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서 채워지는 곳, 양평 ㅁ 자 집과 땅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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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4, 2020

글 정성갑(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 포토그래퍼 이명수

양평의 농로를 따라 들어가다 몇 번 길을 꺾으면 야트막한 오르막에 건축가 조병수의 건축 실험작이자 세컨드 하우스인 ㅁ 자 집이 나온다. 그 아래쪽으로는 또 하나의 거처인 땅집이 있다. 지극히 작고 검소한 집이지만 건축이 품고 있는 뜻과 의지는 어느 집보다도 크고 전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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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인가. 이 두 채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ㅁ 자 집은 말 그대로 지붕을 네모반듯하게 뚫은 집이다. 지붕 크기는 가로세로 5m. 옹색하지도,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딱 좋은 크기로 바닥에는 사각 하늘과 같은 비율로 연못을 만들어놓았다. 땅집 역시 소탈하다. 땅 밑으로 3.2m를 파고 들어가 그 바닥에 집을 얹었다. ‘지중 하우스’인 셈이다. 그 집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건축가 조병수와 인간 조병수를 동시에 봤다. 간소한 옷차림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건축가 조병수는 언뜻 차분하고 반듯해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전위적이고 파격적인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의 건축을 보며 늘 로맨틱한 면면을 실감하는데, 그 두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ㅁ 자 집과 땅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천천히 움직이는 빛과 바람이 생생하다. 바람이 불어 집 위에 있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빛의 무리가 모양을 바꿔가며 물 위로, 풀섶으로, 지붕을 떠받드는 나무 기둥으로 옮겨 다닌다.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풍경. 잡념이 스르르 녹아내리고 풀어헤쳐져 종국에는 겸손한 마음만 남는 곳. 그렇게 많은 것들이 비워짐과 동시에 채워지는 집. 이런 곳에서 조병수 건축가는 때로 혼자 시간을 보낸다. 땅집에서는 지인들을 초대해 시 낭송회를 열기도 했다. 잔가지를 모두 쳐낸 간결한 몸통의 시는 조병수의 건축론과 인생관 혹은 DNA와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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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하늘을 통해 들어오는 강 같은 평화

그렇게 추억으로 남은 집에 다시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최근 이곳에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인터뷰차 만난 조병수 건축가는 ㅁ 자 집의 방을 다 헐었다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오랫동안 잘 보고 누렸습니다. 한번 변화를 줄 때도 됐어요.” 그 모습이 궁금해 양평행을 청했고 그는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콧바람을 쐬며 차를 몰아 먼저 도착한 곳은 ㅁ 자 집이었다. 초가을의 그곳에는 따뜻한 볕과 서늘한 바람이 함께 있었다. 가로세로 13.4m의 정사각형 공간. 반듯하게 터를 잡고 외벽을 콘크리트로 마감한 집 주변에서는 무성한 숲과 높은 하늘만 보였다. 이곳의 대지 면적은 877㎡(약 2백65평). 무척 큰 부지지만 건물을 올리는 데는 191.14㎡(57평)의 땅만 사용해 간결하고 단출해 보인다. 가지마다 큼지막한 보라색 꽃송이를 달고 있는 산수국을 본 후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전실’이 나온다. 집 안이지만 동시에 바깥이기도 한 곳. 천장에서는 빛이 한 줌 들어오고 그 아래로는 석물과 물확이 보인다. 콘크리트 벽면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군데군데 이끼가 피어나고 표면이 벗겨져 진한 회색 옷을 입은 곳도 있다. 흔히 콘크리트는 표정이 없는 무심하고 건조한 재료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처럼 색도 변하고 지나온 시간도 느껴진다. 한결같이 묵직하고 든든한 느낌도 있어 그 단단한 물성을 느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몇 발자국을 더 떼자 집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왔다. 고재(古材)가 지붕을 떠받드는 구조인데, 배치가 자유로워 답답한 느낌이 없다. 방이던 공간을 모두 헐어내니 공간도 한층 풍성해졌다. 수정원을 채우는 물소리, 사각 하늘 위로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 물과 나무 기둥에 반사돼 일렁이는 빛의 움직임이 더 잘 들리고 잘 보인다. 사방에서 자연도 더 깊이 들어온다. 밖에서는 무심한 콘크리트 박스로 보이지만 안에서는 한없는 평화가 흐르는 곳. 방이 있었을 때와는 또 다른 풍광과 숨결이다. 역시 저마다의 공간에는 저마다의 즐거움이 있다. 중정은 또 하나의 바깥문하고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그 문을 여니 빛이 길게 들어왔다. 현장에 미리 와 있던 조병수 건축 사무소의 최우석 주임이 “수정원에 물을 다 받으려면 3시간 정도 걸린다”며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받기 시작한다. 젊은 건축가는 ‘큰 선배’의 작업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이곳에서는 시간과 날씨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알아채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입구에서 중정에 이르기까지 시퀀스도 다채로워요. 주차장 입구에서 집을 볼 때는 사각 형태의 외벽만 보여 어떤 집일까, 궁금증이 드는데 ‘전실’을 거쳐 중정에 들어가는 구조라 그곳에서 또 한 번 기대감을 품게 되지요. 중정에 들어오면 나무 기둥의 자유로운 배치가 눈에 들어오는데, 저는 이 풍경이 그 자체로 자연 같아요. 현대건축물 중에는 ‘기승전결’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듯해요. 모든 것을 한 번에 내비친달까요? ㅁ 자 집은 달라요. 겹겹의 기운과 풍경을 천천히, 입체적으로 보여줘요.”
바깥으로 난 계단을 따라 지붕 위로 올라가자 집을 둘러싼 숲이 와락, 안기듯 가깝게 다가온다. 1층을 둘러볼 때는 그래도 방을 두세 개 남겨두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곳에 올라가니 너른 옥상에 침낭을 펼쳐놓고 자도 좋을 것 같았다. 지붕도 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공간은 포도밭을 돌보며 자연을 느끼고 때로 작업도 하는 창고 같은 공간으로 계획했어요. 친구와 밤하늘의 달과 별을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렇게 사계절의 기운과 움직임을 차분히 느끼고 싶어 건물은 최대한 단순하고 고요하게 설계했습니다. 그 자체로 도드라지기보다 감정과 기억의 조용한 ‘배경’이 되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어요.” 조병수 건축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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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폐율 4.92%의 실험

양평 ㅁ 자집에서 숲길을 따라 2분만 내려가면 조병수 건축가의 또 다른 건축 실험작인 땅집이 있다. 말 그대로 땅을 파고 집을 앉힌 지중 하우스. 이곳을 이루는 각각의 공간은 다 작다. 집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성인 1명이 간신히 지나갈 만큼 비좁고 철판으로 만든 대문도 작아 들어가려면 몸을 구부려야 한다. 방도 좁기는 마찬가지. 벌러덩 눕는 것은 불가능하고 조심조심 몸을 눕혀야 한다. 딱 1평 크기. 작은 창문 너머로는 뒤란이 환했다. 방 옆에 마련한 욕실에는 편백나무 욕조가 들어가 있다. 역시 작아서 무릎을 구부리고 소심하게 몸을 담가야 한다. 그렇게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바깥 마당을 보면 빛의 기운이 쨍하고 세다. 이곳의 대지 면적은 660㎡(약 200평). 역시 넓은 편인데 건축 면적은 32.49㎡(약 9.8평)밖에 되지 않는다. 건폐율은 심지어 4.92%. 거주 공간은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자연에 최대한 많은 땅을 내준 것이다. 구조도 간결하다. 집을 둘러싼 테두리의 외벽에는 노출 콘크리트를 썼지만 방이 들어선 건물의 바깥쪽은 다짐 흙벽으로 마감했다.
조병수 건축가는 어쩌자고 모든 곳이 다 작은 이런 집을 만들었을까. 그의 설명이 기막히다. “땅집은 하늘집이기도 합니다. 윤동주의 하늘과 땅과 별을 기리고 싶어 만든 집이에요. 건축가이기 전에 한 사람, 하나의 생명체로서 자연과 세상을 가만 들여다보는 여유를 갖고 싶었어요. 윤동주가 그러했듯 절제와 성찰을 통해 나와 우리를 돌아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부연하자면 그는 이곳에서 겸손한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평화로운 시간은 낮은 마음일 때 깃드는 법이니까. 방과 부엌의 출입구를 따로 둔 구조에서도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큰 집이 아니니 방과 부엌을 가까이 배치하고 출입문을 하나로 만들어도 됐겠지만, 그는 공간을 나누고 문도 따로 달았다. 방에 있다 출출하면 문을 열고 나와 툇마루를 지나 다시 부엌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바깥 공기를 쐬고 마당이며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볼 수 있다. 몸은 비록 불편할지언정 마음에는 겸손함이 깃들고, 머리에는 열이 차지 않는 구조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야생’의 기운이 동하면 땅집 위에 마련한 야외 욕조에 들어갈 수도 있다. 너른 땅에 묻은 콘크리트 욕조. 그 안에 몸을 담그고 보는 밤하늘과 별은 얼마나 깊고 생생할까? 이 집에서 제일 큰 곳은 마당. 가로세로 7m 크기인데 그저 빈 채로 남겨두었다. 그렇다고 흙만 있는 건 아니다. 벌개미취며 산국이며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꽃이 차례로 피고 진다. 땅 밑으로 3.2m를 파 내려간 공간에 앉아 앞뜰과 저 위의 땅을 보는 기분은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그저 평온하고 한가롭다.
“전라도의 어느 시골을 여행하다가 밥을 먹으러 음식점에 들어갔다. 마침 사람이 많아서 음식점의 골방 같은 누추한 곳에서 밥상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곳에 있다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편안하면서도 방 안에서 밖을 바라보니까 태양 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빛이 강하게 다가왔다. 유명한 건축물도 많이 보고 유럽도 많이 돌아다녀봤지만, 이처럼 편안하면서도 바깥 빛의 존재가 강렬하게 다가온 경험은 없었다. 전라도의 시골 음식점 방에서 전광석화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 방의 크기와 천장 높이, 조도를 유심히 보아두었다가, 땅집을 지을 때 그 느낌을 옮겨놓았다.” <조용헌의 백가기행>에 나오는 그의 말이다. 두 집을 둘러보고 새삼 ‘건축가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품게 됐다. 모든 건축가가 ‘인간 중심’의 건물을 설계하지만 그 내용은 건축가마다 다를 것이다. 몸의 편리함에 방점을 찍는 건축가도 많을 텐데, 조병수 건축가는 인간의 몸보다 마음에 훨씬 많은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 몸을 조금 불편하게 해서라도 더 큰 것, 더 소중한 것을 잘 보고 느끼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 것 같다. 그것이 건축가 조병수의 선명하고 확고한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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