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조회수: 1118
8월 06, 2025

글 김수진(객원 에디터)

Artist in Focus

예술가의 혁신이란 무엇일까? 혁신가들은 남들보다 선구자적인 위치에서 깃발을 꽂는 게 아니라 “예술은 자연이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부분을 완성시킨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처럼 예술과 자연,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구조와 흐름을 표현하고 미래의 ‘우리’에게 닿길 원하며 작품 자체보다 그것을 ‘보는 방식’에 주목해 관객이 그 의미를 구성하는 능동적 존재이길 바란다. 각자의 ‘몸’에 참여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모든 것과 연결하는 안토니 곰리(뮤지엄 산)와 미래를 위한 회화를 선보인 힐마 아프 클린트(부산현대미술관), 하나의 기호를 무한하게 해석하는 료지 이케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 3명의 혁신적인 예술가의 이야기가 뜨거운 한여름에 도착했다.


1
2
3
4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예술은 진화의 징후이자 촉매”라고 힘주어 말하는 영국의 예술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b. 1950). 그는 인간성, 공간, 대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으면서도 변화하는 사회를 예술로 끌어들이고 있다. 정지된 조각에 우리 삶을 투영하게 만드는 그를 보면 예술가의 혁신이란 결국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존재 그 자체로 되돌아갈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몸이면서도 타인의 몸을 평등하게 담아낸 그의 조각은 사실 대단한 설명 없이 그냥 그 앞에 존재해보면 알게 된다. 이번에 공개된 뮤지엄 산의 동굴 같은 공간이든, 리버풀의 해변 앞이나 템스 강변 앞이든, 그의 조각이 놓여 있는 곳 어디에서든 말이다.
몸으로 우주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조각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뮤지엄 산은 반세기에 걸쳐 신체와 공간의 탐구, 인간의 존재를 고민해온 세계적인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대규모 개인전 (11월 30일까지)와 더불어 그가 건축가 안도 다다오(Tadao Ando, b. 1941)와 협업해 조성한 새로운 공간 ‘그라운드(GROUND)’로 시선을 모으고 있다. 뮤지엄 산 설계를 맡기도 했던 안도 다다오는 안토리 곰리에 대해 “인간이 산다는 것 자체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가라는 점이 확실히 느껴졌습니다”라고 했다. 인간의 생사, 그리고 생명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개막식 프리뷰 당시 ‘그라운드’에 먼저 등장한 안토니 곰리는 공간에 놓인 7점의 조각 ‘Block Works’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관객들에게도 조각 옆에 직접 누워보거나 앉아보라고 권했다. “우리도 결국 죽습니다. 사실 우리 몸은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고, 그러면 새로운 자양분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죠. 저는 조각가의 의무 중 하나가 지질학적 시간을 유념하면서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유한성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다루는 것이 조각가의 소명 중 하나라고 봅니다.” 로마의 판테온 같기도, 지구의 원형 같기도 한 ‘그라운드’에서 마주하는 그의 연작은 건축과 조각, 자연이 가장 이상적으로 만난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의 몸’을 사유하도록 이끈다. “몸을 어떤 이상화된 형상으로 생각하기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장소가 되는 걸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엎드린 채, 머리를 옆으로 돌린 채, 혹은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 몸 조각들은 7개의 프레임을 통해 바람 속 나뭇잎의 움직임 같으면서도 존재의 탄생과 소멸 과정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다만 존재할 수 있는 공간만이 있을 뿐”이라는 작가의 말을 곱씹게 한다. 1960년대부터 인간이 자연과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조각의 가능성을 발전시켜온 그의 철학은 천체가 중력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운동을 형상화한, 수십 개의 스틸 원형 구조물로 이뤄진 거대한 설치 작품 ‘Orbit Field II’에서 생생하게 느껴진다(〈DRAWING ON SPACE〉 전시). 관람객들은 작품 사이사이를 이동하면서 공간으로서의 ‘몸’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정신이 머무는 장소, 존재와 세상이 만나는 장소 등으로 끝없이 확장된다. 안토리 곰리의 무한한 세상은 미술관부터 도시, 도로, 산, 해변, 능선 같은 현실적 공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공공 미술의 역사를 다시 쓴 작가로 유명하기도 한데, 1998년 영국 북동부 게이츠헤드라는 작은 도시에 세운 초대형 조각 ‘Angel of the North(북방의 천사, 높이 20m, 무게 1백 톤에 달한다)’는 아주 작은 이 도시를 세계적인 문화 관광도시로 변신시키는 출발점이 되게 했고, 영국 리버풀 근교의 크로스비 해변에는 1백 개의 인체 조각 ‘Another Place(또 다른 장소, 1997)’를 세워 크로스비 해변을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만들었다. 곧 우리나라 신안 비금도 해변에서도 거대한 그의 조각 ‘Elemental’을 볼 수 있다. 인체의 형태를 띠는 이 작품은 바닷물이 들어오면 잠기고 물이 빠져나가면 관람객이 그 안에 걸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우리의 동물적인 본성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촉촉한 인간의 두뇌를 메마른 AI가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몸은 우주만큼이나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자율적인 존재이기에 몸을 통해 우주를 알게 될 수 있다고 믿는 안토니 곰리는 인간으로서 가장 소중한 부분은 이 세계에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다른 몸, 즉 다른 존재들과 교류하고 반응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1백 년쯤 뒤에는 그의 조각 옆에 어떤 풍경과 존재가 함께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Artist in Focus

01. Antony Gormley_ 안토니 곰리 보러 가기
02. Ryoji Ikeda_ 료지 이케다 보러 가기
03. Hilma af Klint_ 힐마 아프 클린트 보러 가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