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엔나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매장 중 하나이자 유럽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옥션 하우스인 도로테움(Dorotheum)이 있다. 3백 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 1707년 당시 황제였던 요제프 1세가 설립한 도로테움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도로테르가세(Dorotheergasse)에 위치한 비엔나 본사를 필두로 독일,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그리고 파리와 런던, 브뤼셀, 프라하 등 유럽 주요 도시에 지점을 둔 글로벌 경매업체다. 독어권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형 옥션 하우스가 그렇듯 경매 카테고리가 무척 다양한 편인데, 올드 마스터 회화부터 19세기 회화, 모던, 컨템퍼러리, 앤티크, 아르누보, 보석, 시계, 가방 등을 아우른다. 특별 경매도 정기적으로 열리는데 디자인, 도자기, 유리공예, 사진, 역사적인 과학 기기, 악보, 우표, 동전, 책, 자필 사인 등 범주가 다채롭다. 1백 명 넘는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세심하게 상담해주기도 한다.
●● 도로테움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도로테움 궁’이라고 불리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는데, 원래 건물은 1901년 완성되었다.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을 기획한 인물은 비엔나의 명물인 링슈트라세를 설계한 푀르스터(Förster)다. 도로테움은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지만 사실 나치 시대에는 빼앗은 유대인의 재산을 처리하는 역할을 해야 했던 가슴 아픈 역사도 지니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도로테움은 재건에 나섰다. 긴 세월에 걸쳐 명성을 다지며 성장 가도를 달리다 1980년대 입구와 내부를 재단장하는 등 레노베이션을 거쳤다. 2001년 가을 현재의 경영진이 인수하면서 도로테움은 비엔나라는 도시가 경매의 메카로 각광받을 수 있도록 예전에 비해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경매장은 확실히 직접 가봐야 ‘나와의 인연’, 혹은 적어도 인연을 맺고 싶을 만큼 눈을 사로잡는 대상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아르눌프 라이너(Arnulf Rainer)의 감각적인 회화라든지 피로 길라르디(Piero Gilardi)의 존재감 넘치는 설치 작품은 피곤한 와중에도 절로 몰입해 감상하게 된다.
3 일부 레노베이션 작업을 거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고풍스러운 건축물을 유지하고 있는 도로테움. 3백 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 1707년 당시 황제였던 요제프 1세가 설립했다. 희귀한 품목에 관심이 있다면 연간 캘린더를 미리 체크할 필요가 있다.
● 사실 미술 시장을 얘기하자면 온도가 좀 달라지기는 한다. 비엔나는 명실공히 찬란한 합스부르크의 위용 넘치는 유산을 바탕으로 한 문화 예술의 인프라와 토양을 지니고 있고, 고전과 동시대를 아우르는 풍부하고 수준 높은 미술 컬렉션과 기획력도 갖춘 문화 예술 허브 도시다. 최근에는 한겨울인데도 빈 미술사 박물관 앞에 줄이 똬리를 틀 정도로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엔나가 요즘 ‘핫 데스티네이션(hot destination)이라고 하네요.” 태피스트리 전시를 설명하면서 라파엘의 예술 노동이 어째서 불공정한 계약이었는지 강조하던 한 큐레이터가 한 말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경매와 함께 아트 페어, 그리고 ‘갤러리 신’이 나란히 시너지를 내면서 떠받쳐줘야 하는 법이다. 경매는 도로테움이라는 큰 산맥이 있기는 하지만 크리스티와 소더비 같은 브랜드 파워를 갖춘 ‘공룡’이 곁에 버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트 페어를 놓고 보더라도 안 그래도 경쟁이 치열한 시장인데, 프리즈와 아트 바젤 같은 ‘메가 브랜드’가 포진한 곳이 런던, 파리, 바젤 등의 유럽 도시이기에 경쟁력을 한층 더 키워야 한다. 반드시 규모만 염두에 둔 출혈경쟁이 아니라 틈새를 개발하거나 동맹을 맺는 현명한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 성장을 위한 페달을 가장 세게 밟아야 하는 생태계는 갤러리 업계다. 그만큼 잠재력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진부한 말 같지만 실제로 1구에서 4구에 자리한 크고 작은 갤러리를 순회해본 결과, 상당히 흥미로운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아직은 주류 시장에서 ‘이름’이 잘 알려질 정도로 브랜딩되어 있거나 규모가 크지 않지만, 다양한 개성을 지닌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함께 커나가는 데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신생 갤러리든,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독자적인 여정을 꾸려온 중견 갤러리든 ‘초심’을 유지하면서도 바등바등 조급해하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기도 했다. “이 도시에서 무수하게 벌어지는 전시나 행사 콘텐츠를 보세요. 한결같이 수준이 높은 편이죠.” 오래전에 프랑스에서 이주해 줄곧 전시 공간을 둔 화랑(스타이넥 갤러리)을 꾸려왔다는 한 갤러리스트의 말에 십분 공감하며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2 마르틴 얀다(Martin Janda) 갤러리에서 진행 중이던 <Svenja Deininger – Cache> 전시 모습.
3 빌드라움(Bildraum) 갤러리에서 열린 카이 필리프 트라우제네거(Kai Philip Trausenegger) 전시. 전시명은 <Auxiliary Lights>.
[ART + CULTURE ’23-24 Winter SPECIAL]
03. 가장 사적인 ‘취향 페어링’을 찾아서 보러 가기
05.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세상의 시선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예술 보러 가기
06.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고전부터 컨템퍼러리까지 아우르는 월드 클래스 컬렉션과 기획전 보러 가기
07.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비엔나에 신선함을 불어넣는 새 랜드마크들 보러 가기
08. A Glimpse into Vienna’s Art Scene _#차근차근 보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는 미술 시장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