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에르메스, 김민애 개인전 <기러기(Gir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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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4, 2018

에디터 고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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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듯한 어두운 전시장. 날카롭게 지저귀는 새소리와 푸드덕대는 날갯짓 소리만 스피커에서 나와 불규칙적으로 공간을 휘젓고 다닌다. 그리고 전시장 벽면을 따라 움직이는 강렬한 한 줄기 빛. 그 빛의 움직임에 따라 새의 형상들이 벽에 드러난다. 그런데 오랜 세월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인간의 동경을 받아온 새들은 얼어붙은 듯 벽면에 멈춰 있다. 전시장의 새들은 신화 속 존재가 아니라 길들여진 신세인 까닭이라고, 날고 있음에도 날개가 있음을 망각해버린, 날아오르지 못하고 내려앉은 새들인 것이라고 이 전시의 큐레이터는 설명한다. 전시명은 <기러기(Girogi)>. 하지만 빛의 명암 속에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새들은 참새, 비둘기, 갈매기, 닭 등으로 정작 기러기는 없다. 가짜 주인공들만 있는 셈이다. 서울 도산공원 인근의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펼쳐지고 있는, ‘볼 것 별로 없는’ 이 전시는 미술 작품을 놓고 감상하기 위한 공간이 거꾸로 미술을 규정하는 틀로 둔갑한 아이러니를 꼬집는다. 1973년 밀라노 토셀리 화랑에서 처음 ‘텅 비어 있는 전시장’을 선보이며 전시 공간을 대상화한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1943~2012) 같은 선배 작가들에게 보내는 김민애식 화답이라고. 스스로를 미술로 정의하고 미술임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알리바이를 만들어내야 하는 현실에 대한 피로감 혹은 불신에서 출발했다는 이 전시는 우리네 인생을 둘러싼 모순과 딜레마를 생각해보게 한다. 전시는 5월 13일까지. 문의 02-3015-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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