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들리니? 치명적인 현대인의 병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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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1, 2011

글 안주연(정신과 전문의)

우울증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병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하달 수 있지만,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 위험한 병이다. 이유 없이 무기력함을 느낀다거나 불면에 시달리고, 일상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등 사소한 증상 또한 우울증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시선 때문에 자신의 속내를 남에게 털어놓기란 쉽지 않다. 또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자니 정신과 문턱은 한없이 높게 느껴진다. 그 때문에 최근엔 정신적인 수양을 도와주는 센터나 심리 치료 카페(ex. 홀가분), 테라피 치료 등이 인기다.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우울증 치료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과연 나도 우울증일까’를 판단해보는 체크리스트부터 일상생활에서 우울증을 극복하는 법, 테라피 심리 치료 등을 소개한다.



어떤 사람은 즐거움에 못 이겨 죽고-
어떤 사람은 공부에 죽고-
어떤 사람은 고생 끝에 죽고-
어떤 사람은 따분해서 죽고-
어떤 사람은 병으로 죽고-
어떤 사람은 미쳐서 죽고-
그리고 어떤 사람은 마음이 시들거나 비탄에 잠겨 죽나니
-조지 고든 바이런(기분 장애를 앓던 천재 시인)

 

 

마음의 감기, 우울증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화사한 풍경 속에서도 유독 침울하고 어두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울증은 주요한 기분의 장애로 몸과 마음에 동시에 영향을 준다. 우울감과 더불어 식욕과 수면의 변화, 불안, 의욕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나 직업적·사회적·신체적 기능에 심각한 저하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질환이다. 우울증은 흔하고 중요한 심신의 병으로, 심하면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울증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정보보다 잘못된 편견과 오해가 많아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혼자 고통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우울증’이란 정확히 어떤 병일까? 기분이 가라앉으면 다 우울증일까?
‘우울’은 근심스럽거나 답답해 활기가 없는 기분을 이르는 말로,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하는 단어이다. 실제로 살다 보면 누구나 우울하고 슬픈 기분을 느끼게 마련이며, 이를 ‘일상적인 우울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정신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우울증(주요 우울 장애)’은 일정 기간 이상 기분뿐 아니라 의욕, 신체 활동, 행동, 수면, 식욕, 관심 등 삶의 전반적인 부분이 모두 저하되는 병적 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우울증은 흔한 질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 1백 명 중 2~3명 이상이 현재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5명 중 한 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한다. 어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 본인 또는 가까운 사람의 우울증을 겪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정보는 미미한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 무지하거나 편견 또는 오해를 갖고 있다. 이는 정신 질환 전체를 ‘제정신이 아닌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꺼리고 터부시하던 오래된 문화에서 비롯된다. 우울증에 대해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피하다 보니, 제대로 된 진단이나 치료는 요원해지고 병이 심해지거나 만성화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라는 표현이다. 가장 흔하고 사소한 질환인 감기에 비유함으로써 우울증에 대한 거리감을 줄여 진단과 치료로 이어지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감기’는 우울증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표현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흔한 질환이며, 휴식과 투약으로 호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울증은 감기와 유사하다. 그러나 우울증은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삶을 뒤흔들고 건강과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이기 때문에 감기와 같은 가벼운 병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또 재발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도 감기와의 차이점이다.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세상

많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기분이 가라앉거나 컨디션이 저하되면 “나 우울증인가 봐” 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일반적 우울감과 우울증은 완전히 다르다. 일반적인 우울감은 개인의 상황이나 주변 환경에 의한 경우가 많으며, 지속되지 않고 일시적이다. 또 신체 증상이나 자살 사고가 없으며 가벼운 기분 전환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만으로도 금세 좋아진다.
이에 반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이 2주 이상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나며, 주변 상황이 좋아져도 바로 회복되지 않는다. 기분뿐 아니라 수면과 식욕,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40대 여성 A씨가 남편과의 불화, 사춘기 자녀의 반항으로 며칠간 마음이 답답하고 기분과 흥미가 저하된다면 일시적이고 일반적인 우울감일 확률이 높다. 이런 가벼운 우울감은 주변 상황이나 본인의 컨디션 변화 등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고 기분 전환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등으로 쉽게 호전된다. 하지만 우울감이 심해지면서 불면증과 불안감, 식욕 저하에 시달리게 된다면 신체 질환이나 주요 우울 장애 등 치료가 필요한 질환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반드시 진찰을 받아보기를 권한다.
A씨의 증상이 주요 우울 장애에 의한 것이라면, 그녀는 우선 우울, 슬픔, 상실감 등 심한 기분의 저하를 겪게 된다. 계속 눈물이 나거나 기분이 가라앉고 누가 보아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A씨의 수면과 식욕, 성욕과 일반적인 의욕 등의 신체 리듬과 컨디션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불면증과 식욕 저하에 의한 체중 감소가 나타나고, 성욕과 의욕도 심하게 떨어진다. 일부 여성에게서는 하루 종일 잠이 쏟아지는 과다 수면과 이상 식욕 과다가 나타나기도 한다. 전신 무기력감이나 애매한 통증, 소화불량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나고 기존의 신체 질환이 악화되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렸는데 정신과보다 다른 과 클리닉을 먼저 찾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A씨는 자신이 죄 많고 무가치한 사람이며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 본인과 가족의 앞날은 어두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면 온 세상이 어두워 보이듯이, 우울증에 걸리면 세상을 보는 시각과 생각 전체가 비관적으로 변해 절망감을 느끼게 되고 심하면 자살 기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우울증은 감정과 신체와 생각의 세 가지 영역에 모두 영향을 주어 그동안 A씨가 잘해오던 가사일이나 사회적 관계에도 차질을 빚게 한다. 또 살 맛, 먹는 맛(식욕), 자는 맛(수면욕) 등 인생의 여러 가지 맛을 사라지게 해 A씨의 삶을 무미건조하고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러한 우울증은 한 가지 원인 때문에 걸린다기보다는 타고난 소인과 환경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관여해 발병하는 것이다. 심한 스트레스나 상실, 만성 질환, 성격적 경향, 우울증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잘 걸리며, 여성은 호르몬 변화, 출산 등의 이유로 남자보다 2배나 많이 우울증을 앓는다. 우울증은 생물학적으로는 뇌신경계의 질환으로, 기분과 신체 질환을 조절하는 신경세포의 화학적 불균형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졌다. 따라서 우울증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는 내과 질환이나 만성 질환, 다른 신경과 질환이 없는지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타 질환에 의해 유발된 우울증은 우울증 치료와 함께 근본 질환 치료도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증상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환자의 개인력, 가족력, 현재의 생활 환경, 생각과 감정에 대한 점검도 정확한 진단에 꼭 필요한 요소다. 특히 임산부나 갱년기 여성의 경우 호르몬과 환경 변화, 가족 관계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신체·심리·환경 상태에 대한 포괄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정확한 진단과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우울증 환자에게 처음부터 단순한 상담이나 카운슬링만을 권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판단이 전부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우울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반응한다. 한쪽은 “나는 우울증이 아니야” 라고 부인하며 병원에 가기를 끝끝내 거절하는 경우이다.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자신의 결함이나 문제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정신과 방문 =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나르시시스틱한 사람(자기애적인 사람)들이 주로 이 부류에 속하며 이런 경우 치료를 받기가 힘들고, 병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의존적이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나는 우울해”라고 자가 진단을 하고 우울감을 무기로 삼아 이차적 이득을 바라기도 한다. 이들은 병원에는 가지 않으나 자신이 스스로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주변의 관심과 애정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하거나, 내과나 여러 정신과를 전전하며 의사나 약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처음 발생하는 우울증은 1년 정도 치료하면 70~80% 이상의 환자가 호전되기 때문에 올바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우울증의 중요한 치료로는 크게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가 있으며 필요한 경우 두 가지를 병행하면 좋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환자의 5~10%만이 제대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힘들게 치료를 시작해도 의사를 폄하하거나 스스로 치유하겠다고 치료를 임의로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의존적이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정확한 진단 없이 막연하게 본인이 우울증이라고 주장하며 주변의 애정을 강요하거나 가족들을 조종하려 한다. 끊임없이 우울감과 신체 증상을 호소하고 여러 과와 많은 병원을 전전하지만, 정작 정확한 진단이나 꾸준한 치료는 받지 못한다.
이렇게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우울증의 80% 이상은 자주 재발하는 만성화 경과를 밟으며, 최악의 경우 자해, 자살 시도 등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따라서 우울증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대처는 매우 중요하다.


치료를 두려워 하지 마라

약물 치료의 경우 우울증 치료제(항우울제)가 주를 이루는데, 항우울제는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중독성이 전혀 없고 오래 복용해도 간에 무리가 가지 않으며, 머리를 나쁘게 하지도 않는 순하고 안전한 약이다.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기분을 약물로 조절하는 것이 싫다고 이야기하는데, 항우울제는 기분을 인위적으로 조절한다기보다는 우울증으로 저하된 신경 기능을 회복시켜 이전의 건강한 기분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중독성이나 심한 부작용, 약물에 대한 의존이 나타날 확률은 매우 낮은 안전한 약물이다. 약물 치료는 최소한 6개월 이상 꾸준히 하는 것이 증상의 완전한 개선과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 면담 치료도 심리적 회복에 도움이 되는데, 우울증 급성기에는 우울증과 스트레스 관리 요령을 알려주고 감정적으로 위로해주는 지지적 상담 치료를 주로 받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갈등을 주로 다루는 정신 역동 치료나 우울증으로 왜곡된 부정적 생각을 교정하는 인지 행동 치료 등의 심화된 면담 치료도 효과가 있다. 또 우울증 클리닉이나 정신과 방문을 극도로 거부하는 환자에게는 심리 상담이나 카운슬링을 통해서 극단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힘든 일이 있을 때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며,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카운슬링이나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 스트레스가 많이 축적되기 전에 해소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해 꾸준히 관리해주는 것이 좋다. 추천하는 스트레스 관리 방법으로는 꾸준한 운동이나 문화 관람, 취미 활동 등이 있다. 명상이나 요가, 호흡법 등 심신의 안정을 주는 훈련이나, 종교 활동, 봉사 활동 등 영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도 도움이 된다. 간단한 방법이지만 감사 일기를 쓰거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Check List
다음 증상 가운데 다섯 가지 이상이 2주 이상 지속되고, 그 때문에 사회적·직업적 기능 저하가 나타나는 경우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다.


(참고: 미 정신의학회 진단 기준)

우울한 기분이 거의 매일 지속된다.
흥미롭거나 즐거운 일이 별로 없다.
식욕 부진이나 체중 감소 또는 식욕 증가나 체중 증가가 있다.
불면증이 있거나 잠을 너무 많이 잔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피로하고 기력이 없다.
무가치함이나 지나친 죄책감에 시달린다.
사고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우유부단하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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