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호텔 풍경, 새로워진 ‘여행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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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7, 2019

글 고성연

파리의 호텔 풍경, 새로워진 ‘여행의 공간’

아름답고 매력적인 호텔을 몹시 사랑해 세계 곳곳을 돌면서 그 경험을 스케치로 남겨온 한 건축가는 “객실은 인간이라는 자연을 감싸는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21세기는 디지털 유목민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여행하는, 낯선 곳에서 체류하는 이동과 이주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방인의 피로와 긴장을 최대한 달래주는 안락한 감성은 여전히 호텔의 필수 덕목이자 차별화의 바로미터일 것이다. 아무리 호텔의 개성이 다채롭기 그지없고 사람들의 취향 역시 제각각이지만, ‘본질’이란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 럭셔리 호텔 문화의 토대를 처음 마련했으나, 세월이 흘러 한때 ‘낡은 감성’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던 파리의 변화가 느껴지는 ‘여행의 공간’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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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룻밤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되 비록 처음 접하는 낯선 공간이지만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보듬어주는 분위기와 서비스. 낭만을 꿈꾸는 신혼여행이든 바쁜 일정 중 스쳐 지나가는 출장 여행자든 찜통더위를 피해 편안한 환경에서 쇼핑이나 문화 활동을 누리는 ‘호캉스족’이든 호텔에 대한 기대치에는 낯선 곳에서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안락함’의 지분이 높게 마련이다. 호텔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봐도 그 같은 본질을 알 수 있다. 호텔은 라틴어로 ‘대접하다, 보호하다’라는 뜻을 지닌 호스페스(hospes), ‘심신의 회복’을 의미하는 호스피탈레(hospita´le) 등에서 비롯됐다. 호텔이라는 명사를 처음 사용한 곳은 1760년대 영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경제, 종교, 군사 등 특정 목적을 지닌 여행객이 머무는, 기본 편의를 제공하는 숙박 시설로 시작했다고. 그리고 오늘날과 비슷한 럭셔리 호텔의 개념은 19세기 들어 파리에서 자리 잡았다. 이 배경에는 나폴레옹 3세 집권 시기(1848~1870)와 발맞춰 19세기 중반부터 펼쳐진 파리의 근대화 프로젝트가 있다. ‘산업왕’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던 나폴레옹 3세는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을 내세워 파리를 세계에서 가장 근대적인 도시로 개조하겠다는 야심 아래 대대적인 재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그 덕분에 파리는 방사형 도로망과 쭉쭉 뻗은 대로, 높이, 색채, 형태 면에서 조화미를 갖춘 건물들, 녹지 등 ‘모던 파리’의 근간을 갖추었다.
호화로운 상업 시설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1850년 르 그랑 호텔(Le Grand Ho^ tel)이 생겨났고, 1852년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꼽히는 봉 마르셰(Bon Marche´), 1865년 프랭탕(Printemps) 백화점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1889년에는 프랑스혁명 발발 1백 주년을 기념해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면서 에펠탑이 센강 왼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1896년에는 ‘호텔리어들의 왕’으로 꼽히는 스위스 사업가 세자르 리츠의 작품인 리츠 호텔(Ritz Paris)이 1구에 그 화려한 자태를 선보였다. 1900년에는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지하철도 개통했다. 또 다섯 번째 만국박람회를 치르기 위해 외관이 수려한 기차역 오르세(Orsay) 역도 세웠다. 최초의 대형 호텔 르 뫼리스(Le Meurice)는 1907년 등장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여행지이지만, 이즈음 파리는 전 세계 문화 예술인의 ‘로망’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기 전까지 평화롭고 문화적으로 찬란했던 파리의 황금기를 가리켜 ‘벨 에포크’ 시대라 칭하는 이유다.

도시 풍경에 경쾌함과 활기를 더해주는 호텔

20세기 전반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휩쓸고 지나간 뒤 미국이 슈퍼 파워를 지닌 강대국으로 군림하면서 새롭게 문화·경제적 패권을 쥐었지만, 그래도 파리는 ‘예술의 수도’라는 이름값을 유지했다. 미식·미술·패션의 도시라는 여러 수식어와 함께. 그러나 노쇠한 도시 이미지가 공존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1970년대 이후 도시 재생에 박차를 가했다.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바꾸고(오르세 역이 1986년 오르세 미술관으로 거듭난다), 루브르 박물관을 개조해 그 유명한 유리 피라미드 출입구를 탄생시켰으며, 라데팡스 같은 신도시를 건설하는 등. 그 배경에는 ‘그랑 프로제(Grand Projets)’ 도시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미테랑 대통령의 큰 그림도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는 또 달라졌다. ‘소프트 파워’가 무엇보다 중시된다는 새로운 세기를 둘러싼 도시 경쟁이 워낙 치열했기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파리는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라는 구호를 내걸고 국가 브랜딩에 성공한 런던에 비하면 창조적 활기에서 뒤처졌다. 또 어느샌가 도시 재생의 흐뭇한 성공 사례로 일컬어지는 ‘젊고 힙한’ 이미지의 베를린도 혜성처럼 떠올랐다. ‘빛의 도시(City of Lights)’라는 파리의 애칭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콘텐츠의 원천 경쟁력이 워낙 빼어나 관광객은 여전히 많기는 해도, 도시 곳곳의 인프라, 예컨대 칙칙하다는 평이 지배적인 지하철역, 지저분한 거리나 광장에 대한 불만 섞인 소리가 자주 들렸고, 현대적인 건축물의 상징이던 조르주 퐁피두 센터마저 수십 년의 세월을 겪으면서 오래된 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시의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 호텔도 마찬가지. 전통과 품격을 자랑하는 호텔이 많기는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강타한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팔색조처럼 진화하는 호텔 산업의 현주소를 볼 때 파리의 경쟁력은 기대 이하라는 지적이 불거졌다.
그런데 현재의 온도는 또 다르다. 그동안 파리에는 점점 까다로워지는 고객의 취향과 시대의 변화, 저마다 다른 주머니 사정을 감안한 다채로운 호텔이 속속 등장해 도시에 경쾌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걸출한 해외 건축가들이 지은 파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는 데다 교통망 확충 등을 통해 파리를 21세기형 친환경 광역 도시로 만든다는 취지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2009년 발표한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효과인지, 전체적으로 투자의 활기도 느껴진다. 더구나 파리는 내년 도쿄 올림픽에 이어 2024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건축과 예술, 미식, 쇼핑 등 갖가지 콘텐츠가 결합된 유기체로 진화하고 있는 호텔은 당연히 도시 자체의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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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녹음 짙은 정원의 매력, 만다린 오리엔탈 파리

‘그린(green)’은 비단 그랑 파리의 코드만이 아니라 글로벌 키워드다. 친환경 요소와 현대미를 동시에 품은 만다린 오리엔탈 파리(Mandarin Oriental Paris)는 1구에서도 요지인 생토노레에 자리 잡았는데, 파리의 호텔 신(scene)에 참신한 감흥을 선사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라미 말렉을 비롯해 상당수 유명 인사들이 ‘팬(fan)’을 자처하며 나서는 광고 캠페인으로도 잘 알려진 호텔 브랜드 만다린 오리엔탈(브랜드의 심벌인 ‘부채’를 모티브로 한 것이기도 하다). 이 그룹의 첫 프랑스 진출작인 만다린 오리엔탈 파리는 이 도시에서 열 곳 남짓한 ‘팰리스(palace)’급으로 분류되는 슈퍼 럭셔리 호텔이면서도 고색창연한 특급 호텔과 달리 세련된 디자인의 부티크 감성을 품고 있다. 팰리스는 5성급 호텔 중에서도 남다른 개성과 빼어난 서비스, 프랑스 문화를 반영하는 ‘삶의 예술’ 미학을 갖춘 특별한 호텔에 주어지는 최고 등급. 앞서 운을 뗐듯 ‘그린 감성’은 웬만한 명소를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심에서도 최적의 위치에 자리한 이 호텔의 장점이다. 튀일리 정원을 지척에 두고 있지만, 호텔 내에도 소담스러운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바와 레스토랑, 녹음이 느껴지는 테라스를 둔 일부 객실, 루프톱 가든에서 공수하는 신선한 채소를 재료로 삼은 스타 셰프 티에리 막스(Thierry Marx)의 건강한 미식 세계 등 곳곳에서 ‘에코 프렌들리’ 감성이 묻어난다. 실제로 프랑스 최초로 최고 친환경 등급인 HQE를 획득한 호텔이기도 하다. 그랑 팔레나 에펠 타워 등의 랜드마크가 시야에 들어오는 테라스를 거느린 럭셔리 스위트로도 명성 높은 만다린 오리엔탈 파리는 최근 아주 특별한 새 공간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파리에 위치한 어느 객실보다 넓은 약 429㎡(1백30여 평) 규모를 뽐내는 ‘파리지앵 아파트 스위트’가 그 주인공이다. 세계적인 스타 듀오로 각광받는 기 & 부아지에(Gilles & Boissier)가 디자인을 맡았는데, 호텔 6층 공간에 4개의 침실과 욕실, 리셉션, 다이닝 룸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프랑스 정원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약 231㎡(70여 평)의 눈부신 테라스가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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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의 멋을 간직한 ‘메종 아르망스’와 아트 갤러리를 품은 ‘호텔 쥘 & 짐’

모든 이가 팰리스급 호텔에 머물 수는 없다. 또 그럴 역량이 된다 하더라도 기호나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다행히 세상은 넓고, 호텔의 선택 폭도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파리에서도 여느 도시처럼 간단한 주거 시설과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지던스 호텔, 부대시설은 풍부하지 않지만 독특한 디자인이나 서비스 등 몇 가지 요소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부티크 호텔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부티크 호텔은 거의 갤러리 수준으로 ‘아트’를 콘셉트로 부각하기도 하고, 지역색을 현대적으로 반영한 인테리어를 선사하기도, 또는 하이테크 기기나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며,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식으로 차별화를 꾀하기도 한다.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에 호텔과 레지던스형 공간, 고성 호텔 등을 꾸리고 있는 ‘에스프리 드 프랑스(Esprit de France)’는 단어 그대로 ‘프랑스의 정신’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하는 호텔 브랜드다. 최근 파리에서도 이 브랜드의 확장세가 심상치 않은데, 포숑 호텔(Fauchon Ho^ tel) 등 지난해 8구 샹젤리제 근처에 개장한 호텔들도 있고, 올 초 1구에 들어선 메종 아르망스(Maison Armance)도 있다(만다린 오리엔탈과 지척이다). 19세기 프랑스 문호 스탕달의 장편소설 <아르망스(Armance)>에서 따온 이름으로, 깔끔한 인테리어와 감각적인 오브제에 힘입어 도회적인 감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메종’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내 집’ 같은 분위기가 묻어난다(실제로 작은 안뜰이 있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건물 안에 있다). 사전 예약하면 20유로대에 이용 가능한 공항 픽업, 체류 기간 동안 무료로 쓸 수 있는 스마트 기기 제공 등 알짜 서비스를 주목할 만하다. 20개의 객실은 대부분 크지 않지만, 영리하게 공간을 살린 인테리어와 객실 슬리퍼를 담아놓은 주머니에도 ‘남녀용’에 따라 각기 다른 캐릭터를 새겨놓는 등의 아기자기함이 사랑스럽다.
개방적인 젊은 층이 많이 찾는 마레 지구에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 제목과 이름이 같은 부티크 호텔이 있다. 누벨바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영화처럼 흔치 않은 매력을 품고 있는 호텔 쥘 & 짐(Ho^ tel Jules & Jim)이다. 미술 작품을 걸어놓는 호텔이 요즘 꽤 눈에 띄는데, 쥘 & 짐은 복도, 레스토랑 같은 호텔 내 여러 공간을 활용해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의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열면서 아예 작은 갤러리 역할을 한다. 경쟁력 있는 갤러리와 손잡고 코트니 로이(Kourtney Roy), 렌 파라디(Reine Paradis) 등 주로 사진전을 연다. 입구에서 회색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품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복도와 아담한 리셉션 공간을 지나 안뜰로 이어진다. 한 면을 가득 차지한 녹음을 배경으로 벽난로와 의자, 영화 속 한 장면을 담은 사진 프린트를 비롯한 여러 소품과 ‘아트’가 근사하게 펼쳐진 정원이 인상적이다. 그 옆에는 조식을 즐길 수 있고 저녁에는 바(bar)로 활용되는 F & B 공간이 있는데, 브런치 수준으로 정오까지 식사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오후 1시에 체크아웃을 해도 되는 넉넉함이 어떤 이들에게는 상당히 반갑게 다가올 듯하다. 방은 스위트를 빼고는 작은 편(12~17㎡)이지만 조명, 샤워기, TV 등 ‘스마트’ 환경이 잘 구비돼 있는 데다 분위기가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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