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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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6, 2017

에디터 고성연

독일 중부에 자리한 작은 공업 도시 카셀(Kassel). 헤라클레스 동상이 있는 세계문화유산 ‘빌헬름 언덕’으로 유명하지만 평소에는 한적한 이 도시가 5년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 축제의 장으로 변모한다. 북서부의 작은 대학도시 뮌스터(Mu··nster)는 10년마다 조각 축제를 열면서 지구촌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는다. 1백 일간의 잔치를 벌이는 이 소도시들은 상업 논리에 크게 지배받지 않고 각각 5년, 10년 주기를 고수하면서 지역 고유의 전통과 개성을 지켜내왔다. 이런 풍토는 자연스럽게 독일 현대미술의 경쟁력을 다지는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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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독일은 ‘아트’로 뜨겁다. 10년 만에 한 번 열리는 조각 축제가 독일 북서부의 작은 도시 뮌스터(Mu··nster)를 물들이고,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현대미술 행사로 일컬어지는 도쿠멘타(Documenta)가 중부에 자리한 또 다른 소도시 카셀(Kassel)에서 14번째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도쿠멘타는 5년마다 한 번, 뮌스터 조각 축제는 10년마다 한 번 열리는 터라 올해는 10년 만의 ‘big year’인 셈이다. 현지 주민들이 부담 없이 어우러지는 소도시의 행사라지만 워낙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터라 지구촌 곳곳에서 관람객들이 모여든다. 오죽하면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으면서 올여름 독일을 방문하지 않는 자는 유죄’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까.
그렇다고 좋은 소리만 나오는 건 아니다. 도쿠멘타의 경우에는 애초에 상업성을 배제한 데다 철학적 깊이가 남다른 독일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행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올해는 ‘지나치게 어렵다’라거나 ‘유난히 현학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주와 이민, 안식처, 평등 같은 주제 의식도 날카롭지만, 진부하다는 얘기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카셀에 다녀온 한 독일 갤러리스트는 “올해는 지적이고 철학적인 성향이 더 강한 건 사실이지만, 관람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라면서 꼭 전문 가이드를 동반한 투어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올해 도쿠멘타의 주제는 ‘아테네에서 배운다(Learning from Athens)’. 유럽 문명의 본산이자 최근 심각한 재정적, 사회적,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에서 현대미술의 과제와 역할을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카셀의 본전시(6월 10일~9월 17일)에 앞서 그리스 아테네에서 먼저(4월 8일~7월 16일) 도쿠멘타를 진행하는 ‘이중 개최’ 방식이 처음 채택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독일의 문화 자본을 키우기 위해 그리스의 위기를 이용한다는 비난을 퍼붓는 이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테네로 향했기에 그리스의 진통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을 테고, 적어도 그리스의 관광 산업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금서’로 쌓아 올린 파르테논 사이를 걷다, 카셀 도쿠멘타 산책

사실 찬사든 비판이든 온갖 목소리가 나오게 만들고, 그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인류의 위기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담론의 장, 그것이 카셀 도쿠멘타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이는 이 행사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독일 중심부인 헤센 주에 위치한 카셀은 과거 나치 정부의 군사기지였던 관계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타깃이었기에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도시다. 도쿠멘타는 이러한 전쟁의 상흔을 예술로 치유하기 위해 기획됐고, 주창자인 아놀드 보데(Arnold Bode, 1900~1977)의 뜻에 따라 나치에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혀 핍박받던 예술가들의 명예를 되살린다는 취지의 회고전 형식으로 1955년 첫 행사가 치러졌다. ‘도쿠멘타’라는 명칭도 자기 성찰과 반성의 토대 위에 새로운 현대미술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채택됐다.
이 같은 역사적 맥락을 상기하면서 카셀 도쿠멘타가 열리는 전시장을 둘러보는 건 분명 설레는 일이다. 우선 주 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 앞에서 위용을 뽐내는 ‘책의 신전’이 시선을 절로 잡아끈다. 아르헨티나 작가 아마르타 미누힌(Marta Minujn)이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모양을 본떠 다양한 나라에서 모은 금서(禁書) 10만 권을 쌓아 올려 만든 대형 설치 작품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프란츠 카프카, 조지 오웰, 파울루 코엘류 같은 작가의 책들이 눈에 띈다. 여기에는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같은 다소 의외의 작품도 있는데, “세상 어딘가에서 금지된 적이 있는 서적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설명이 와 닿는다. 그 옆의 야외 공간이자 또 다른 전시장인 도쿠멘타 할레로 향하는 길목에는 거대한 파이프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속에는 이불, 테이블과 소파, 라디오 등이 소박한 매무새로 들어앉아 있다. 난민들의 숙소를 재현한 하이와 K의 ‘우리가 숨을 내쉴 때’라는 작품이다.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

작은 도시인 만큼 신 미술관(Neue Galerie), 그림 형제 박물관(Grimmwelt Kassel) 등 도시 곳곳의 명소를 전시장으로 쓰는 도쿠멘타에 올해는 새로운 전시 장소가 생겼다. 바로 우체국 건물을 재단장한 신신 미술관(Neue Neue Galerie)인데, 개인적으로는 이곳에서의 ‘산책’이 가장 흥미로웠다(한 작품을 꼽자면 구 그림 형제 박물관인 뵐뷔 궁에서 상영된 풍자적인 영상 작품 ‘더스트 채널(The Dust Channel)’이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겨준 ‘백미’였다). 각종 이슈, 심지어 미술 전시조차 인종으로 묶는 ‘인종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대형 영상 작품(벽면에 여러 인종의 얼굴이 겹치면서 나타나는 영상미가 압권이다), 신나치 단체 NUS가 저지른 연쇄살인 사건 등 각종 만행 속에 도사리고 있는 차별주의를 되짚어보는 작품 등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이 많다. 이 중에는 고든 후키(Gordon Hookey)라는 작가가 호주 원주민의 시각에서 서양의 침략 역사를 알록달록한 색깔과 재치 있는 내용으로 표현한 대형 회화가 있는데, 식민지화 과정에서 공식 언어가 된 영어를 쓰면서도 영어가 진정한 모국어가 아니라 제2외국어나 다름없다는 작가의 호소가 흥미롭다. 여기서 “이 작가의 시각에 동의하느냐”라는 큐레이터의 질문에 산책은 갑자기 토론의 장으로 변모했다. “식민지의 역사는 분명 백인이 만든 (왜곡된) 역사”라는 동의 어린 의견부터 “침략 방식은 되짚어봐야겠지만 그런 역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호주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는 반론, 그리고 “온갖 형태의 침략과 그에 대한 정당화는 지금도 지구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까지….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이들의 설전이 마치 ‘비정상회담’을 연상시키는 풍경, 도쿠멘타의 매력이 돋아나는 순간이었다.

자전거 천국 뮌스터에서 만끽하는 조각 축제

유럽에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에 좋은 도시가 많지만, 조각 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뮌스터는 그야말로 자전거 천국이 된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자전거를 탄 채 달리다가 휴대폰을 꺼내 위치를 확인해보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여기저기에 자리한 조각 작품을 감상하려고 바쁘게, 하지만 즐겁게 움직이는 관람객들이다. 디지털 시대의 진화 양상에 맞게 이번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앱’을 내려받아 작품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원하는 작품에 표시해두면 지도를 보여주고, 현재 위치에 가까이 있는 작품 정보도 알아서 뜬다. 이처럼 첨단 앱의 도움을 빌려도 솔직히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각 작품을 찾아다니는 일은 물리적으로는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1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축제인 만큼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다들 열심이다. 비가 와도 우비를 입고 씩씩하게 달린다. 가끔 길을 헤매도 괜찮다. 과거 조각 프로젝트의 작품도 곳곳에 널려 있기에 우연히 그것들을 마주치는 기쁨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10년제를 ‘너무 간격이 길다’며 바꾸자는 의견이 불거지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위치한 이 쾌적한 대학 도시에서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이 간격과 공백이 좋다’면서 10년제 전통을 꿋꿋이 고수해왔다. 그래서 1977년을 시작으로 개최 40주년을 맞이했음에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올해(6월 10일~10월 1일)로 다섯 번째 행사를 맞이했을 뿐이다. 실제로 올해에는 게임 같은 3D 영상을 재치 있게 버무려 인간의 허무함과 무기력을 표현하는 일본계 독일 작가 히토 슈테이에를(Hito Steyerl)이라든지, 도시 곳곳에 걸쳐 8편의 영상 작품을 QR코드에 숨겨놓고 이를 스마트폰을 통해 볼 수 있게 한 안드레아스 분테(Andreas Bunte), 아이스링크로 활용하던 공간을 발굴 현장처럼 통째로 파헤친 다음 미디어 아트를 심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등 디지털 시대를 반영한 개성 있는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이 눈에 띄었다.

공공 미술의 모범 사례, 40년에 걸친 진화

올해 뮌스터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은 앞에서 언급한 스타 작가 피에르 위그의 ‘앞으로의 삶 이후(After a Life Ahead)’. 그리고 터키 여성 작가 아이세 에르크멘(Ays¸e Erkmen)의 ‘물 위에서(On Water)’다. 중앙역 근처 강 속에 징검다리를 숨겨놓아 누구나 걸을 수 있게 한 작품으로, 성경 속 예수가 물 위를 걸은 기적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굳이 최고의 화제작을 꼽는다면 아마도 엘베엘(LWL) 미술관 4층에서 진행된 그레고르 슈나이더(Gregor Schneider)의 관객 참여형 작품. 어두운 방에서 홀로 모니터 속 CCTV에 찍힌 다른 관람객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단 한 명씩만 출입할 수 있기에 기본 1시간은 기다려야 하지만, ‘현대인의 불안한 자화상’이라는 찬사와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듯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미디어 아트, 설치, 퍼포먼스 등 조각의 한계는 어디까지냐고 묻는 듯 다양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일상에 스며든 수준 높은 공공 미술의 좋은 예로 꼽힐 만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처음에는 ‘산통’을 겪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1975년 영국 출신의 추상 조각 대가 헨리 무어의 작품이 설치되자 뮌스터 시민들이 ‘울퉁불퉁한 추상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반발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는 곧 모두의 담론이 필요한 의제로 부상했다고 한다. 공공 미술이 미술관을 벗어나 대중의 일상이 펼쳐지는 환경에 변화를 일으켜도 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벌어진 것이다. 다양한 예술적 개성과 감수성을 지닌 작품이 지금처럼 자유롭게 혼재할 수 있었던 데는 소통을 기반으로 한 진화가 뒷받침되었던 셈이다.


예술은 결코 국가들이 경쟁하는 올림픽이 아니고, 또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작은 도시들이 내뿜는 에너지와 역사성을 보노라면 독일이라는 나라가 달리 보이는 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독일 현대미술의 강점을 국가 차원의 문화적 분권(decentralization) 정책이라고 말한다. 런던, 파리, 뉴욕처럼 대도시 특유의 ‘브랜드’ 파워에서는 뒤질지 모르지만 지역성과 맞물려 특유의 뚝심과 개성을 자연스럽게 키워온 문화의 저력이 상당하다는 해석이다. 독일 문화 정책을 연구해온 김화임 씨는 “거대한 문화 도시는 없지만 (독일에는) 작은 도시들도 고유한 문화 전통과 탄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면서 ‘문화 연방주의’는 시장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체제와 예술의 자유를 우선적으로 존중하는 여건을 뒷받침해준다고 설명한다. 지역 이기주의나 정치 논리에 지배받는 게 아니라 말이다.
마침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주목받은 국가관과 작가도 독일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예술 만세’라는 뜻의 ‘비바 아르테 비바(Viva Arte Viva)’라는 주제로 오는 11월 말까지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은 독일 국가관이 가져가면서 이 공간을 강렬한 퍼포먼스로 요리한 작가 안네 임호프(Anne Imhof)는 전 세계가 열광하는 스타로 떠올랐고, 개인 작가에게 수여하는 황금사자상도 독일 출신의 77세 노장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Franz Erhard Walther)에게 돌아갔다. 단지 상이 문제가 아니라 요즘 유럽 일대를 다니다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신성 중 베를린이나 뒤셀도르프 등 독일 출신(국적이 아니라 활동 무대)이 많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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