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04, 2025
글 고성연(방콕 현지 취재)
아만 나이러트 방콕(Aman Nai Lert Bangkok)
알록달록한 불빛을 요란스럽게 뿜어내며 도로를 활주하는 명물 ‘툭툭’과 날카롭게 하늘을 향해 치솟은 건물 숲으로 뒤덮인 스카이라인, 불교의 나라답게 수많은 사원까지 화려한 생동감이 깃든 특유의 분위기를 지닌 천태만상의 도시 방콕. 방대한 토양에서 비롯된 풍부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꽃피운 기나긴 미식의 역사를 자랑하듯 미슐랭 레스토랑,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과 바(bar) 목록에 단골처럼 이름을 올리기도 하는, 태국의 심장이다. 덕분에 관광으로 따지자면 아시아 지역 최상위를 다투는 메트로폴리스이기도 한 방콕에는 그 명성에 걸맞은 럭셔리 브랜드 호텔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기에, 웬만해서는 명함도 못 내미는 분위기다. 물론 그 명단에 더해지는 브랜드가 ‘아만(Aman)’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스탬프 찍기’ 하듯 세계 곳곳의 아만을 찾아다니는 골수 팬들이 있을 정도로 팬덤이 단단하고, 그만큼 차별된 오라와 독보적인 위상을 점한 브랜드 아니던가. 더구나 아만의 역사가 바로 태국에서 비롯되었기에, 방콕에서의 등장은 더 뜻깊을 수밖에 없다. 싱그러운 나무 향 가득한 봄날의 정원을 품은 채 문을 연 아만 나이러트 방콕(Aman Nai Lert Bangkok)에 다녀왔다.
‘아만 정키’라는 표현이 존재할 정도로 럭셔리 호텔업계에서 브랜드 팬덤이 남다른 아만(Aman). 새로운 아만의 공간이 생기면 반드시 찾아가는 열정과 충성심을 지닌 팬들로 유명하지만 지난 4월 초 문을 연 아만 나이러트 방콕(Aman Nai Lert Bangkok)의 등장은 특히 더 주목을 끌 만한 이유가 있다. 1988년 리조트업계에 강렬한 인상과 함께 지속적인 파장을 일으킨 아만 1호인 아만푸리(Amanpuri)가 바로 태국에 자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푸껫), 요즘 럭셔리 호텔의 역동적인 격전지가 방콕이기도 해서일 터다. 사실 대자연 속 ‘외딴 절경’을 품은 보석 같은 땅을 기막히게 발굴해내는 위치 선정의 달인인 아만이 베니스(2013), 도쿄(2014), 뉴욕(2022) 같은 내로라하는 도시의 명칭을 그대로 이름에 넣은 호텔을 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접근성이 좋은 인기 도시에서도 아만을 누릴 수 있다는 이점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이들도 있었지만. 브랜드 정체성이 희석될까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살짝 의구심을 품은 채 도심형 아만을 몇 차례 경험해본 필자는 매번 브랜드의 정수를 지키기 위해 기울이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세심한 노력과 투자,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스토리텔링의 매력에 감탄해왔기에 방콕의 사례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못내 궁금했다.
‘녹음에의 의지’를 드러내는 호텔과 레지던스
햇살 사이로 스며드는 싱그러운 나무 향이 기분 좋게 코를 자극하면서 인사를 건네는 듯 청신한 봄날, 대사관들이 위치한 룸피니 지역에 호젓하게 자리한 아만 나이러트 방콕은 ‘신록의 정기’로 맞이해줬다. 정문 앞 가지런히 줄을 선 키 큰 나무들을 뒤로하고, 로비층인 9층으로 올라가자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 형태의 커다란 조각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인스타그램 사진으로 접했던 작품이지만 금 소재 잎사귀가 6천 개나 달린 12m 높이의 큰 조각이 공간을 화사하면서도 무게감 있게 물들이는 실물의 존재감은 확실히 달랐다. 이 범상치 않은 조각의 실제 모델인 참추리나무는 호텔 부지에 자리한 나이러트 공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나이러트’는 아만의 이번 방콕 프로젝트 파트너인 태국의 명문가로 이 공원 역시 소유하고 있다. 작지만 울창한 녹음을 뽐내는 나이러트 공원은 아무래도 사유지라 더 한적한 운치를 자아낸다. 분명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데도, 아만 나이러트 방콕의 총 지배인 테드 터커가 아만을 상징하는 수식어로 꼽은 ‘고요함(serenity)’이 풍만하게 깃든 땅이다. 그의 설명처럼 아만은 태국에서 36년 넘게 존재감을 떨쳐오며 잘 자리 잡고 있기에 돈독한 파트너십이 성사되는 데 보탬이 됐을 것이다. 공원 내에는 실제 그들의 옛 저택으로 오래된 가구, 미술품 등 가문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나이러트 파크 헤리티지 홈(Nai Lert Park Heritage Home)’도 있다. 이곳에 걸린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표범을 반려동물로 삼을 정도로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를 지녔던 창립자(1세대)부터 4세대까지 이어지면서 사업(무역)과 행정(관료)을 넘나들고 럭셔리 호텔을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했던 나이러트 가문의 이름은 호텔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아만 계열에서 처음이다).
나이러트 집안에서 과거 상업의 거점 역할을 했던 현재의 부지를 사서 집을 짓고 아담한 공원을 조성한 시기는 무려 19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콕에서 이곳은 ‘나무들의 센터(the center of trees)’나 마찬가지예요. 흔히 볼 수 없을 만큼 수령이 오래된 아름다운 나무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죠.” 유려한 곡선의 가지들을 길게 드리운 참추리나무도 감상할 겸 공원을 거닐면서 정원 지킴이의 설명을 듣다가 고개를 돌려 호텔 파사드를 올려다보니 그가 말한 ‘생명력’의 실체가 거기에도 깃들어 있었다. 파사드 중간을 뚫고 초록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웅장한 나무의 일부분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이러트 집안에서 애지중지하는 1백 세가 훌쩍 넘는 솜퐁나무인데, 36층짜리 아만 나이러트 방콕(52개 스위트룸과 34개 레지던스로 구성)의 건축 설계는 키가 32m 가까이 되는 이 영물을 중심으로 펼쳐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호텔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는 이 듬직한 솜퐁나무의 밑동이 레지던스 정원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고, 호텔 투숙객들은 인피니티 풀이 있는 공간에서 그 늠름한 자태(중간 기둥)를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나이러트 집안에서 과거 상업의 거점 역할을 했던 현재의 부지를 사서 집을 짓고 아담한 공원을 조성한 시기는 무려 19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콕에서 이곳은 ‘나무들의 센터(the center of trees)’나 마찬가지예요. 흔히 볼 수 없을 만큼 수령이 오래된 아름다운 나무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죠.” 유려한 곡선의 가지들을 길게 드리운 참추리나무도 감상할 겸 공원을 거닐면서 정원 지킴이의 설명을 듣다가 고개를 돌려 호텔 파사드를 올려다보니 그가 말한 ‘생명력’의 실체가 거기에도 깃들어 있었다. 파사드 중간을 뚫고 초록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웅장한 나무의 일부분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이러트 집안에서 애지중지하는 1백 세가 훌쩍 넘는 솜퐁나무인데, 36층짜리 아만 나이러트 방콕(52개 스위트룸과 34개 레지던스로 구성)의 건축 설계는 키가 32m 가까이 되는 이 영물을 중심으로 펼쳐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호텔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는 이 듬직한 솜퐁나무의 밑동이 레지던스 정원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고, 호텔 투숙객들은 인피니티 풀이 있는 공간에서 그 늠름한 자태(중간 기둥)를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자연 속 조화를 통한 ‘힐링의 미학’을 실천하는 아만의 고집
이처럼 녹음을 위시한 ‘자연의 미학’은 객실과 아트리움, 레스토랑, 웰니스 공간으로도 과하지 않게 이어진다. 럭셔리 호텔업계의 문법을 차분히 구축해온 디자인 구루 중 하나인 장-미셸 게티의 손길이 닿았는데, 11층부터 18층까지 포진하고 있는 객실은 그 자체로 차분한 색조와 편안한 세련미가 깃든 온화한 디자인 감성이 돋보인다. 나무의 결을 본뜬 부드러운 곡선 장식을 벽에 두르고 있고, 일부는 바나나나무 껍질을 소재로 활용하기도 하는 등 목재를 활용했다. 모든 객실이 스위트인 만큼 여유로운 공간에 방콕의 스카이라인이 내다보이는 시원한 통창, 덕시아나 브랜드의 매트리스를 깐 침대 말고도 데이 베드와 소파 베드, 푹신한 스툴 등 휴식을 위한 다양한 가구를 배치해 힐링을 돕는다. 3개의 아트리움을 수놓은 커다란 설치 작업은 저마다의 감성으로 자연을 연상시킨다. 또 로비층에 있는 1872 라운지 바(bar)의 상단을 장식한 구름 모양의 설치물은 태국 전통의 그림자 연극을 연상시키는 요소를 지녔다고 하는데, 치앙마이 지역의 장인들이 나무 패널과 가죽 소재로 빚어낸 작품이다. 심지어 첨단 인바디 머신, 복싱, 수소수 전용 기계 등의 시설을 갖춘 피트니스 공간의 벽지까지 천 소재에 핸드 페인팅을 입혀 자연스럽고 따스한 분위기를 풍긴다. 피트니스 공간을 비롯해 의사까지 동반한 전문 테라피를 제공하는 ‘허티튜드(Hertitude)’ 클리닉과 인피니티 풀, 타이 정통 기법과 쌀을 활용한 기법 같은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는 반야(Banya) 스파 하우스 등을 갖춘 아만 스파 & 웰니스 센터(Aman Spa & Wellness)는 면적이 1,500㎡(약 4백53평)에 이르며 조용한 안락함을 지향하는 디자인을 구비해, 산책과 운동을 통해 심신의 조화를 꾀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면 굳이 호텔 밖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 물론 도심의 쇼핑가와 가깝고 요즘 ‘핫한’ 방콕 ‘패피’들의 전당인 ‘디올 골드 하우스’의 경우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는 점은 기억해둘 법하지만 말이다.
‘미식의 메카’ 방콕다운 맛의 향연
아만 나이러트 방콕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또 다른 요소는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늘 기억의 밀도에서 중요한 존재인 ‘미식’이다. 먼저 로비층(9층)에 있는 아만의 시그너처 이탤리언 레스토랑 브랜드 아르바(Arva)에서는 명성에 걸맞은 오찬과 만찬을 즐길 수 있는 동시에, 투숙객들이 아침을 함께 시작할 수 있다. 조식에도 뷔페 대신 정갈한 단품 메뉴를 선사하는 아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데, 에그 베네딕트 같은 글로벌 인기 식단뿐 아니라 쌀죽인 ‘족(jok)’을 비롯한 태국 현지식도 일품이다. 살짝만 씹어도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을 기분 좋게 감싸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요리라든가 흔히 쓰는 가루 대신 태국산 ‘찐’ 초콜릿을 얇고도 진하게 입힌 티라미수 등 재료의 미학을 만끽할 수 있도록 메뉴를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872에서도 다양한 메뉴의 식사와 신선한 제철 과일을 활용한 아름다운 디저트가 오감을 일깨워주는 듯한 애프터눈 티 세트 등을 즐길 수 있다. 또 19층에는 일식과의 인연이 깊은 아만답게 철판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히오리(Hiori)’, 스시 오마카세를 즐길 수 있는 ‘세스이(Sesui)’가 나란히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와규, 성게, 참치 등을 비롯한 최고의 식재료를 장인 정신으로 다루는 셰프들의 솜씨를 지켜보면서 담소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처럼 ‘미식의 메카’ 방콕다운 풍요로움과 실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식도락의 매혹이 곳곳에서 숨 쉬고 있다(인상적인 인테리어를 품은 시거 바도 있다). 밤이 깊어갈 때,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희귀한 증류주와 사케, 칵테일 등을 홀짝일 수 있는 아만 라운지(역시 19층)에서 누리는 반짝거리는 야경은 기분 좋은 ‘덤’이다.
1 대사관들이 위치한 룸피니 지역에 호젓하게 자리한 아만 나이러트 방콕.
2 지난 4월 초 문을 연 아만 나이러트 방콕의 입구.
3 로비가 있는 9층에 위치한 상징적인 작품. 금 소재 잎사귀가 6천 개나 달린 12m 높이의 큰 조각으로 실제 모델인 참추리나무는 호텔 부지에 자리한 나이러트 공원에 있다.
4 작지만 짙고 아름다운 녹음을 뽐내는 나이러트 공원에 자리한 ‘나이러트 파크 헤리티지 홈’. 아만 나이러트 방콕의 파트너인 나이러트 집안 사람들이 실제로 살았던 저택으로 가구, 미술품 등 가문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자취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같은 부지 내에 레스토랑도 운영한다.
5 아만 나이러트 방콕은 객실 전부(52개)가 스위트룸, 그리고 34개의 레지던스로 이루어졌다.
6 호텔 건물 12층에 자리한 인상적인 아트리움.
7 로비층에 자리한 아만의 시그너처 이탤리언 레스토랑 브랜드 아르바(Arva).
8 로비층에 있는 1872 라운지 바(bar).
9 태국 현지의 풍부한 식재료는 물론 일본 여러 지역에서 공수한 재료를 바탕으로 한 철판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히오리(Hiori). 같은 층인 19층에 스시 오마카세를 전문으로 하는 세스이(Sesui)도 있다.
10 나이러트 집안이 소중히 여기는 상직적인 솜풍나무가 호텔의 든든한 수호신처럼 인피니티 풀 옆에 자리한다. 1백 년이 훌쩍 넘은, 방콕에서 귀중히 여겨지는 나무다.
11 면적이 1,500㎡(약 4백53평)에 이르며 조용한 안락함을 지향하는 아만 스파 & 웰니스 센터에는 피트니스는 물론 첨단 기법을 동원한 테라피, 마사지 등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있다.
12 아만 나이러트 방콕에서 도보로 5분 정도면 시야에 들어오는 디올의 팝업 매장 골드 하우스.
※ 1, 4, 9, 10, 12 Photo by 고성연
※ 2, 3, 5~8, 11 ⒸAMAN
2 지난 4월 초 문을 연 아만 나이러트 방콕의 입구.
3 로비가 있는 9층에 위치한 상징적인 작품. 금 소재 잎사귀가 6천 개나 달린 12m 높이의 큰 조각으로 실제 모델인 참추리나무는 호텔 부지에 자리한 나이러트 공원에 있다.
4 작지만 짙고 아름다운 녹음을 뽐내는 나이러트 공원에 자리한 ‘나이러트 파크 헤리티지 홈’. 아만 나이러트 방콕의 파트너인 나이러트 집안 사람들이 실제로 살았던 저택으로 가구, 미술품 등 가문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자취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같은 부지 내에 레스토랑도 운영한다.
5 아만 나이러트 방콕은 객실 전부(52개)가 스위트룸, 그리고 34개의 레지던스로 이루어졌다.
6 호텔 건물 12층에 자리한 인상적인 아트리움.
7 로비층에 자리한 아만의 시그너처 이탤리언 레스토랑 브랜드 아르바(Arva).
8 로비층에 있는 1872 라운지 바(bar).
9 태국 현지의 풍부한 식재료는 물론 일본 여러 지역에서 공수한 재료를 바탕으로 한 철판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히오리(Hiori). 같은 층인 19층에 스시 오마카세를 전문으로 하는 세스이(Sesui)도 있다.
10 나이러트 집안이 소중히 여기는 상직적인 솜풍나무가 호텔의 든든한 수호신처럼 인피니티 풀 옆에 자리한다. 1백 년이 훌쩍 넘은, 방콕에서 귀중히 여겨지는 나무다.
11 면적이 1,500㎡(약 4백53평)에 이르며 조용한 안락함을 지향하는 아만 스파 & 웰니스 센터에는 피트니스는 물론 첨단 기법을 동원한 테라피, 마사지 등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있다.
12 아만 나이러트 방콕에서 도보로 5분 정도면 시야에 들어오는 디올의 팝업 매장 골드 하우스.
※ 1, 4, 9, 10, 12 Photo by 고성연
※ 2, 3, 5~8, 11 ⒸA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