은 아니다.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면 화면에서 뛰쳐나와 인상적인 행동을 취할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인간의 극적인 감정을 서사적으로 연출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 고요한 긴장감이 어려 있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관람객이 여기에 걸려들어 그 매력에 빠져들면, 그때 작품의 진짜 메시지로 그들을 단번에 사로잡아버리는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절로 눈길을 잡아끄는 인물들의 순간과 상황을 포장한 매혹적인 이미지는 그가 자주 다루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이라는 주제 의식을 향하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어윈 올라프 전시는 4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망라하는 대규모 전시다. 작가에게 영감을 줬던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회화와 연결시킨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레이크스 뮤지엄의 2019년 전시 <12인의 거장과 어윈 올라프>를 소개한 특별 섹션을 비롯해 작가 본인이 피사체로 등장해 코로나19 사태로 혼란에 빠진 동시대인의 심경을 표현한 사진, 그리고 영상과 설치 작품까지 ‘발품’이 아깝지 않은 구성을 갖췄다.
전시명 <어윈 올라프: 완전한 순간-불완전한 세계 > 전시 기간 2022년 3월 20일까지 홈페이지 http://suma.suw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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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4 오는 4월 3일까지 서울 성수동에 자리한 서울숲 아트센터(한화갤러리포레)에서 열리는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 눈물의 향기>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의 다양한 대표작(판화), 초기 흑백 포스터 작업, 잡지 표지, 브랜드들과 협업한 공예품 등 1백30여 점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스타일로 꾸민 방도 있다. Photo by SY Ko 2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 눈물의 향기> 전시 포스터.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 눈물의 향기>_서울숲 아트센터 만화, 광고에서 차용한 패러디 이미지,일상적 사물을 주 소재로 삼았던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은 앤디 워홀과 더불어 가장 친숙한 팝아트의 대가로 손꼽힌다. 고귀한 회화 같은 ‘고급’ 예술과 대중적인 저급 예술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타파한 팝아트는 처음에는 의심과 비아냥을 많이 겪었다. 예컨대 리히텐슈타인이 1962년 당대 최고의 갤러리인 뉴욕의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전시했을 때 ‘진부하다’는 비난을 받았고, 1964년 잡지 <라이프>는 ‘그는 미국 최악의 미술가인가?’라는 제하의 글을 싣기도 했다(사실 내용 자체는 우호적이었는데, 이는 ‘카스텔리’의 영향력 덕분이라는 해석도 있다). 서울 성수동의 서울숲 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 눈물의 향기>에서도 <라이프>의 원본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옆에 리히텐슈타인이 표지 일러스트를 장식한 1974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놓여 있어 달라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더니즘의 대항마로 떠오른 팝아트는 이렇듯 판도를 뒤집으며 포스터도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의 문을 열었다. 대중문화를 미술에 끌어들이는 영리함을 발휘한 팝아트 작가들의 세계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그다지 단순하지 않다. 리히텐슈타인만 해도 작업 방식을 보면, 그저 만화를 복사한 게 아니라 모티브들을 스케치한 다음 프로젝터로 영사해 연필로 베끼고, 스텐실로 원색, 윤곽선 등을 채워 넣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회화’를 기반으로 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벤데이 점’들조차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미술평론가 핼 포스터는 리히텐슈타인의 점들이 ‘수제 레디메이드’라는 팝아트의 역설을 집약한 결정체라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는 스페인 아트 컬렉터 호세 루이스 루페레스의 소장품을 모은 순회전으로 오리지널 캔버스 작품의 부재는 아쉽지만 작가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울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 해외 전시 개최지의 문화에 맞춰 늘 포스터를 제작했던 작가의 방식을 기념해 서울 전시용 ‘한지 에디션’ 포스터를 내놓았다(3백 점 한정판 판매).
전시명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 눈물의 향기> 전시 기간 2022년 4월 3일까지 문의 02-3446-9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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