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해링턴(Steven Harrington)_APMA 멈추지 않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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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3, 2024

글 김민서 l 이미지 제공_APMA

스티븐 해링턴(Steven Harrington, b. 1979)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2020년 어느 갤러리의 전시에서였다. 다른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처음 본 순간을 떠올리기 어려운 데 비해 스티븐 해링턴의 작품은 첫인상이 뇌리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당시는 단체전이라 그의 작품 세계까지는 깊이 알 수 없었으나, 작품의 색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동감, 사람보다 큰 캐릭터 조각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스티븐 해링턴의 작품을 좀 더 깊고 넓게 탐구할 수 있는 전시가 7월 14일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에서 열린다.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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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융은 ‘색은 사람의 무의식적 정서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단순한 미학적 요소를 넘어, 색은 개인의 심리 상태와 감정을 반영하고 영향을 준다. 4년 전 본 스티븐 해링턴(Steven Harrington)의 작품이 기억에 오래 남은 것도 그의 작품이 발산하는, 다채로우면서 일관된 색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티븐 해링턴은 ‘사이키델릭 팝 아티스트’로 분류된다. 환각을 일으킨다는 ‘사이키델릭’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처럼 그의 작품에서는 경쾌하고 약간은 흥분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에게 색은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색상을 일상적인 사물과 자연에 접목해 작품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재해석하고 주변을 색다르게 바라보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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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햇살 속으로
스티븐 해링턴의 작품 세계는 그가 나고 자란 캘리포니아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2012년 독일 매거진 <친구의 친구(Freunde von Freunden)>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캘리포니아 바이브’가 의도된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씨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작가 스스로도 추측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관적이고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색상을 사용했다지만, 환경이 작품에 끼치는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어릴 적부터 그는 손에서 그림 도구를 놓지 않았으나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유치원 시절 내내 그림을 그렸는데, 어느새 크레파스가 연필로, 붓으로 발전했고, 대학에서는 실크스크린, 목탄, 조각, 판화, 스케이트보드 디자인 등에 몰두했습니다. 멕시코계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자랐으며, 히스패닉 예술과 문화를 어디서든 접할 수 있었어요. 음악, 예술, 음식을 좋아하는 부모님과 가족 속에서 자란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판화 작업으로 시작한 그의 초창기 작품을 몇몇 볼 수 있는데, 최근 작업보다 덜 단순하고 톤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결과물도 좋아하지만 과정이 실험적이고 시간이 많이 소요돼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는 단순화를 위해 일부러 검은 페인트로 윤곽을 그리고 최소한의 색상 팔레트를 사용했어요. 이전 작품과 확연히 달라졌고, 평면적이고 그래픽적인의 스타일의 그림을 즐겨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스티븐 해링턴 작품의 시그너처 캐릭터는 ‘멜로’와 ‘룰루’다. ‘멜로’란 이름은 2013년에 실크스크린 작품의 타이틀로 처음 등장했다. 캐릭터로서의 멜로가 탄생한 건 2015년이다. 그는 인종, 나이, 성별에서 자유롭고 전 세계 누구와든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개발하고자 했고, 지금의 멜로를 만들었다(그럼에도 그는 인터뷰에서 멜로를 ‘he’, 룰루를 ‘she’로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멜로는 무의식적인 생각을 위한 일종의 상징이 되었고 페인팅, 드로잉, 조각, 브랜드 협업 작업 등에서 자유롭게 사용됐다. 자신이 완성한 그림에 멜로가 물감을 덧칠한다는 콘셉트의 몇몇 작품(‘엉망으로 만들다’(2019) 외)에서 알 수 있듯 그에게도 ‘멜로’는 단순히 그림 속 캐릭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제 생각에 멜로는 매우 자기 인식이 뛰어나, 확신이 서지 않은 프로젝트에도 자신이 어떻게 언제 사용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멜로와 함께 다니는 야자수 캐릭터 룰루는 멜로보다 더 오래전에 등장했다. “2009년 처음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프랑스 친구가 고속도로에 늘어선 큰 야자수가 진짜라는 것을 신기해하더라고요. 로스앤젤레스에서 나고 자란 저는, 제가 그동안 야자수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룰루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서 ‘마법’을 보라는 단순한 상기에서 시작됐고, 시간이 흐르며 멜로의 든든한 조력자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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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균형을 찾는 여정
귀엽고 발랄한 작품 분위기와 달리 사실 스티븐 해링턴이 작품으로 말하려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코로나19 시기에 그린 ‘꽃향기를 맡기 위해 멈춰보세요’는 일상의 소중함과 현재를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시사 연작’(2022~2023) 같은 작품에서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균형을 찾아야 해’, ‘여행이 필요해’, ‘자기반성 연작’이라는 제목처럼 자신의 불안을 작품에 반영하기도 한다. 초기 작업에서부터 등장한 음양 기호에서 볼 수 있듯 ‘균형’은 작품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그림 그리는 행위로 스스로를 치유한다. 수년 전 불안에 빠졌던 그는 그리는 과정이 명상과 비슷하다고 느꼈고, 압박감과 불안, 걱정이 삶의 작은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쾌한 그림을 그리면서 내면의 불안을 가볍게 다루게 된 것이다. “지금은 그림 그리는 것이 속도를 늦추고 그저 반성하는 개인적 시간이 되었어요. 그 반성은 종종 일종의 무의식적인 꿈으로 변하고, 저는 그 과정이 좋아요. 이것을 ‘영적(spiritual)’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과 매우 비슷한 느낌입니다.” 스티븐 해링턴은 오래전부터 브랜드들과 협업해왔다. 2012년에는 에이스 호텔, 미국 스니커 브랜드 제네릭 서플러스 등과 협업했고, 전시에서도 볼 수 있듯 최근에는 나이키, 유니클로, 이케아, 몰스킨, 크록스, 이니스프리 등 스펙트럼을 더욱 넓혔다. 협업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저는 인구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을, 예술과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요. 이것이 예술을 하는 모든 창작자에게 최우선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프로젝트보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할 때 가장 도전적이라고 생각되는 동시에 큰 만족감을 느껴요.” 이번 전시에서 판화, 영상, 회화, 조각, 벽화, 협업 제품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듯, 그는 하나의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삶이 흐르는 것처럼 변화를 추구한다. 때로는 명확한 테마가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모호할 수 있으며, 때로는 실험적일 수 있다. “제 삶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작업의 테마와 메시지도 계속 진화합니다. 제가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매번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그 전과 다른 경험을 한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우리가 정확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고, 저는 그 안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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