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1_ Lovely Pastel
이번 시즌 남녀 컬렉션을 통틀어 주목해야 할 컬러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파스텔’이다. 과거 남자들에게 금단의 열매와도 같았던 파스텔컬러는 이번 시즌 그간의 설움을 딛고 화려하게 급부상했다. 에트로는 평소 엄숙하고 근엄하기만 했던 스트라이프 수트에 핑크를 더해 일탈의 즐거움을 부여했고, 알프레드 던힐은 보머 재킷에 핑크 컬러를 입혀 딱딱했던 영국 신사가 부드러운 로맨티시스트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질 샌더는 이번 시즌 컬렉션 전체에 파스텔컬러를 원 없이 썼고, 겐조도 파스텔컬러 포인트로 런웨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핑크 컬러를 입은 남자들이 거리를 화사하게 물들일 날이 머지않았다.
Trend 2_ Boom, Boom, Bomber!
보머 재킷은 미 공군 비행사들이 입는 항공 재킷에서 착안해 디자인한 것으로, 남성 아우터 중에서도 단연 견고하고 강인한 남성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번 시즌 보머 재킷은 다양한 소재와 패턴을 만나 어깨의 힘을 최대한 뺐다. 루이 비통은 항공 점퍼의 대표 소재인 나일론에 오렌지 컬러를 가미해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디올 옴므는 시즌 키워드인 그래피티 프린트를 더해 유쾌함을 부여했다. 경쾌한 프린트와 컬러를 통해 아이코닉한 보머 재킷을 완성한 디스퀘어드2와 데님 소재, 데님 스티치 디테일을 사용해 캐주얼하지만 클래식한 보머 재킷을 선보인 프라다까지, 다양한 보머 재킷이 이번 시즌 핫 아우터로 떠올라 빅 하우스들의 선택을 받았다. 사계절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아이템이기에 패션쇼에 등장한 디자인도 부담스럽지 않다.
Trend 3_ Love, Robe
최근 몇 시즌 전부터 로브의 활약이 심상치 않다. ‘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로브가 매 시즌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로브는 데이 룩과 이브닝 룩 두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아우터로 탈바꿈했다. 제냐 쿠튀르는 클래식한 동시에 모던한 로브로 기품 있고 우아한 남성을 표현했고,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블랙 컬러와 소재 특유의 광택을 활용해 견고한 남성상을 드러냈다. 유려하게 흐르는 실루엣이 특징인 살바토레 페라가모, 세련된 동시에 편안한 무드를 놓치지 않은 루이 비통까지, 관능적이고 섹시한 로브의 변신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Trend 4_ Elegant Denim
미국 노동자의 작업복에서 비롯된 데님의 신분은 매 시즌 수직 상승 중이다. 이번 시즌 데님 트렌드는 노동자나 거리의 힙스터가 아닌 고고한 부르주아들이 입을 법한 우아하고 세련된 데님 룩으로 방점을 찍었다. 버버리 프로섬과 발리는 데님 스타일링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버버리 프로섬은 컬러풀한 재킷과 데님 트러커의 레이어링을, 발리는 클래식한 트렌치코트와 더블 데님 아이템으로 동시대적인 룩을 연출해 박수를 받았다. 데님 투 버튼 수트를 통해 수트의 정의를 새롭게 쓴 디올 옴므, 데님 고유의 블루 컬러를 활용해 컬러 스타일링을 제시한 프라다는 데님이 이토록 우아하고 세련될 수 있음을 증명하며 데님의 귀환을 알렸다.
Trend 5_ Over Trousers
한 디자이너의 ‘슬리밍’한 철학 탓에 남자들도 한동안 여자 못지않은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엔 안심해도 되겠다. 실루엣이 보다 넉넉하고 여유 있는 바지가 대거 등장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더욱 우아하고 세련되게!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수장이자 쿠튀르 라인을 새롭게 선보인 스테파노 필라티는 그의 실루엣 철학이 깃든 브로큰 수트를 통해 더욱 기품 있고 넉넉한 팬츠를 선보였고, 에트로는 네이비와 옐로 컬러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실루엣을 더욱 극대화했다. 달콤한 파스텔컬러의 와이드 팬츠를 선보인 질 샌더, 실크 특유의 광택을 이용해 물 흐르듯 유려한 실루엣을 연출한 폴 스미스의 팬츠는 보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느껴진다.
Trend 6_ Neon Color
매 시즌 남성 컬렉션의 컬러 팔레트도 진화하고 있다. 부드러운 파스텔컬러부터 눈이 따가울 정도로 알싸한 네온 컬러까지, 남성 컬렉션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다양한 컬러가 등장한 것이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제안한 네온 컬러 플레이는 철저하게 양극화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이거나! 버버리 프로섬과 이튜드 스튜디오는 모자와 스니커즈, 또는 바지만 소극적으로 활용해 전체적인 룩에 컬러 포인트만 주었다면, 모스키노와 디스퀘어드2는 탄산수처럼 톡 쏘고, 형광펜처럼 강렬한 극강의 네온 컬러 컬렉션을 선보였다.
Trend 7_ Touch of Art
예술이 패션이 되고, 패션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한다. 예술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디자이너들은 신비로운 우주 공간 같은 예술이라는 세계에서 언제나 새로운 행성을 찾아 헤맨다. 지난 시즌 키치 문화의 거센 열풍이 분 탓일까? 이번 시즌 패션 속 예술은 더욱 위트 있고 유쾌하게 등장한 것이 특징이다. 버버리 프로섬은 빈티지 북 커버에서 영감을 받아 클래식한 재킷과 셔츠, 바지에 익살스러운 프린트를 입혔고, 디올 옴므는 스트리트에서 볼 법한 그래피티를 하이 패션으로 승화했다. 디스퀘어드2는 특유의 위트를 발휘해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를 패러디했고, 폴 스미스는 감각적인 팝아트 프린트로 모던한 감성을 대변했다. 별도의 관람료는 필요 없다. 곧 이 작품들이 거리를 점령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