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그랜드 투어, 지식만이 아니라 깨달음을 채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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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02, 2017

에디터 고성연

요즈음 여행을 둘러싼 가장 ‘핫’한 키워드는 아마도 ‘지식’일 듯싶다. tvN의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인기가 지식을 채우고 시야를 넓히는 여행을 부각하는 데 기폭제가 됐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앎에 대한 욕구’를 실천한 여행자들은 그 과정에서 중대한 발견과 깨달음을 얻으면서 세상을 바꿔왔다. 올여름이나 하반기에는 나만의 ‘알쓸신잡’ 여행을 계획해보면 어떨까? 그 행선지가 ‘그랜드 아트 투어(grand art tour)’의 해라고 할 만큼 내로라하는 미술계 행사가 열리고 있는 유럽이든, 가까운 곳이든 간에 배움 터를 추가한다는 건 딱히 쓸 데가 없더라도 꽤 뿌듯하고 즐거운 경험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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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_아나톨 프랑스

여행 자체가 ‘호사’이던 시절이 그다지 오래전은 아니다. 기차, 비행기, 요트 같은 ‘탈것’의 발명이 뒷받침되면서 여행이 점차 많은 이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올여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루이 비통(Volez, Vogez, Voyages Louis Vuitton)> 전시만 봐도 1백 년 전의 여행길 풍경이 어땠을지 머릿속에 절로 그림이 그려진다. 글을 쓰는 작가가 먼 여행을 떠날 때면 집필용 데스크, 이동식 서재를 담은 특수 트렁크를 동반했고, 화가는 각종 도구와 캔버스를 가득 담은 페인팅 트렁크를 여러 개 짊어진 채 떠나기도 했다. 태블릿 PC 하나면 전자책을 수백 권 담아 갈 수도 있고, 심지어 전자 펜슬로 정교한 그림을 그려 어디든 전송할 수도 있는 요즘 디지털 세상에서는 생각만 해도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마저도 소수만의 특권이었지만 말이다. 알다시피 이제 여행은 흔해졌다. 입이 떡 벌어지는 럭셔리 투어가 존재하기는 해도 마음만 먹으면 아주 저렴하고 실속 있는 여행도 가능하다. 심지어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반드시 가보지 않아도 그곳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유튜브 시대, 첨단 기술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진짜 같은 가상 체험도 할 수 있는 사이버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발품 파는 여행을 갈구한다. 물론 쉼 없이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 지친 나머지 ‘홈캉스(home+vacance)’를 택하는 이들도 많다지만, 에너지와 노잣돈이 있는데도 “난 절대 떠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부류의 인간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중세에 ‘순례 여행’이 생겨난 건 쾌락 추구적이었던 로마인들이 발명해낸 ‘휴가 여행’이 용인되지 않자 떠남의 욕구에 정당성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인간의 속성을 가리켜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랜드 투어, 유럽을 강타했던 ‘문화 답사 여행’

그중에서도 호기심이 유달리 풍부한 이들은 자주, 멀리, 그리고 꽤 ‘심도 있게’ 여행을 한다. 겉핥기식이 아니라 현지 언어와 문화, 역사를 접하고 습득하고 때로는 사람들과 부대낄 수 있는 밀도 높은 체류를 꾀하는 유형이다. 그저 남의 얘기나 스크린의 정보로 받아들이는 지식은 손쉽게 휘발될 수 있지만, 고된 여정에서 ‘체득’하는 그 무엇인가는 마치 혈액처럼, 지문처럼 남기 때문이다. 단순한 지식의 채집이 아니라 다양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고, 더 나아가서는 깨달음의 여행을 추구하는 것이다.
먼 곳으로 떠나는 지식 여행을 수백 년 전 유럽에서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고 불렀다.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이 여행은 자녀를 유럽 대륙으로 보내 외국어와 문화, 세련된 취향을 배우게끔 하겠다는 취지에서 생겨났는데,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면서 점차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19세기 들어서는 미국 땅으로까지 건너갔다. 설혜심 교수가 쓴 <그랜드 투어>라는 책을 보면 토머스 홉스, 애덤 스미스, 볼테르, 괴테 등 당대 수많은 지성들이 동참하면서 예술과 건축의 발달을 촉진하고 계몽 사상을 전파하는 등 유럽 근대사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당시 그랜드 투어를 떠난 영국 여행자들의 루트는 오늘날의 유럽 배낭여행 일정을 길게 늘려놓은 듯하다. 여행 기간이 3년이라면 절반은 프랑스에 체류한 뒤 9~10개월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거친 다음 나머지 5개월은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서 보내고 귀국길에는 다시 파리를 찾는 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지 토양에 스스럼없이 녹아드는 친밀한 교류를 연상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랜드 투어리스트는 대개 귀족 등 상류층 자제였던 만큼 화려한 사교계를 둔 문명화된 도시를 여행지로 선호했고, 자국인을 만날 수 있는 살롱 같은 장소에서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소 ‘표피적’이었다고 해도 그랜드 투어가 상당한 지식, 그리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통찰력을 수집하는 데 도움이 된 건 명백하다. 유럽 변방에 자리한 약소국, 그리고 항상 ‘대륙’의 찬란한 문물을 동경했던 영국이 첩보 강국,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그랜드 투어 시절의 정보력 DNA가 초석이 됐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다.

타지와 사랑에 빠진 지식 여행자들

흥미로운 점은 산업혁명을 등에 업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영국인들은 마냥 선망의 눈빛을 품고 여행을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날이 콧대가 높아지고 있던 이 섬나라 사람들은 ‘이탈리아인들은 빛나는 문명을 잃어버린 건 물론, 그 과거를 계승할 후계자 자격도 부족하다’는 태도로 자신들의 경제적 우위를 만끽하는 동시에 문화적 콤플렉스를 달래고자 했다. “…일찌기 로마제국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활기에 넘쳐 있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작금의 황폐한 이탈리아를 눈앞에 대하노라면 실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오카다 아쓰시가 집필한 <이탈리아 그랜드 투어>에서 발췌). 1705년 나폴리까지 여행을 했던 조지프 애디슨이 펴낸 <이탈리아 각지의 보고>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더러 불평을 토로하더라도 ‘도시의 속살’을 점차 발견해나가면서 사랑에 빠진 이들도 많았다. 영국 화가 토머스 존스(Thomas Jones) 같은 경우에는 나폴리에 흠뻑 반한 나머지 1778년부터 1783년까지 머물렀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별다른 특색 없는 건물의 외벽을 그린 그의 그림은 신화나 영웅담, 숭고미와는 거리가 먼, 지극히 소박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담아냈다. 그저 자신이 사랑해마지않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나폴리의 태양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닌 작가였는데, 이집트에서 깨달음을 얻고 프로방스의 풍광에 빠지기도 했으며 베니스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베니스의 가을’이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1897년 베니스를 처음 방문한 그는 이후 틈날 때마다 가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씩 머물면서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골목에서 길을 묻는 여행자에게 척척 안내해줄 정도로 베니스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고. 조각가 로댕의 비서 일을 한 적이 있고 예술에 조예가 깊었기에 베니스에 대한 그의 글은 미학적, 역사적 통찰이 스며 있는 빼어난 ‘인문학적 여행 가이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 <말테의 수기>에서도 ‘세계의 아름다운 균형추’라는 표현을 쓰면서 베니스를 관광객들이 흔히 생각하는 ‘몽환적인’ 모습이 아니라 잠재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도시로 묘사했다. 이처럼 작가들은 타지에서 장기 체류하거나 거주지를 옮겨 살다가 위대한 작품을 빚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 태생의 소설가로 종군기자 등을 거친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파릇파릇한 젊은 시절 파리에서 7년을 보내며 글쓰기에 몰두했고, 인생 후반부에는 쿠바에서 7년간 머물면서 명작 <노인과 바다>를 탄생시켰다.



연구 여행의 물꼬를 튼 알렉산더 훔볼트, 모터사이클 여행으로 혁명가로 거듭난 체 게바라

독일인 여행자로 문화 예술이 아닌 자연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물도 있다. 남아메리카 탐험에 나서 오리노코 강과 아마존 강 상류 지역을 조사하면서 방대한 기록을 남긴 알렉산더 훔볼트. 어릴 때부터 식물, 동물, 광물 채집을 좋아했던 그는 당시 별로 인정받지 못했던 자연과학을 공부했고, 부모님의 유산으로 식물학자인 친구 봉플랑과 함께 1799년부터 1804년까지 5년 동안 아메리카 대륙을 탐사했다. ‘황금의 땅’에 대한 환상을 품고 떠나는 정복 여행이 아니라 탐구와 조사를 위한 여행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랜드 투어리스트로서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저서를 남긴 괴테는 “지식이나 생각, 지혜에 있어 그만한 사람이 없다”며 훔볼트를 숭배했다고. ‘남미’ 하면 떠오르는 여행자 중에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유명한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Che Guevara)도 빼놓을 수 없다. 20대 초반에 친구와 조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8개월 동안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을 거치는 남미 여행을 하면서 민중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한 그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를 파괴하겠다는 일념으로 혁명가의 길을 걷는다. 20세기 전반기의 인물이지만 체 게바라의 궤적을 따라 남미를 여행하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요즘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식 여행자로는 한국 최초의 세계 여행가 김찬삼 교수를 기억할 만하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드리워져 있던 1958년 첫 세계 여행을 떠난 이래 평생에 걸쳐 20차례 장기 배낭여행을 하면서 지구를 32바퀴 돌았던 그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나만의 견문록을 쓰겠다는 꿈을 실현한 인물. 어린 시절부터 존경했던 슈바이처 박사를 만나러 아프리카 오지를 찾아갈 정도로 열정적인 행동가로 살면서 수많은 기록을 남긴 그는 ‘세계의 나그네’라는 별칭을 얻었다.

올해는 많은 이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해다. 동시대 미술을 중심축으로 한 굵직한 행사가 10년 만에 겹치는 흔치 않은 기회를 누릴 수 있어서다. 5년 주기로 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현대미술전 도큐멘타(Documenta, 6월 10일~9월 17일, 올해는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시차를 두고 먼저 열렸다)를 비롯해 격년으로 개최되는 베니스 비엔날레(5월 13일~11월 26일), 그리고 10년마다 찾아오는 공공 미술 축제인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6월 10일~10월 1일)가 그 주인공이다. 미술 관계자는 물론이고 미술 분야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21세기 문화 예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이 행사들을 둘러보고, 그 김에 현지 명소를 아우르는 인문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고 있다. ‘2017년 그랜드 아트 투어’라고 불릴 정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보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다. 허세를 부리기 위한 지식 수집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앎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임은 틀림없다. 일단 직접 보고 부딪혀봐야 칭찬도, 비판도 할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꼭 바다 건너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문화적 자산을 제대로 돌아보는 것도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동방견문록>, <하멜표류기>와 함께 근대 이전에 기록된 세계 3대 여행기로 꼽히기도 하는 <표해록>을 남긴 조선의 관료 최부(1454~1504)가 난파된 배에 실려 중국 땅에 내렸을 때 처형될 뻔하다가 살아남은 건 조국인 조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당당한 기개 덕분이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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