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황제 시저는 로마제국 전체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국립 조폐소를 세우고 금화와 은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그로부터 2천 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세상 모든 나라들은 자국의 역사적인 인물을 새긴 돈을 만들고, 그에 따라 울고 웃는 삶을 살고 있다. 이처럼 돈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관념이 담겨 있다. 그런데 최근 돈의 미래를 바꿀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핀테크(FinTech)다.
핀테크는 금융이란 뜻의 ‘finance’와 기술을 의미하는 ‘technology’를 합쳐 만든 신조어로, 보통은 금융 산업에 IT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존의 금융 산업이 담당하는 모든 업무를 IT 기술을 통해 구현하고 대체하는 것까지 의미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핀테크가 등장한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역사적으로 그 기원을 따라가보면 17세기 영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금화나 은화처럼 희소가치를 지닌 화폐와 달리 17세기 영국에서는 세공업자들이 일정량의 금을 보관하면서 발행한 예탁 증서가 유통되었다. 그러면서 증서가 화폐의 기능을 했는데, 이를 현대판 은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금화나 은화와 달리 지폐는 그 자체의 가치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믿어주는 것이다. 18세기에 민간은행 설립이 붐을 이루면서 이와 같은 태환 지폐가 난립하자, 혼란을 막기 위해 1833년 영국에서는 영국은행의 은행권에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1844년에는 발권 능력을 영국은행에만 허용했다. 이로써 영국은행은 정부의 은행, 은행의 은행, 발권 은행이라는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현대적인 모습의 중앙 은행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금융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 동전이나 지폐라는 화폐가 전 세계의 경제 규모를 얼마나 대표하고 있을까?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에 따르면 2006년 전 세계에 존재하는 현금의 규모는 4백73조달러 정도라고 추정한다. 아마도 현재는 5백조달러가 훨씬 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전 세계에 유통되거나 보관된 동전과 지폐를 모두 모아보면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50조달러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4백50조달러가 넘는 돈이 단지 은행의 계좌에 표시만 되는 것들이다. 컴퓨터 스크린과 컴퓨터 서버에 가상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양이 90%인 셈이다. 결국 우리는 디지털 기술로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폐를 믿고 거래하는 것이므로 이미 오래전부터 핀테크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도 돈의 이동은 대부분 은행들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는 거래로 이루어질 뿐, 물리적인 지폐나 동전이 교환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컴퓨터들이 그런 거래를 승인하고, 우리 모두가 그것을 믿는 것뿐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정부가 파산하지 않기 위해 의회에서 부채 한도를 증액해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는 뉴스가 전해진 적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컴퓨터를 이용해 미국의 화폐 발행 수치를 높이고, 이를 사용할 수 있게 승인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 달러는 발행되지 않았다. 이렇게 전자 파일이나 데이터에 불과한 전자화폐를 이용하는데도, 우리는 어느 누구도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화폐가 조개껍질이든, 소금이든, 종이 쪼가리든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것이다. 단지 사람들이 얼마나 상호 신뢰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지가 그 화폐가 이용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만약 모두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화폐가 아니다. 화폐로서의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항상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으로 무엇이든 교환할 수 있기 때문에 화폐를 원하는 것이다. 결국 핀테크의 미래는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믿어주고 원하느냐에 달렸다.
이미 우리가 핀테크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면, 최근 들어 갑자기 핀테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생활에 직접 관련된 핀테크 기술이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핀테크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최근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다양한 모바일 지불 결제 시장인 듯하다. 소위 ‘OO페이’ 전성시대다. 애플페이, 삼성페이, 알리페이처럼 말이다. 이렇게 IT업체들이 지불 결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일단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는 2013년 2천3백50억달러에서 2017년에는 7천2백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한 성장세 때문에 모바일 결제 시장에 뛰어든 기업도 부지기수다.
사실 지불 결제의 전통적인 핀테크는 바로 카드다. 은행 계좌에 잔고가 있으면 체크카드로 지불 가능하고, 잔고가 없어도 신용 평가에 의한 최대 허용 범위 내에서 신용카드로 원하는 것을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 쇼핑은 앉은자리에서 결제가 가능하도록 해준다. 그런데 핀테크의 결제 서비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아마도 최근 인터넷 쇼핑을 하면서 한 번쯤 ‘왜 이렇게 불편하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천송이 코트’ 사건으로도 유명한 공인인증서도 그렇지만, 뭐 그리 묻는 것은 많고 입력해야 하는 것이 많은지 답답해서 결제하다가 짜증 나서 쇼핑하기 싫어진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다양한 모바일 지불 결제 서비스는 매우 간편하게 돈을 쓸 수 있게 해준다. 애플페이의 경우에는 개인의 지문을 인식해 지불 결제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삼성페이는 신용카드 정보만 입력하면 휴대폰을 지불 결제 기기에 대는 것만으로 간단히 결제가 된다. 그 밖에도 패턴을 그리거나 카카오톡을 이용해 지불하는 등 간단하면서도 편리한 지불 결제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쉽게 쇼핑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국내 상점 중 알리페이를 지원하면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인들의 쇼핑 편의성이 높아져 매출이 크게 늘어난 곳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손쉬운 지불 결제는 상거래를 활발하게 해주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전 세계의 여러 IT 기업들이 지불 결제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 현재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역시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이지만, 최근 중국의 성장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기존 국가들의 지불 수단이 종이 화폐에서 신용카드를 거쳐 핀테크로 이동한 것과 달리, 신용카드의 확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핀테크로 이동하는 형국이다. 특히 알리바바의 경우 결제부터 자산 운용까지 적용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데, 2014년 알리바바가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에서 거둔 매출 총액은 한화 약 3백50조원이다.
기존의 금융 시스템보다 훨씬 편리한 핀테크 서비스가 적용된 해외 송금 서비스도 각광받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해외 이주민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해외 송금액은 2000년 이후 3배 이상 증가해 2014년 5천8백34억달러에 달했으며, 이 중 4천3백50억달러가 저소득 개발 국가로 송금된다. 만약 이렇게 거대한 자본의 흐름과 관련해 송금 서비스의 수수료를 낮추고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면 어떨까?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라는 영국의 핀테크 스타트업은 외환의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원리에 따라 거액의 환전 수수료를 크게 경감시킨 서비스를 내놓아 주목받고 있다. 사실 이 서비스를 개발한 것은 영국에서 유학하던 에스토니아 출신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유학생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해외 송금과 환전을 자주 이용하는데, 가난한 유학생 신분에 비싼 수수료가 정말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를 절약할 아이디어를 생각하다가 만든 것이 두 나라 화폐를 바꾸려는 사람들을 연결해 최소한의 수수료만으로 해외 송금과 환전이 가능하게 만든 트랜스퍼와이즈다.
국내의 경우 해외 송금과 환전과 관련해서는 규제의 장벽 때문에 혁신적인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지만, 개인 간의 송금 서비스에는 편리한 모바일 송금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비바리퍼블리카의 토스(toss)라는 서비스가 대표적인데, 간단히 아는 사람의 전화번호만 가지고 문자메시지로 송금할 수 있는 편리한 서비스다. 송금받는 사람은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돈을 받을 수 있고, 보내는 사람도 앱을 이용해 간단히 송금할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이렇게 편리한데도 큰 사고 없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보안 기술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지난 7월 이 회사는 5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 활성화되는 또 다른 핀테크 서비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크라우드 펀딩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군중을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의 합성어로, ‘대중에게서 자금을 모은다’라는 뜻이다. 돈을 필요로 하는 개인이나 단체, 기업 등이 준비 중인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이에 매력을 느끼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투자받는 방식이다. 보통 공개 시 목표액과 모금 기간 등을 미리 정해놓고, 만약 기간 내에 목표액이 채워지지 않으면 모금 참여자의 돈은 모두 돌려준다. 크라우드 펀딩은 모금자에게 프로젝트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무대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할 수 있는 채널을 제공한다. 그리고 소액 투자자들의 참여를 유도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한다. 단순히 돈만 투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비용 마케팅 효과도 있다. 정해진 기간 내에 목표액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에 모금자는 물론 후원자들도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홍보한다. 최초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2008년 1월 문을 연 인디고고(www.indiegogo.com)이며, 가장 유명한 크라우드 펀딩은 2009년 4월 시작한 미국의 킥스타터(www.kickstarter.com)다. 국내에서도 와디즈(Wadiz), 텀블벅(Tumblbug) 등 약 30개의 크라우드 펀딩 스타트업이 활발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처럼 핀테크는 매우 많은 영역에서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금융 관련 규제가 혁신적인 핀테크 기업이 탄생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 때문에 기존 금융권의 기득권만 보호한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최근 들어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규제도 많이 완화된 만큼 혁신적인 핀테크 기업과 서비스가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한 이유로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지불 결제 서비스와 송금 서비스, 크라우드 펀딩 외에도 더욱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를 쉽게 만나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11월 30일 첫선을 보인 ‘온라인 보험슈퍼마켓’은 다양한 보험 상품의 보험료 등을 한눈에 비교·검색하고 인터넷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동차보험, 단독 실손 의료보험, 여행자보험, 연금보험, 보장성 보험, 저축성 보험 등이 서비스 대상으로 보험 소비자들이 더 좋은 조건의 상품을 쉽게 검색해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보험을 찾아 가입할 수 있다. 또 지난 11월 29일 카카오와 KT가 각각 주도하는 컨소시엄 두 군데에 허가를 내준 인터넷 전문 은행도 미래의 핀테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인터넷 전문 은행이란 쉽게 말해 오프라인 점포가 없는 은행이다.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만 담당하는 은행이라고 보면 된다. 점포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줄이고 일반 은행보다 예금 금리를 높이거나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으므로 소비자들에게 유리한 금융 상품이 다수 등장할 것이다.
돈이 활발하게 돌고, 투자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돈의 순환을 돕는 핀테크는 결국 그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핀테크를 주변에서 쉽게 만나게 되고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활용성이 높아진다면 핀테크를 어렵게 느끼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직접 활용할 것이다. 그런 만큼 이제 핀테크를 뉴스로만 만나지 말고 간단한 모바일 결제부터 한번 경험해보자. 편리한 세계를 경험한 후에는 과거의 복잡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편리함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해보자. 그러면 어느 사이 우리나라도 핀테크 선진국이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