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리듬을 따라 흐르는 봄날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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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2, 2025

글 김수진(객원 에디터)

제3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25)

강릉이라는 도시를 바탕으로 사람과 예술을 연결하겠다는 뜻에서 출범한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이 지난 3월 14일 막을 올렸다. 설화의 신비가 가득한 도시 곳곳의 다양한 공간과 시각 미술을 잇는 축제로, 두 차례에 걸쳐 가을에 열렸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봄날을 장식하고 있다. 공동체의 이야기와 개인의 서사가 교차하는 공간이 어우러지는 이 행사는 지역과 현대미술이 만나 어떻게 세계인과 소통하는지 보여주며, 앞으로 강릉이라는 무대에서 현대미술이 어떤 장면을 마주치며 발전해나갈지 궁금하게 만든다. 4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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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갈까?”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설렌다. 경포대와 정동진 등 명소를 품은 강릉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 도시로 부각되기도 했지만 단오제(음력 5월), 소금강청학제(10월), 커피 축제까지 열리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강릉으로 작업실을 옮기며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 이런 배경에서 벌써 3회를 맞이한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이하 GIAF)의 존재감은 더 눈여겨볼 만하다. 2022년 처음 등장한 GIAF는 경험과 기억의 축으로 확장한 새로운 강릉을 탐색한 ‘강릉연구’라는 주제를 선보였고, 1913년 강릉 김씨 부인의 여정을 기록한 오래된 기행문의 제목을 딴 <서유록>을 내세운 2023년 두 번째 페스티벌에서는 대관령 옛길을 걷는 여정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강릉 이야기’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올해 페스티벌의 제목은 ‘에시자, 오시자’. 강릉단오굿에서 악사들이 사용하는 구음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를 초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박소희 GIAF 총괄 감독은 “GIAF는 예술과 자연과 역사,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며 “특히 올해는 대관령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에 대한 이야기, 고개를 넘으며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 그 사이에서 탄생한 수많은 신성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성한’ 존재는 강릉 곳곳에 숨어들었다. 강릉역을 시작으로 옥천동 웨어하우스, 강릉대도호부 관아, 옛 함외과의원, 창포다리, 일곱칸짜리 여관, 작은 공연장 단,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등 강릉의 특별한 공간에 작가 11명의 작품이 스며들었다. 국보로 지정된 객사문과 보물로 지정된 칠사당이 위치한 강릉대도호부 관아에서는 작가 4인의 작업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우선 버려진 개들(3백67점)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 윤석남 작가의 설치 작업과 강릉 단오장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소리를 담아낸 안민옥 작가의 신작 ‘럭키 헤르츠’는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야외를 수놓고 있다. 대도호부의 중대청에 자리한 홍이현숙의 영상 작업은 냄새, 소리, 진동 등의 감각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초월한 공간을 다루는데, 마치 고개를 넘어온 대관령 설화 속 인물들을 만나는 느낌이 든다. 전대청에 설치한 아르메니아계 시리아인 3세 흐라이르 사르키시안(Hrair Sarkissian)의 작업 ‘Sweet & Sour’는 오래된 인물과 사라진 장소를 애잔하게 쓰다듬으며 디아스포라의 세계를 다룬다. 사르키시안은 조상이 살던 한초릭(튀르키예에 속한 사순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아르메니아인은 사순을 창조 신화와 혁명가의 노래, 전설이 탄생한 곳으로 여겼다)을 직접 방문해 카메라에 담았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살을 둘러싼 서사를 전해 들으며 자랐습니다. 이 영상을 그곳에 가본 적 없는 아버지에게 보여드렸고, 아버지의 표정에 드러나는 감정을 또 다른 영상에 담았습니다. 이 영상들은 결국 아버지와 풍경, 저 자신을 오가는 침묵의 대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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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강릉 출신인 김재현 작가의 작품 ‘써클 트래킹’이 천장에서 휘날리는 강릉역부터 강릉단오제를 피아노 연주와 결합한 정연두 작가의 신작이 선보이는 옥천동 웨어하우스, 호추니엔 작가의 신작 다섯 편을 엮어 만든 영상 ‘변신술사’를 상영하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1958년에 교회로 지었다가 2010년 강릉시가 매입해 공연장으로 바꾼 작은 공연장 단(이양희) 등도 올해 GIAF의 무대가 된 역사적인 공간이다. 특히 페스티벌 기간 동안 매주 토·일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이양희의 산조 공연은 기회가 된다면 ‘강추’ 하고 싶다. 오래된 마룻바닥에서 펼치는, 한국 전통 무용에 자신만의 안무를 더한 특유의 퍼포먼스는 ‘하늘과 땅 위의 모든 존재를 초대하는’ 듯하다. 강릉에서 설립된 최초의 외과 병원으로 1940년대 주택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옛 함외과의원에서는 이해민선 작가의 회화와 키와림 작가의 설치 작업을 보여준다. 치료실로 쓰인 방이나 거실 등을 돌아보면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난 듯한 모습이 즐겁게 다가오는데, 특히 2층 방에 걸려 있는 이해민선 작가의 신작 ‘덜 굳은 사물’은 한때 몸을 치료했던 공간을 아름답게 되살리는 듯하다. 1957년에 준공된 일곱칸짜리 여관에서는 서다솜의 신작 ‘있는 없는’을 선보이는데, 도깨비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그들의 습성과 삶의 태도를 조명한다는 젊은 작가의 기획이 위트 있게 느껴진다.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의 중심 역할을 해온 창포다리에서는 김재현 작가의 ‘플로어 맵핑’이 바람에 흩날리며 이번 페스티벌 장소들을 현대적인 그래픽으로 마무리했다.
GIAF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강릉 출신 기업인 정상수 회장이 설립한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이 기획했기에 더 의미 깊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강릉을 예술 도시로 가꿔보겠다는 의지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 2년 뒤에는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문화 복합 시설도 경포대 근처에 준공될 예정이라 기대감이 높다. 사적인 것들이 때론 가장 멀리 나아가듯 강릉의 아름다움을 따라 문화 산책을 하다 보면, 잠깐이라도 다른 세계의 장면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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